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복지 동시 해결법은 '시장'…정부역할은 규제 완화뿐"

입력 2013-09-06 17:27   수정 2013-09-07 05:55

민경국 교수와 함께한 '경제사상사 여행'을 마치며
만난 사람=김철수 오피니언부장

1년간 51회 시리즈 걸쳐 다양한 성향 경제사상가 소개
'정언명령'의 철학자 칸트…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재조명
중산층 70% 복원하려면 기업활동 촉진시켜야




“홀가분하다기보다는 뿌듯합니다. 지난 1년간은 ‘경제사상사 여행’ 시리즈에만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육십 평생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제사상사 연구들이 좌파 혹은 중도 쪽인데, 이번 기회에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다수 발굴한 것도 성과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이 민경국 교수와 함께 경제사상사 여행 가방을 꾸린 날은 지난해 9월15일이었다. ‘자유주의 수호자 하이에크’를 시작으로 출발한 여행이 지난달 30일 ‘시장진화 사상 개척자 버나드 맨더빌’까지 1년간 51회에 걸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민 교수의 말처럼,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존 케인스,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등 유명 경제사상가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은 물론이고 ‘부르주아 마르크스’라 불리는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개인의 욕심이 결과적으로 사회번영을 가져온다”는 주장으로 하이에크와 케인스에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버나드 맨더빌 등 ‘덜 유명한’ 사상가들까지 분석이 이뤄졌다.

민 교수는 특히 ‘최소국가론의 선구자’라는 부제로 다뤘던 이마누엘 칸트를 철학자를 넘어 경제사상가로 재조명한 것이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라고 말했다. “칸트 하면 따라붙는 말이 정언명령(定言命令)이지요. 어떤 행동이 도덕적이려면 그것을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긴데요. 이는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핵심과 맞닿아있습니다. 시장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신뢰로 각종 거래가 이뤄지는 도덕 그 자체라는 것이지요. ”

지난 4일 민 교수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으로 초청해 인터뷰를 했다.

▷국내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신데요. 자유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자유주의 경제사상이 내세우는 ‘간판’은 ‘시장’입니다. 그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덕목으로 개인주의·법치주의·사유재산·작은 정부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법치주의는 흔히 말하는 ‘법대로 하자’는 의미의 법이 아니라, 도덕과 달리 국가의 강제가 따르는 법이다 보니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죠. 칸트의 ‘정언명령’을 법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원인이 신자유주의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착각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규제는 없애되 통화는 묶어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002년 미국의 IT버블이 터진 이후 9·11사태를 맞자, 미국 정부는 불안심리 해소를 위해 돈을 풀었습니다. 금리가 내려가면서 건설이 늘고 고용과 소비가 증가하는 붐이 일어났죠. 하지만 문제는 그 호황이 저축에 이은 투자를 통한, 정상적인 붐이 아니었던 거죠. 자가주택 보유정책까지 추진하면서 대출조건을 완화하자 집값이 치솟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은 다시 금리 인상에 나섰고 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금융회사들이 위기를 맞았던 겁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주택시장 붕괴로 이어졌죠.”

▷최근 미국 경제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를 두고 ‘역시, 돈의 힘’이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일부 맞는 이야깁니다. 양적완화로 값싼 돈이 풀렸기에 부동산도 제조업도 살아나면서, 고용과 소득도 늘어나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앙은행이 무한정 돈을 풀 수는 없다는 겁니다.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을 심는 꼴이지요. 시장을 왜곡시켜 인위적으로 만든 붐의 참혹한 결과는 수없이 많습니다. 또한 불경기에 대한 전향적인 시각도 필요합니다. 불경기는 왜곡돼 있는 시장, 즉 잘못된 투자를 바로잡는 과정이라는 거죠.”

▷자유주의 입장에서 불경기 해법은 어떤 건가요.

“양적완화 축소가 옳은 길입니다. 하지만 돈줄을 묶으면 기업들은 하던 사업을 접거나 도산하게 되겠죠. 이때 정부에서 할 일이 감세와 정부지출 축소입니다. 통화량 축소가 가져올 충격의 정도를 줄여주는 것이죠. 또 한 가지, 기업들이 자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규제완화가 그것입니다.”

▷한국이 일본식 장기침체의 길을 갈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한국의 경제상황, 즉 지금 이 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 영향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인지 진단이 우선입니다. 만약 2008년 영향이라면 별다른 행동을 취할 게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김영삼 정부(7.4%), 김대중 정부(5.1%), 노무현 정부(4.3)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는 3%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내리막길 성장률의 가장 큰 원인을 규제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를 줄이지는 못할망정 늘린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대표적으로 어떤 규제들이 문제인가요.

“우선 대기업이 뛸 수 있도록 해야지요. 노동유연성도 높여야 하고요. 특히 의료서비스 분야는 규제를 풀어주면 글로벌 무대로 날아오를 거라 확신합니다. 일자리 창출 여지도 큰 시장이고요. 박근혜 정부 들어 주목받고 있는 ‘창조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직접 무엇을 창조하려 하지 말고 기업이 창조경제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합니다. 시장의 자유지수가 높을수록 국민소득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도표 참조)은 ‘시장 없이는 발전도 없다’는 명제의 방증입니다.”

▷여전한 논쟁 가운데 대표적인 게 ‘복지냐, 성장이냐’입니다. ‘제3의 길’은 없을까요.

“제3의 길은 없습니다. 제3의 길은 정부간섭을 의미하는데, 간섭이 시작되면 규제도 빠르게 늘어나게 됩니다. ‘성장 우선이냐, 복지 우선이냐’라는 논쟁도 틀렸습니다. 성장과 복지는 결국 한몸입니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성장이 이뤄지면 복지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경제 성장이 높은 나라일수록 복지 수준도 높다는 게 이를 말해 줍니다. 일각에서 북유럽의 복지를 두고 ‘저 나라들은 복지가 저렇게 잘 돼 있으면서 경제도 잘 돌아가잖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나라들의 경제자유지수는 한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복지제도도 잘 돼 있지만 노동유연성 등 기업의 경영환경도 철저히 보장하는 것이죠. 복지도 소득 하위 10% 정도만 철저히 보호하는 선별적 복지가 답입니다. 나머진 시장에 맡겨야 합니다.”

▷중산층이 62%대로 떨어졌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중산층 70% 복원’이 가능 할까요.

“복지를 늘리는 방식으론 중산층 복원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일자리 창출이 관건인데요. 이를 위해선 규제를 풀어 기업활동을 촉진하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공공 부문 일자리는 국민 눈높이를 맞출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 하이에크…경비원 닦달하던 인간성엔 실망

“뭐니뭐니해도 하이에크지요. 단순히 경제학자라기보다는 큰 비전을 제시한 철학자에 가깝습니다.”

지난 1년간 51명의 경제사상가를 집중 조명한 민경국 교수에게 ‘어떤 사상가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민 교수는 독일 유학 시절 몇 차례 만난 하이에크를 회상하며 경제학자를 넘어선 위대한 사상가라고 말했다.

“하이에크 경제사상은 ‘인간은 무지하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시장이 생겨난 것도 물물교환 목적 외에 최고의 지식을 얻기 위한 장소라고 봤죠. 거래, 제도, 신의성실 등 인간의 행동을 안내하는 곳이 시장입니다. 시장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죠. 곧 시장은 스승인데, 스승을 통제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지요. 가격이란 수많은 사람의 지식과 판단이 녹아 있는 결정체입니다. 이를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고요.”

민 교수는 하지만 하이에크를 인간적으로는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 유학 중에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한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봤더니 하이에크더군요.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이 없다고 건물을 지키는 경비원을 혼내는데, 아주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닦달하더군요. 인간성은 별로였던 것 같아요. 조강지처를 버린 것도 맘에 안 들고요.”(웃음)

민 교수는 집필이 힘들었던 사상가로는 ‘공리주의’로 유명한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을 꼽았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왜곡해 영국을 사회주의로 몰고 간 주역이죠. 분배해도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분배를 강조하는 후학들을 양산한 인물입니다. 이후 대처가 이를 바로잡으면서 욕을 많이 먹었죠.”

민경국 교수는

194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자유주의 경제학의 산실’인 독일 프라이부르크대로 유학 가 경제학 석사·박사를 받았다. 1985년부터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99년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를 설립해 초대회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이념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2010년 제21회 시장경제대상 출판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진화냐 창조냐’(1997년), ‘하이에크 자유의 길’(2007년) ‘자유주의의 지혜’(2007년) 등 20여권의 책을 썼다.

정리=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다음주(9월 14일)부터는 ‘세계 경제를 바꾼 사건들’시리즈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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