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브롤터의 선택

입력 2013-08-21 17:56   수정 2013-08-22 05:37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스페인 영토 남쪽 꼬리 부분에 있는 인구 3만여명의 영국령 지브롤터.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밖에 안 되는 이곳엔 해발 425m의 거대한 바위산이 치솟아 있다. 한쪽이 천 길 낭떠러지인 이 바위산엔 동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한여름의 동굴음악회로 유명한 성 미카엘 동굴이다. 한꺼번에 5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이곳에서는 미스 지브롤터 선발대회와 각종 예술행사가 열린다.

또 하나는 영국군이 바위를 뚫고 지중해와 대서양, 스페인 쪽으로 대포를 설치한 요새의 방어동굴이다.

천연콘서트홀과 군사진지라는 두 동굴의 성격이 지브롤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은 로마시대 이후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민족이 쟁탈전을 벌인 격전지였다. 이슬람교도 타리크가 이곳을 점령한 것은 711년이었다. 로마시대까지 ‘헤라클레스의 기둥’, 칼페산 등으로 불렸지만 이때부터 타리크의 산을 뜻하는 자발타리크라고 불렸고 이것이 지브롤터의 기원이 됐다. 1704년 왕위 계승전쟁에 개입한 영국이 승리한 뒤에는 영국령으로 바뀌었다.

이 작은 땅을 둘러싼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정학적, 군사적, 경제적 중요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집트 수에즈, 터키 보스포루스와 함께 지중해의 3대 요충지이자 영국의 14개 해외 속령 중 유일한 유럽 거점이니 그럴 만하다. 영국은 이곳 해군기지를 통해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페인으로서는 ‘턱 아래 칼’이자 ‘손톱 밑 가시’다. 영해를 일부러 침범하는 등 문제를 자꾸 일으키는 것도 올해가 영토 할양 300주년이라는 점을 내세워 국제 이슈화하겠다는 의도다.

며칠 전엔 인공 어초(물고기 서식을 돕는 구조물)를 둘러싸고 군사충돌 직전까지 갔다. 영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자 스페인은 항공기 영공 통과를 불허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조사단을 보낼 모양이다.

그러나 구경꾼 입장에서 보면 승부는 이미 갈린 것 같다. 분쟁의 밑바탕에 깔린 경제 수치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영국의 성장률은 0.2%였고 스페인은 -1.4%였다. 반면 지브롤터는 7.8%나 됐다. 낮은 법인세로 기업을 유치한 덕분에 실업률은 2.5%에 불과하다. 스페인 실업률은 이보다 10배 이상 높은 26.3%다.

이러니 영국에는 ‘효자’요 스페인에는 ‘눈엣가시’다. “우리 땅 내놓으라”는 스페인 요구를 영국이 “주민 99%가 두 차례 투표에서 영국을 택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일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긴 외국 관광객들이 몰리는 동굴음악회도, 천혜의 군사기지인 암벽요새도 국민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더 빛나는 법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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