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쓰는 논술] (16) 영어공용화

입력 2013-08-23 14:30  

▧ 들어가면서 …

영어 공용화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정리가 된 철지난 논쟁이다. 수험생들은 2008년 이후 영어몰입 교육의 수혜(?)를 받은 세대이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중요성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겠지만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모국어인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공식 언어로서 사용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납득을 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영어공용화에 대한 논술문제는 거의 그것을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같은 비판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비판하느냐에 따라 답안의 질은 크게 차이가 난다. 제대로 된 논리구조를 갖춘 심도 있는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영어공용화에 대한 주장부터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10 항공대 예시 (문항2) : 영어공용화에 대한 평가
2009 서울교대 수시 : 세계화 시대 영어의 수용 태도
2008 서강대 수시2-1 (경제, 경영-3번 문항) :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사용
2006 동국대 수시2 : 영어공용화 비판

▧ 영어공용화 찬성론

우리사회에서 영어공용화의 논의가 대두된 시점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이 가혹한 현실로 다가온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이다. 세계의 흐름을 무시한 한국 사회와 경제의 독자적 존립이 불가능하니 다른 나라와 경쟁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다수 국민들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반영하는 제시문을 2009 서울교대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제어가 된 영어가 가까운 미래에 세계어가 돼 온 세계가 영어만을 쓰고 다른 민족어들은 모두 쇠멸하리라는 전망, 영어가 이미 누리는 큰 망 경제(network economy), 영어를 잘 쓰지 못해서 우리 시민들과 사회가 보는 엄청난 손해, 사람의 뇌에서 첫 언어를 배우는 부분과 차후 언어들을 배우는 부분이 다르므로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국제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쓸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국어는 그가 태어날 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된다는 사정 따위 조건들을 고려하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책은 우리의 모국어인 조선어를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이다. 다른 조치들은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없다.(중략)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선어를 단 하나의 공용어로 삼음으로써 우리가 조선어에 독점적 지위를 인위적으로 부여했다는 점이다. 비록 헌법엔 공용어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지만, 헌법과 법률들이 모두 조선어로 쓰여졌고, 모든 하위법규들을 조선어가 언어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도록 만들었다. 영어공용은 이런 독점적 언어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다. 즉 의사소통에서 정부에 의해 강제된 표준인 조선어와 함께 국제적 표준인 영어가 통용되도록 해서, 소비자들인 시민들이 그 둘 가운데 나은 것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소비자들에게 허여된 선택의 폭을 늘리는 자유화 조치는 언제나 소비자들의 복지를 늘린다. 만일 영어공용을 통해서 영어가 한국의 지배적 언어가 되면, 국제어인 영어가 누리는 망 경제로부터 한국 시민들도 큰 혜택을 입을 것이다. 언어장벽이 한국에 끼쳐온 손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복거일)

복거일 씨가 요즘도 이 주장을 되풀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제시문과 같은 의견이 꽤 득세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단 이 주장의 논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형식적으로는 한국어가 독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언어 환경에 영어를 도입하여 경쟁을 붙여보자는 얘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단 하나의 대책은 우리의 모국어인 조선어를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이다”라는 점에서 보이듯이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만 쓰자는 ‘영어전용’의 취지를 담고 있다. 그 논거로 드는 것은 1) 미래에 영어가 세계어가 되리라는 점, 2) 영어는 거대한 네트워크 경제를 누리고 있다는 점, 3) 그로 인해 영어를 모르면 우리 사회와 시민들은 큰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우리사회 일각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반세기 전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이 그 원조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63년간 중의원을 지냈던 일본 제국주의 의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군국주의자 오자키 유키오가 주장했던 내용을 2008 서강대 제시문에서 만나볼 수 있다.

편한 언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본어는 세계 최악의 문자인 한자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한자는 획수가 많아서 문서를 하나 만들 때도 구미인의 4~5배 시간이 걸린다. 또 힘들여 한자를 배워도 석독(釋讀)을 하기 때문에 중국의 잡지, 신문 등은 읽을 수가 없다. 게다가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로 사유를 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중국의 반 속국을 면할 길이 없다. 이렇게 불편한 문자, 언어를 도구로 해서 서구 열강과 경쟁한다는 것은 우마차로써 자동차와 경주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국제적으로 정치적·경제적으로 꽤 발전한 것은 국제경제의 제 일선에 선 일본인들이 일본의 문자, 일본어를 버리고 외국의 문자, 언어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학자는 외국어로써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외교관과 무역업자는 외국어로써 교섭하고 상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이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도구로 외국어를 사용하지 아니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선 폐해가 많은 한자를 폐지하는 것이 문화국가의 전제조건이다. 한자 폐지 이후 ‘가나(かな)’보다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로마자를 채용해야 하며 나아가 ‘머릿속의 국경’을 제거해서 일본어를 폐지하고 영어를 국어로 해야 한다.

- 오자키 유키오, 「영어공용어론」

이 글에는 일본인 특유의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들어가자)에 대한 집요한 강박이 담겨 있다. 단순히 외국의 좋은 문물을 배우자는 취지를 넘어 일본인의 서구인화를 추진했던 자기 부정의 논리이다.

이렇듯 1950년대 일본의 영어공용론은 2000년대 우리나라에서 재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우리의 사회에 영어는 얼마나 정착했을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현재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영어실력은 낮은 편이고 또 영어에 대한 비용 투자는 높은 편이다.

▧ 영어공용론 비판

위와 같은 영어공용론 (말이 공용이지 사실상 전용을 주장하는)에 대한 비판은 우리의 언어 환경에 적합하지 않고 영어에 대한 현실적 필요성이 적다는 점을 지적하는 선에서 가능하다. 진정한 세계화는 우리 것을 버리고 국제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국제화시키는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타당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람의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얕은 관점을 논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보여주는 제시문이 2010 항공대 문제에 나와 있다.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와 사고의 반영체이다. 영어는 분명 영국과 미국의 말이고 한국말과는 다른 문화와 사고의 반영체이다. 동일한 인간이라는 종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선택사양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 언어가 열등하다든지 우월하다는 것을 논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어느 방법이 더 편하고 불편한지도 따질 필요가 없다. 선택의 사양이 서로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선택사양을 사용해서 두 언어가 서로 달라진 것인지 두 언어가 서로 달라서 선택사양이 달라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두 설명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다 옳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특정 언어가 한 나라의 사고방식을 깊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영어는 영미인의 의식구조를, 일본어는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의식구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어린 사람들에게 우리말보다 다른 나라 말을 배우도록 강요하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와 사고의 올바른 형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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