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초과 증여시 세금 폭탄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매각 불투명…세법에 밀리고,공정거래법에 치이고
이 기사는 08월18일(13:1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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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장학재단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부터 출연받기로 한 이노션 주식 20% 가운데 절반을 외부에 매각키로 했다. 공익재단이 동일 회사의 주식을 10% 이상 보유할 경우 증여세를 물어야하는 세법 탓이다.
하지만 인수자 물색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계열의 광고 대행사인 이노션이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에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오너의 사재 출연을 약속해 놓고도 세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에 끼어 옴쭉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노션 주식 18만주 PEF에 매각?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정몽구재단은 지난달 9일 무상으로 기부받은 이노션 주식 18만주(10%)를 매각하기로 하고, 골드만삭스를 매각 주관사로 정했다. 이미 국내외 소수의 사모펀드(PEF)에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이노션이 향후 상장할 계획이며 저가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라고 골드만삭스로부터 인수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일 정 회장이 보유한 이노션 지분 20% 전량을 재단에 출연한다고 발표했다. 정 회장은 일주일 뒤인 9일 약속한 지분의 절반인 10%를 우선 기부했다. 이 때에도 분할 출연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렸었다.
손원익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매각 이유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48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정몽구장학재단같은 성실공익법인은 특정 회사 지분의 10%(일반 공익법인은 5%)를 초과하는 주식을 출연받을 경우 최대 60%의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정회장이 이노션 지분 20%를 한꺼번에 재단에 넘겼다고 가정하면, 재단은 증여받은 이노션 주식 중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야했다.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먼저 받은 10%를 팔고, 매각 절차가 끝나는대로 나머지 10%를 받을 계획인 셈이다.
현대차그룹 오너의 사재 출연과 관련해 이같은 사례는 2011년에도 있었다.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글로비스 주식 총 50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으나 일반 공익재단에 적용되는 ‘5% 룰’을 피하기 위해 그해 10월 131만5790주(3.51%)를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에 매각했다.
◆인기없는 이노션 주식
글로비스는 상장사인 데다 당시 현대차그룹의 물류 전문 계열사라는 입지 덕분에 주식 가치가 높았기에 쉽게 매각할 수 있었지만 이노션은 사정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노션 주식 인수 제안을 받은 PEF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관련 규제가 현실화돼 이노션의 성장성이 불투명해졌고, 상장 계획을 얘기하고는 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인센티브도 없어 인수 여부를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일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공정거래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노션 지분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정성이 이노션 고문 각각 40%씩, 그리고 정몽구 회장이 아직 출연하지 못한 10%로 분산돼 있다. 공정 거래법 규제 대상이라는 얘기다. 현대차그룹 광고 대행사인 이노션의 내부 물량 비중은 7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재단은 만일 이노션 주식 10%를 매각하지 못할 경우 나머지 10%를 출연받지 못하게 된다. 현재로선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비상장주식이어서 기관 투자가 관심 밖이고, 그렇다고 다른 대기업에 주식을 넘겨주기도 어렵다. 사모펀드에 손을 내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노션으로선 오너의 사재 출연 약속을 돕기 위해 불가피하게 외부에 주식을 넘겨줘야하는 셈이다.
◆공익재단 면세 범위 완화 논란 재점화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익재단에 적용되는 세제 혜택 범위를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손원익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엔 공익재단이 일부 기업 오너들의 편법 승계 수단으로 활용됐던 터라 주식 출연 한도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차제에 공익재단의 운영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증여세 면제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익재단에 대한 규제 완화가 중견·중소기업들의 가업 승계에 대해서도 해법이 될 만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도 가업을 잇게 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내야한다. 재계 관계자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 해결책은 편법을 동원하거나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사례로는 인도의 타타그룹이 대표적이다. 150여 년 전통의 타타그룹은 자동차 등 7개 분야 10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전체 자산의 66%를 타타트러스트, 타타재단 등 공익재단이 보유하고 있다. 장영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공익재단이 그룹 전체를 지배해 경영권을 안정시키되 재단이 보유한 자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망을 높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타타의 공익 재단이 배당 등을 통해 연간 벌어들이는 수익은 1억 달러 가량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증여세 면제 범위를 넓혀줄 경우 기업들은 공익재단을 지주회사 삼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가업 승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 오너들의 사재 출연이 대부분 사법부와의 대립의 결과물로 나온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는 데다 대기업 오너의 승계에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하면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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