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스토리 ⑨] 천원짜리로 매출 1조, 불가능하다고?…다이소의 멈추지 않는 도전

입력 2013-08-12 08:09  

끝모를 불황의 터널에서도 남다른 노력과 혁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우뚝 선 성공기업들의 숨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발굴한 기업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1990년대 중반. 일본의 '100엔 숍'을 본뜬 '천 냥 백화점'이 국내에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백화점 아니면 동네 문방구에서 사야 할 정도로 양극화돼 있던 국내 균일가 시장을 '천 냥 백화점'이 파고들었다.

박정부 다이소 회장(60·사진)도 1997년 천호동에 10평짜리 균일가 숍 '아스코이븐플라자'를 열었다. 때마침 외환위기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히면서 '싼 게 미덕'인 시대였다. 이렇게 1000원 짜리 물건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러다 서서히 균일가 숍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업계와 소비자 모두 '싸게 더 싸게'를 외치다 보니 품질은 나날이 엉망이 돼가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가격이 싸다고 무조건 구매하지 않았다. 싼 맛에 무조건 집어들던 소비자들도 상품력에 의구심을 가졌다.

전국의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균일가 숍들이 대부분 사라졌던 2000년대 초반, 박 회장은 회사 이름을 '다이소아성산업'으로 바꿨다. 일본 균일가 숍인 다이소산업과 합작해 동네 '천 냥' 수준의 회사에서 벗어났다.

박 회장은 균일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 불량률 '제로'에 도전했던 상품 경쟁력을 꼽았다. 박 회장은 이를 "일본 다이소산업 회장에게 가혹할 정도로 퇴짜를 맞은 덕"이라고 표현했다. 서울 도곡동 다이소아성산업 본사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 "中으로 가면 망하고, 日로 가면 성공한다"…균일가의 역발상

박 회장은 1973년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구로공단, 인천 남동공단 등에서 생산관리 일을 했다. 1988년 (주)한일맨파워를 설립하고 일본과 연을 맺었다. 한일맨파워는 여러가지 생활용품을 생산하던 업체로 주로 일본에 수출했다.

박 회장도 꼼꼼함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지만 일본 기업인들에겐 그가 들고 온 제품은 성에 차지 않았다. 박 회장이 들고 간 제품 정도는 일본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가격은 더 싸게 그러나 품질은 일본의 제품보다 더 뛰어나야 승산이 있었다.

"일본에 수출하러 다니면서 '이런 것도 팔러 다니느냐'며 퇴짜를 많이 맞았어요. 꼼꼼함으로 유명한 일본인들이 보기엔 하자가 엄청 많았던 거죠. 그 과정에서 오기가 생겼어요. 내가 꼭 저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말겠다는 목표가 생겼던 거예요."

박 회장은 오랜 기간 생산관리직을 경험하며 품질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눈높이가 높았다. 당시 균일가 공급업체들이 단가를 맞추기 위해 중국 쪽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 박 회장은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오히려 균일가 숍의 미래는 제품력이 결정할 것으로 생각해 생활용품 시장이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에서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당시 국내 균일가 시장은 '싸게 더 싸게'를 외치며 물건을 중국에서 생산해왔어요. 인건비가 싸니까 생산단가를 더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더 좋은 제품을 찾기 위해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 유럽 등을 찾아다녔죠. 이런 제품력으론 균일가 시장이 살아남기 어렵겠다고 판단했습니다."

◆ 국내 다이소, 일본 다이소의 한국 지사일 뿐?…오해의 시작

그러다 박 회장은 일본 다이소산업을 소개받았다. 야노 히로다케 다이소산업 창업주는 품질에서만큼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임자를 앞에 불러두고 그 자리에서 물건을 집어던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히로다케 일본 다이소산업 회장은 어느 날 박 회장에게 일본 다이소산업 독점 공급권을 제안했다. 박 회장이 생산하던 제품들이 마음에 들었던 것. 박 회장은 그러나 쉽게 승낙할 수 없었다. 독점 공급을 맡게 되면 시간과 물량의 제한으로 다른 기업들에게는 제품을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히로다케 회장에게 역으로 제안을 했어요. 독점 공급을 해줄 테니 아성산업의 지분을 사서 책임감 있는 사업 파트너가 되자고요. 그렇게 해서 일본 다이소산업이 아성산업의 지분을 약 34% 갖게 됐고 합작으로 다이소 이름을 앞에 붙이니 국내의 다이소아성산업이 마치 일본 기업인 것처럼 보였던 거죠."

다이소는 현재 중국에서 일본 다이소산업과 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간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상품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올 초 일본 다이소가 독도의 이름을 다케시마로 바꾸는 캠페인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일본 다이소산업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국내에서 이러한 루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니까 이것을 자기네들이 어떻게 바로잡아줘야 하느냐고요. 사실이 아니니까요. 회사 내부적으로 국내 다이소의 이름을 바꾸는 문제까지 고려했습니다. 부산의 한 다이소 매장 점주는 억울한 마음에 1인 시위까지 벌였죠."

◆ 다이소, '착한 가격'의 비밀은?…'물건'이다 싶으면 지구 끝까지

다이소 매대에는 3만여 개의 제품이 올라가 있다. 지금까지 박 회장이 개발해온 제품만 4만여 종이 넘고, 연간 5000개에 가까운 상품이 새로 나온다.

이렇게 많은 제품들 대부분은 1000원짜리다. 1000원대 제품의 비중은 전체 물건의 절반이 넘는다. 2000원 안팎의 제품이 35% 정도를 차지해 1000~2000원대의 상품을 합하면 전체 물건의 90% 가까이를 차지한다. 최근 제품의 종류가 늘어나면서 3000원 이상의 '고가' 상품들도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했지만, 다이소는 여전히 '천 냥'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박 회장은 휴일에도 거의 쉬지 않는다. 평일엔 국내에서 업무를 보고 주말엔 일본 동남아 중국 유럽 등 해외로 출장을 간다. 괜찮은 '물건'을 찾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공급하는 상품 전부를 해외에서 아웃소싱으로 들여오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저가의 제품이 모두 저질인 것은 아니에요. 명품을 쓰지 않고 저가 제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싸구려를 쓴다는 인식이 안타까운 거죠. 가격은 유지하면서 품질을 높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해외 출장도 다니면서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거예요. 고객이 다이소에서 물건을 찾는 이상 계속 값 싸고 질 좋은 상품을 선보여야 합니다."

다이소는 전형적인 박리다매 기업이다. 많이 팔아야 살아남는다. 많이 팔기 위해선 한 명의 소비자가 10개를 사는 것보단 10명의 소비자가 1개씩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10명의 소비자는 곧 두 번째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매대에 더 많은 제품을 올려놓고 다양한 소비자 층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이것저것 많이 보여줘야 살 거리도 나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대형 매장을 확보하는 게 절실합니다. 앞으로 상품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공간 확보에 대한 고민이 크죠. 제품 질도 포기할 순 없어요. 균일가라고 해서 질이 떨어지면 고객들도 금방 고개를 돌려버리죠."

박 회장은 이를 위해 1000원짜리 제품 하나라도 신제품이 개발되면 꼭 이를 집에 들고 가서 사용해본다. 모난 곳은 없는지 사용이 불편하진 않은지 직접 써봐야 다음 제품을 개발할 때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기업은 수만 개의 제품을 생산하지만 소비자들은 결국 하나의 상품을 집어드는 겁니다. 만약 그 하나의 제품이 불량이라면 그 고객에겐 다이소의 제품이 100% 불량으로 비치는 겁니다. 몇 만 개 중에서 불량품이 왜 없겠어요. 그래서 불량률을 '제로'로 만든다는 목표로 제가 직접 꼼꼼히 살펴보는 거죠."

박 회장은 주말에 가끔 아내와 함께 다이소 매장을 직접 방문한다. 아내를 통해 제품에 대한 조언도 얻고 직접 쇼핑도 하며 또 다른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위해서다.

"매장 직원들이 저를 알아보기 때문에 쇼핑은 주로 아내가 해요. 저는 가급적 직원들 눈을 피해 다니죠. 매장을 둘러보고 물건도 직접 구매해 집에 가져다 놓고 써봐요. 그러면서 제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고는 합니다."

◆ 내년 국내 1000개 매장, 매출 1조 원 목표…해외도 눈돌려

다이소는 최근 국내 매장 900호점을 돌파했다. 1997년 천호동에 1호 매장을 낸 뒤 15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1990년대 중반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균일가 숍들이 거의 사라진 사이 유일하게 다이소만이 기업으로 성장했다.

다이소는 최근 5년 사이 3배 넘게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7500억 원, 올해는 900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1000원짜리 제품으로 매출 1조 원을 이뤄내는 게 단기적 목표다. 이를 위해 현재 평균 500㎡인 매장 크기를 1000㎡로 키우고, 3만여 개 수준인 제품 종류를 8만여 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다이소는 2011년 중국에 '하스코'라는 이름으로 첫 매장을 오픈했다. 중국에는 일본 다이소산업도 진출해 있기 때문에 다이소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현재 총 97개의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중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라는 판단에서다.

"특정 나라, 특정한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팔겠다는 각오로 전 직원이 일하고 있어요. 다이소의 제품의 철학은 여전히 '1000원'이 근본입니다. 하지만 상품의 가치만큼은 그 이상이 되도록 하는 게 저와 우리 직원들의 몫이겠죠."

글=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dong2@hankyung.com


▶ [Biz 스토리⑥]'글로벌 골리앗' 무너뜨린 '토종 인공관절' 코렌텍의 도전…이젠 해외로 달린다
▶ [Biz 스토리④]"별이 다섯 개!" 촌스럽다고? 20년째 돌침대 업계 1위 '장수돌침대'의 비밀은?
▶ [Biz 스토리⑦]모바일 광고업계 혜성, 퓨쳐스트림의 '카울리' 성공 전략 "시대의 변화 코드를 읽어라"
▶ [Biz 스토리 ⑤]세계 완성차가 탐낸다…이미지넥스트, 360° 카메라 '옴니뷰' 개발 스토리
▶ [Biz 스토리 ⑧] 아시아 1호 엔진개발 업체 '테너지'의 발칙한 도전…"엔진 선교사를 꿈꾸다"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