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느 항일운동가 3남매의 추석

입력 2013-09-10 17:32   수정 2013-09-11 00:52

벌초 앞두고 자리보전한 아버님
"걱정마세요. 이제 저희가 지킬게요"

이종걸 국회의원·민주당 anyang21@hanmail.net



지난주부터 추석 벌초를 가야 한다던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벌초 장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 1평 남짓한 산소다. 그동안 아버님의 규숙 누님과 규창 형님 등 세 남매가 벌초를 해왔지만 모두 돌아가셔서 이젠 아버님 혼자이다. 이미 어렸을 때 만주 빈민구제원에서 먹지 못해 돌아가신 현숙 누님과 1970년대 초 세상을 떠 대전 애국지사 묘역에 묻힌 규학 큰 형님 산소까지 포함해서다. 막내인 아버님마저 건강이 허락지 않으니 전 가족 항일투쟁사를 이끄신 우당 이회영 할아버지의 2세대는 이제 저물어 가는 듯하다. 1910년 한일병탄기에 태어나기 시작해 망명객으로 만주로, 중국 각지로, 때론 국내에서 전전하면서 한시도 같이 살아보지 못한 삼남매였다. 그래서 산소에서 함께 드리는 추석차례는 삼남매 당신들께는 각별했을 것이다.

삼남매는 나라를 잃은 국민이 된 죄로 전쟁 같은 격랑의 역사 한가운데에 던져졌다. 중국에서 끌려와 사형선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서대문 형무소 재판정에서 동생인 아버님을 처음 본 느낌을 말씀하시면서 “동생의 자식을 데리고 추석 차례를 지내는 것이 꿈만 같다”고 한 규창 백부는 당시에 23세였다. 친일의 거두 이용로 등 여럿을 죽인 혐의로 엄순봉 선생 등 공범들은 모두 사형을 당했지만 규창 백부는 어린 탓이었는지 사형은 면했다. 1920대 후반에 그 많던 재산을 모두 소모하고 극도로 곤궁해진 할아버지는 할머니로 하여금 소액의 독립자금이라도 마련하게 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오게 하셨다. 이때 할머니는 어린 아버님만을 데리고 귀국하셨다. 아버님은 잠시 국내 땅을 밟을 수 있었지만 ‘국가반역의 괴수’인 이회영의 아들은 조선 땅에 온전히 있기 어려웠다. 소학교 소년이었던 아버님은 만주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삼남매는 조국이 해방되자 각자 다른 길로 귀국했다. 추석 때 모인 삼남매는 일제 형사를 보조하던 한국인 고등형사들이 해방된 나라의 경찰이 돼 규창 백부 집과 동지들을 감시하는 것에 분개하셨다. 그러면서도 손주들이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고 식민지 아닌 조국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셨다. 당신들의 어머니가 독립운동가 아내의 수기를 출간하고 월봉저작상을 받으신 기쁨은 그 무엇보다 컸다. 해가 거듭되는 추석 때마다 삼남매와 그 가족은 하나 둘 돌아가셨다.

이제 동작동 애국지사 묘역에는 이회영 할아버지, 이은숙 할머니 산소 곁에 큰아버지 내외 이규창·정문경 산소, 고모 내외 장해평·이규숙 산소가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가 쾌차하시면 모시고 가겠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 이제 벌초와 성묘는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이종걸 < 국회의원·민주당 anyang21@hanmail.ne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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