[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보초기러기의 딜레마

입력 2013-07-11 17:14   수정 2013-07-11 21:02

양치기소년도 보초기러기도 깨진 신뢰의 대가는 비싸다


전통시대 기러기는 긍정적 이미지다. 삼각형 모양으로 가지런히 나는 모습을 보고 ‘안행(雁行)’이라고 해 질서를 생각했고, 평생 제짝 이외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기러기를 목각으로 만들어 ‘전안(奠雁)’이라고 해 혼례 예물로 사용했다. 말하자면 부부간 신뢰의 상징인 셈이다. 이 밖에도 남북을 오가는 철새이다 보니 고향 떠난 이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는 새로 생각됐다. 기러기 아빠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특징을 빗대어 만들어진 명칭이다. 이런 기러기에 대한 글인 최연의 ‘안노설’을 소개한다.

“기러기란 놈은 해를 따라서 남북을 오가는 철새다. 수십 수백 마리가 한 무리가 돼 한가롭게 날며 조용히 모여 물가에서 잠을 잔다. 잠을 잘 때는 보초기러기로 하여금 사방을 살펴 지키게 하고는 그 속에서 큰 기러기들이 잠을 잔다. 사람들이 틈을 엿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면 즉시 보초기러기가 알리고 여러 기러기들은 깨어 일어나 높이 날아가니 그물도 펼칠 수 없고, 주살도 던지지 못한다. 사람들은 불을 가지고 기러기를 잡는다.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항아리 속에 촛불을 넣고 불빛이 새지 않도록 감춰서 가지고 간다. 살금살금 다가가 촛불을 조금만 들어 올린다. 보초기러기가 놀라 울고 큰 기러기도 잠이 깬다. 그때 바로 촛불을 다시 감춘다. 조금 뒤 기러기들이 다시 잠이 들면 또 전처럼 불을 들어 보초기러기가 울도록 한다. 이렇게 서너 번 하는 동안에 기러기들이 깨어나 보면 아무 일이 없으니 큰 기러기가 도리어 보초기러기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쪼아 버린다. 그러면 다시 촛불을 들더라도 보초기러기가 쪼일까 두려워 울지 못한다. 이때 사람이 덮쳐서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조리 잡아 버린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서양의 양치기소년 이야기를 뒤집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다른 점이라면 양치기소년은 재미삼아 거짓말을 했고, 보초기러기는 충직하게 사실대로 경보를 울렸다는 것이다. 정직과 거짓이라는 정반대의 원인행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양떼는 늑대에게 잡혀 먹혔고, 기러기도 사람들에게 잡혔으니 차이가 없다.

신뢰는 사회적 자산이다. 깨졌을 경우 그 사회 구성원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매우 크다. 신뢰는 자산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체로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우화는 우리에게 신뢰가 깨지는 것은 순간적이며, 또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사회적 신뢰로 작동한 것이고, 보초기러기가 아무리 충직해도 교묘한 술수에 신뢰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러고 보니 ‘신뢰 구축’이란 구호 이상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신뢰가 깨졌을 때 치러야 하는 거대한 비용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서정문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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