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은 미치광이?…사물의 겉모습 아닌 본질적 형태 추구

입력 2013-08-23 18:11   수정 2013-08-24 03:47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10) 후기 인상파와 현대미술



여기 한 점의 정물화가 있다. 그런데 뭔가 좀 낯설다. 테이블 위에 사과 등 여러 가지 과일이 잔뜩 놓여 있지만 형태가 원형으로 단순화돼 있고 색채도 붉은 색, 녹색, 노란색 등 단색으로 처리돼 있다. 왼쪽에 놓인 물병도 원형과 직선의 기하학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사실적 대상을 그린 것은 분명하지만 전통적인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한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 눈에 비친 또 다른 사실성을 추구한 결과라는 점에서 놀랍다. 폴 세잔(1839~1906)이 그린 ‘커튼, 물 주전자, 과일이 있는 정물’은 외형적 닮음이 아니라 본질적 형태와 색채감, 그리고 그들 사이의 조화를 추구한 그림이다. 세잔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채의 조각이며 형태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뒤따라 인식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대상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화음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그림은 대상의 외형이 아니라 본질적 구조를 포착한 것이 된다. “자연은 원통과 원뿔, 구체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고 한 그의 말은 이런 생각을 집약한 것이다. 출발은 객관적 사물이지만 작품을 완성하게 하는 힘은 작가의 주관적 질서감각인 셈이다.

세잔의 이런 혁명적 시도는 아직 보수적이던 19세기 후반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다른 인상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잔도 온갖 모욕과 악평의 제물이 됐다. 그가 1874년 첫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했을 때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마약에 취해 그린 그림”이라고 빈정댔고 평론가들은 한술 더 떠 “미치광이가 정신착란 속에서 그린 그림”이라는 독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세잔은 왜 하필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는 사실적 재현에 반기를 든 인상주의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한순간의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호들갑 떠는 인상주의자들의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그림에도 불만을 느꼈다. 그는 그런 들뜬 그림보다 좀 더 견고하고 본질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이런 생각은 세잔만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점묘파를 창시한 조르주 쇠라(1859~1891)도 세잔처럼 좀 더 견고하고 과학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하려 했다. 점묘법으로 불리는 그의 기법은 혼합되지 않은 순색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 전체에 규칙적으로 찍는 것으로 색채가 감상자의 눈에서 섞이게 하고 화면에 견고한 형태감을 부여한다.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 불만을 느낀 것은 폴 고갱(1848~1903)과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잔, 쇠라와 달리 고갱과 고흐는 빛과 색채를 통해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고갱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간직한 꿈을 원시적 본능에 따라 표현하려 했다. 그는 색채의 고유성을 부정하고 형태를 왜곡함으로써 자신의 이런 의도를 전달하려 했다. ‘설교 후의 환영’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초현실적 성서의 에피소드와 브르타뉴의 현실을 뒤죽박죽 혼합했다. 평면적 색채효과를 얻기 위해 원근법과 명암법도 헌신짝 버리듯 팽개쳐버렸다. 고갱은 화가들을 회화의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해방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고흐 역시 고갱처럼 색채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고갱이 붓의 터치를 숨겨 면적인 처리를 한데 비해 고흐는 점묘법을 변형해 꿈틀대는 붓의 궤적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후기인상주의자들은 다른 회화유파와 달리 집단적인 미술운동을 펼친 적은 없었다. 인상주의의 장점을 계승하되 단점을 극복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에 비평가와 미술사가들이 나중에 이런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인상주의자들이 전통미술 원리를 전복시키는 전위였던 데 비해 후기인상주의자들은 20세기 추상미술로 나아가는 새로운

지침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등 이들 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현대 미술가는 이들에게 빚지지 않은 예가 드물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모두 생전에 극도의 빈곤과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세잔은 그나마 ‘불행한 행운아’였다.) 위대한 예술은 배고픔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는 전설은 이들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석범 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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