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불의 마술'…신선한 재료·요리사 땀방울이 최고의 맛 '비결'

입력 2013-07-14 14:35   수정 2013-07-14 15:57

최고의 맛을 찾아서

세계 최고의 요리사 폴 보퀴즈의 레스토랑을 가다

48년째 미슐랭 가이드 별 셋…프랑스 최고 요리사 자리매김
전통에 현대식 요리 추가…수프에서 전채요리까지 완벽
하이라이트는 디저트…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황홀




전 세계 식도락의 로망인 프랑스 리옹 교외의 ‘오베르즈 뒤 퐁 드 콜로뉴’ 레스토랑. 48년째 미슐랭 가이드 별 셋을 받아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곳이다. 이 레스토랑이 이런 평가를 받게 된 데는 폴 보퀴즈(87)라는 요리사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요리의 황제’ ‘요리의 교황’ ‘20세기 최고의 요리사’ 등 그가 받은 영예로운 타이틀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오늘날 프랑스 요리가 세계 최고의 요리로 자리잡기까지 보퀴즈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250년 요리 명문가

리옹 북쪽 교외 손강 기슭에 자리한 이 레스토랑은 대중교통으로는 닿기 어려운 한적한 곳에 있다. 보퀴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곳은 보퀴즈 가문이 대대로 음식점으로 생업을 영위해온 터전이다.

지배인의 안내로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보퀴즈가 직접 일행을 맞이했다. 방문하기 전 관광청 관계자는 올해 87세인 그가 최근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서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요리의 황제는 몸이 불편한 게 분명했다. 그는 2005년 초에도 심각한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말을 건넸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일 뿐 말 한마디 뱉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다만 그가 보내는 미소가 나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보퀴즈의 집안은 1765년부터 요식업에 종사해온 요리의 명가로, 요리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그 비법을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수해왔다. 폴 보퀴즈 역시 8세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그가 만든 첫 음식은 소 콩팥 요리에 감자퓌레(으깬 감자)를 곁들인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파리와 리옹에서 요리명장들의 도제를 거쳐 1958년 고향인 콜로뉴 오 몽도르에 돌아와 지금의 레스토랑에서 아버지를 도우며 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리옹 시내에 대중적 레스토랑 4곳, 일본과 미국에서도 레스토랑과 파티스리를 운영하고 있고 요리학교도 설립해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특히 1987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요리 경연대회인 ‘황금 보퀴즈상’은 ‘요리의 노벨상’으로 여겨질 만큼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영예로 간주된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중시

















보퀴즈는 요리비평가들로부터 전통 요리를 혁신한 ‘누벨 퀴진(새로운 요리)’의 기수로 곧잘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을 전통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커다란 접시에 소량의 음식을 내오는 누벨 퀴진의 외형 중시 경향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한다. 프랑스 음식의 전통을 따라 고객에게 양질의 음식을 푸짐하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게 그의생각이다. 그렇다고 전통에 매몰된 교조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누벨 퀴진 등장 이전에 푸아그라 햄버거를 만들었을 정도로 전통의 현대화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보퀴즈는 자신의 음식에 쏟아지는 찬사에 대해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식재료 고유의 맛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파리가 아닌 리옹에 식당의 본거지를 둔 것도 이곳이 갖가지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역의 농부, 식재료 중매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보퀴즈의 식당 내부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흰색의 테이블보가 덮인 원형의 테이블 위에는 장미꽃을 꽂은 유리병이 놓여 있었고 실내는 고전풍의 가구와 인테리어로 장식돼 여느 고급 레스토랑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대통령 송로수프, 로시니 메인요리

일행은 세 가지 정식 코스 중 ‘클래식 메뉴’를 시켰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전통 요리로 구성됐고 가격은 1인당 149유로로 가장 저렴했다. ‘부르주아 메뉴’는 198유로, ‘그랜드 클래식 메뉴’는 240유로였다. 와인은 부르고뉴 적포도주 ‘사비니 레 본’ 2010년산을 선택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웨이터가 붉은 색의 아페리티프(식전주)를 내왔다. 아페리티프와 함께 먹는, 콩을 갈아 만든 껄쭉한 수프가 커피 잔에 담겨 나왔고 견과류를 덧붙인 작은 빵도 제공됐다. 수프의 노란 색과 초록색이 식욕을 자극했다. 시각적인 요소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퀴즈의 요리는 분명 전통 요리를 그대로 답습한 것은 아니었다.

이어 그 유명한 ‘VGE(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검은 송로버섯수프’가 나왔다. 1975년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으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보퀴즈가 엘리제궁에 마련된 오찬을 위해 특별히 고안한 수프였다. 잘게 썬 검은 송로버섯과 쇠고기, 거위 간, 양파가 어우러져 독특한 향을 풍기는 이 야심찬 수프는 약간은 쌉싸래하면서도 개운한 뒷맛이 일품이다. 수프의 향이 달아나지 않게 하기 위해 페이스트리로 그릇 윗부분을밀봉한 모습이 이채롭다. (아페리티프와 VGE수프는 보퀴즈가 한국 손님을 위해 특별히 제공한 것이다.)

전채요리로 선택한 ‘도딘 드 카나르 아 렁시엔 피스타체는 잘게 썬 오리고기를 피스타치오와 섞은 후 눌러 만든 파이 한 조각과 사각형의 푸아그라를 삶은 감자와 함께 내놓은 요리였다.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린 것으로 전채요리로서 제격이었다.

주요리로 나온 ‘피예 드 뵈프 로시니’는 힘줄을 제거한 쇠고기 안심과 푸아그라로 탑을 쌓고 그 위에 송로버섯으로 만든 페리규 소스를 더한 것으로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가 즐겨 먹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페리규 소스는 스테이크와 푸아그라의 조합으로 초래될 수 있는 느끼한 맛을 누그러트리는 역할을 하는 데 그만이었다.

○전통요리에 깃든 깊은 맛과 정신

이어 작은 유리컵에 담긴 달달한 초콜릿 무스가 나왔고 뒤이어 이곳의 명물인 생 마르슬랭 등 수십종의 치즈를 실은 트레이가 일행의 테이블 앞에 마련됐다. 매니저가 직접 손님들의 의향을 물은 다음 원하는 세 가지 치즈를 잘라 접시에 담아준다. 프랑스의 다양한 치즈를 맛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아니다 다를까. 일행 중 두 사람은 거의 손도 안 대고 접시를 물렸다.

이곳의 방문객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디저트 시간이다. 테이블 옆에 차려진 네 개의 디저트 트레이가 입을 벌어지게 한다. 이 레스토랑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소화할 자리가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풍경이다.

보퀴즈는 2005년 9월 프랑스의 유력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와의 인터뷰에서 “불로 조리하지 않은 음식은 매력 없는 창녀와 같다”라는 프랑스 속담을 인용하며 ‘요리는 불의 마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신선한 식재료의 선택과 불을 정확하게 다룬 결과라며 이런 자신을 믿고 따라준 스태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겸손해했다. 신선한 재료와 요리사의 땀방울이야말로 최상의 맛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말이었다.

전체적으로 양이 많아 다소 부담스러운 식사였지만 프랑스 전통 요리의 깊은 맛과 그 속에 흐르는 인간주의적 정신의 요체를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최상의 식재료가 불을 만나 이뤄낸 맛의 기적이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취재협조=쁘띠프랑스(www.pfcamp.com)·프랑스 리옹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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