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짧아지는 인터넷 용어…"빠른 소통이 우선" VS "언어 순수성 해쳐"

입력 2013-09-06 13:59   수정 2013-09-06 14:11


“부장님, 오늘 생파에 생선없으면 저 안습입니다.” 세종대왕이 들으면 당황할 말이지만 요즘엔 직장인 사이에서도 흔히 쓰이는 인터넷 줄임말이다. 풀어보면 ‘부장님, 오늘 생일파티(생파)에 생일선물(생선) 없으면 저 눈물납니다(안습)”의 뜻이다. 젊은 층에서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줄임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용 연령층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선 온라인 줄임말에 익숙하지 않으면 ‘인터넷 왕따’로 까지 몰릴 지경이다. 언어의 최우선 기능이 소통이라는 점에서 인터넷 시대의 줄임말은 나름 역할이 있다는 주장과 언어의 줄임현상이 너무 심해지면서 고유언어를 왜곡하고 표준말의 표기조차 서툴러진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선다.

#온라인 줄임말 오프라인으로

말이 갈수록 짧아진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에 경제성 측면에서 말이 짧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제일 좋아를 ‘젤 좋아’, 내일 보자를 ‘낼 보자’, 자기소개서를 ‘자소서’, 베스트프렌드를 ‘베프’로 줄여 말하는 것 등은 오프라인에서도 일상적 어법이다. 하지만 40, 50대에서는 너무 생소한 말들도 넘쳐난다. 언젠가 한 TV프로에서 ‘지대’라는 단어의 뜻을 50대에게 물었다. ‘얼굴이 땅처럼 넓은 사람’, ‘힘들때 기대라’, ‘계집애들의 대장’ 등 재미난 답변이 많았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은 ‘제대로’라는 말의 변형 줄임말이다. 어원과는 달리 엄청난, 좋은, 훌륭한, 무척 등의 의미로 쓰인다. 50대가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변형이다.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도 줄임말 사용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 기사들의 제목은 아예 줄임말을 쓰기 일쑤고, 제목 글자 수에 제한을 받는 신문도 줄인 제목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강부자’(강남에 사는 부동산 부자),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국조(국정조사) 등은 신문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한 줄임형 제목들이다. 대학·취업문이 좁아지면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언급되는 ‘스펙’(specification)은 줄임말이 일상용어로 쓰이는 대표적 사례다. 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줄임말은 넘쳐난다. 시간이 맞는 친구들끼리 밥을 먹으며 공부하는 ‘밥터디(밥+스터디)’, 잔심부름만 하다가 가는 행정인턴의 줄임말 ‘행인’, ‘북붙’(복사해서 붙여넣기) 등은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줄임말이다.

#언어로 기성세대와 차별화

온라인에서 줄임말이 늘어나는 것은 인터넷, 휴대폰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용량을 줄여 통신비를 아끼고 핵심내용 전달로 소통을 빨리 하려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빠름’만이 온라인 줄임글의 목적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를 들어 온라인 문자에서는 너무를 ‘넘후’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획수가 늘어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온라인 줄임말을 양산하는 것은 청소년 세대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시기라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차별화된 뭔가를 원한다. 즉 청소년은 어른 세대와 차별되는 용어를 쓰고자 하는 심리가 강한데 온라인이 이런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끼리끼리 쓰는 언어’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줄임말이 젊은 세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젊은세대는 ‘동질감’을 중시한다. 무리의 다수와 다른 견해를 섣불리 표출하면 이른바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자기만 모르면 뒤처진다’는 불안감 때문에 SNS를 많이 사용하는 젊은 세대에 줄임말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TV프로들의 경우 그들이 사는 세상, 우리 결혼했어요, 무한도전은 왠지 촌스럽고 ‘그사세’, ‘우결’, ‘무도’로 불러야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청소년 세대다.

#인터넷 줄임말 찬반 논쟁

온라인 줄임말에 대해선 찬반이 갈린다. 옹호론자들은 언어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줄임말은 효율적인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언어는 결국 서로의 약속인만큼 그들이 정한 줄임말로 소통을 원활히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반대론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무엇보다 온라인 말줄임은 세대 간의 소통을 ‘불통’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지나친 말줄임으로 올바른 언어사용이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터넷 용어를 남발하면서 표준말 표기가 서투른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온라인 말줄임은 찬반이 갈리지만 익명이 특징인 인터넷에서 비속어, 욕설 등이 넘쳐나는 것은 더 문제다. 교실에서의 언어폭력뿐 아니라 인터넷 악성 댓글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중·고생까지 생겨나는 형국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고운말은 개인의 품격이자, 나아가 국가의 품격이다. 거친 말은 독으로 돌아오고, 고운말은 덕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올바른 언어의 사용은 성공적인 삶, 품격있는 삶으로 이끄는 ‘제1의 습관’이다.


움짤·갠소·갈비…아리송한 인터넷 줄임말들

인터넷 줄임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줄임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특히 젊은 세대와의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소통이 어려운 지경이 됐다. 말이 갈수록 짧아지면서 젊은 세대도 온라인 줄임말을 수시로 익혀야 할 상황이다.

‘완소’는 완전 소중함의 줄임말이다. 완소남, 완소녀는 일반 대화에서도 많이 쓰인다. 젊은 층에서 주로 사용하는 ‘쩐다’는 아주 대단한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다. 슬프거나 우는 상황을 표현하는 ㅜㅜ나 ㅠㅠ는 SNS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일반적 표기다. ‘흠좀무’는 흠,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겠군요의 줄임말로 애교가 묻어난다. ‘넘사벽’은 넘을 수 없는 사차원 벽의 줄임말로 잘난 사람을 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쩝’은 어이가 없거나 씁씁할 때 쓰는 표현이고, 비밀번호의 줄임말인 ‘비번’은 어느 정도 일상화된 말이다. ‘눈팅’은 자료나 글을 눈으로 보기만 하고 댓글이나 추천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생파’는 생일파티, ‘생선’은 생일선물을 뜻한다.

일상대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레알’은 real을 그래도 읽은 것으로 ‘정말, 진짜’의 의미이고, ‘듣보잡’은 듣도 보지도 못한 잡스러운 것의 줄임말이다. 또한 ‘열폭’은 열등감 폭발,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를 줄인 것이다. ‘볼매’는 볼수록 매력있다, ‘갈비’는 갈수록 비호감, ‘갠소’는 개인 소장, ‘걸조’는 걸어다니는 조각상의 줄임말로 꽃미남을 뜻한다. 뽀대난다의 의미인 ‘간지나다’도 인터넷 용어가 일반 용어로 확산된 사례다. 인터넷 줄임말의 부문별한 사용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지만 줄임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SNS 소통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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