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신뢰 회복 시급한 민자 SOC 시장

입력 2013-07-22 10:08  

지하철9호선 투자자 교체,약속 깬 정부
도산 위기 항만 등 민간 자본 유치 불가능



이 기사는 07월19일(05:2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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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상이든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처음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민자 SOC(사회기반시설) 사업의 본령에 관한 정부와 민간 투자자들의 다툼을 이해하기 위해선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부 약속이 키운 민자 SOC 시장
도로, 항만, 철도, 상·하수도 등 SOC 건설은 전란 이후 정부의 핵심 과제였다. 1960년대부터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했다. 국방, 복지, 과학기술 등 정부 재정이 긴급히 필요한 분야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SOC 사업에 민간 자본을 유치해야한다는 발상이 등장한 배경이다.

정부는 1994년 ‘민간자본유치촉진법’을 제정, 민간의 자금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국내 금융 시장의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한 데다 외환위기까지 겪으면서 대부분의 사업이 좌초되고 말았다. 민자 SOC 사업이 본격화된 시기는 1999년 11월 ‘사회간접시설에대한민간투자법’이 나오면서부터다. 당시 개정 사항의 핵심은 민간 투자자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최소수입보장제도(MRG) 등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절차를 투명화해 신뢰를 얻겠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1994~2010년까지 민자 SOC 프로젝트는 총 95조 규모, 627건이 시행됐다.

이 가운데 대댜수가 1999년 이후에 집행됐는데 이는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꼭 필요했던 경기 활성화에 큰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당시 한국의 민자 SOC 사업은 외국에서도 성공 사례로 평가받았다. 일본만해도 1999년 민간투자제도를 도입해 2006년까지 2.6조엔, 323건의 협약 실적을 거뒀다.

◆프로젝트 금융시장의 발전이 걸림돌?
민간 자본 유치에 성공한 데엔 정부 보조금이란 ‘당근’ 외에 금융 시장의 선진화라는 요소도 큰 몫을 했다. 핵심은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유치다. 1994년 민자유치촉진법이 제정되긴 했어도 당시 프로젝트 금융은 건설회사들이 지급 보증을 서서 은행이 대출해 주는 단순한 구조였다.

건설사, 철도차량제조회사, 시설물 운영회사, 엔지니어링 회사 등 전략적 투자자(SI)들은 사업 초기에 직면하게 될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입찰을 거치지 않고 사업권을 따낼 수 있다는 장점을 보고 출자자로 참여한다. 문제는 이들의 출자금(총 민간 투자비에서 대출을 제외한 자본금)이 최장 30년간 묶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건설사들은 빨리 자금을 회수해 다른 사업 기회를 찾고자 했다.

SI들로선 자금을 유동화할 필요가 절실했다는 얘기인데 이 때 등장한 회사가 호주계 자산운용사인 맥쿼리다. 신한은행과 합작 형태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 맥쿼리는 해외 민자 SOC 사업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활용해 단번에 국내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인프라펀드를 만들어 자금을 모집한 뒤 이 돈으로 건설사 등 SI의 지분을 사거나 건설 단계에서부터 SI들과 공동 투자자로 참여했다.

맥쿼리로 상징되는 외국계 자본의 참여로 민자 SOC 시장은 금새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SOC 사업의 위험성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지면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 공제회와 보험사, 은행 등이 재무적 투자자로 나섰다. 이들은 후순위 대출과 자본금에 동시에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자본금 투자를 통한 배당 이익은 건설 시작 후 운영 기간 초기까지도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후순위 대출로 이자를 받아야 매년 현금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사례에서 맥쿼리가 ‘악의 축’으로 비난받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후순위 대출인데 이는 금융 기법에 대한 일종의 무지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하철 9호선은 은행에 선순위 대출 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는 적자 상태에 빠져 있어 후순위 대출 이자를 매년 갚을 여력이 없다. 이로 인해 맥쿼리 등이 받아야 할 이자는 미수금으로 장부에 기재되는데 매년 복리로 계산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이자율이 수십%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실제 맥쿼리가 받아갈 예상 수익률은 향후 받게 될 배당과 대출 이자를 합친 다음, 이를 30년으로 나눠서 도출되는데 이게 연 8.9% 수준이다. 연기금과 공제회들도 맥쿼리와 동일한 방식으로 투자했다.

◆신뢰 무너진 SOC 시장, 정부의 다음 전략은
정부가 2009년 MRG 제도를 폐기하고, 작년 말부터 이미 계약한 MRG 계약도 없애기로 하면서 국내 민자 SOC 시장은 격변기로 접어들었다. 정부 보조금이라는 인센티브가 사라진 데다 4%대의 낮은 수익률로는 은행, 연기금, 공제회, 인프라펀드 등 기존 투자자들의 참여들은 사실상 봉쇄됐다.

시중 대형 은행 관계자는 “1년짜리 예금에 길어야 3년 이내 대출 상품을 팔면서 SOC 같은 장기 상품에 투자하려면 수익률이 최소 6%는 돼야 한다”며 “SOC 금융 상품은 은행이 더 이상 손대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회원들에게 5~6%의 이자를 지급해야 할 공제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8% 수익률을 보장받은 SOC 사업조차 감사원에서 역마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4%대 상품에 어떻게 들어가나”고 하소연했다.

장기자금을 안정적으로 굴려야 할 보험사들이 유일하게 “국공채 투자보다는 낫다”는 논리로 민자 SOC 시장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긴 했지만 향후 수십조원에 달하는 사업을 모두 보험사들이 떠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붕괴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느냐다. 서울시 등 각 지자체는 10년 이상 지탱해 온 민자 SOC 사업의 약속을 하루아침에 깨면서 투자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오히려 여론 몰이를 했다는 의심까지 받을만했다.

기존 투자자들을 보험사들이 신속히 대체하고 있듯이 현재 국내 자본 시장의 유동성은 풍부하다. 정부와 민간 투자자들 사이에 신뢰만 회복된다면 SOC 사업에 민간 자본을 유치해 창의와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애초 취지를 충분히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9호선이야 최소한 파산할 사업은 아니어서 투자자 손바뀜이 가능했다지만 항만 등 도산 위기에 있는 수많은 SOC 사업들에 대해 정부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것인가. 민간투자법에 따르면 정부는 공익목적에 따라 기존 주주를 바꿀 수 있지만 거꾸로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사업자가 도산할 경우 정부는 이를 되사 줄 의무도 있다는 점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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