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社1병영] 이희영 한국열처리 회장, 병무청 복무때 '파독 광부'보며 "일자리 만들자" 결심

입력 2013-10-24 21:42   수정 2013-10-25 04:58

나의 병영 이야기

1963년 1월 논산훈련소로 입대
법대 나온 덕에 행정병 됐다가 악필 탓에 초병으로 보직 변경



“야~너. 진짜 법대 출신 맞아. 혹시 중학교 중퇴 아냐.”

영하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논산훈련소. 이곳에서 겨울을 나본 사람은 전방 못지않게 바람이 세차다는 것을 절감한다. 탁 트인 벌판을 지나 뿌연 흙먼지를 안고 뺨을 때리는 바람은 매서웠다. 대학(고려대 법학과)을 졸업한 뒤 군에 입대한 것은 50년 전인 1963년 1월 초였다. 군번은 ‘11××××××’. 이른바 ‘와리바시(젓가락) 군번’이다.

훈련을 받았던 논산훈련소로 자대 배치됐다. 이른바 ‘자충(자대 충원)’이었다. 덩치가 좋아 훈련병 시절 중대 향도를 봤고 이를 눈여겨 본 선임병이 자대에 남도록 한 것이다. 대졸자가 거의 없던 시절 덕분인지 서무 보직을 받았다. 칼바람 위력을 알고 있던 나는 안도했다.

서무는 인원을 관리하는 보직이다. 수많은 병력이 드나들고 배치되는 것을 관리하는 이 보직은 단 하나의 오차가 있어서도 안 된다. 글씨도 잘 써야 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것을 손으로 써야 했다.

하루는 선임하사가 나를 불러냈다. 아무리 봐도 법대 출신 같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글씨가 문제였다. 그야말로 괴발개발이었다. 선임하사가 소리쳤다. “야 임마, 너 바른 대로 불어. 대학 사칭한 것 아냐.”

사정을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순간 주먹이 날아오고 하늘에선 별이 보였다. 당시만 해도 법대생들은 교수 강의를 받아적을 때 칠판만 보고 아주 빠른 속도로 적었다. 노트는 볼 시간도 없어 자연히 악필로 전락한 것이었다. 서무는 각종 차트도 멋지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업무를 볼 수도 없었다.

그 다음 보직은 경비대대. 쉽게 말해 ‘철조망 보초’였다. 그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많았고 문제를 일으키는 훈련병도 많았다. 위병소에서 근무할 때는 이등병 주제에 ‘병장’ 계급장을 달고 근무했다. 이등병으로는 영내외를 오고가는 병사들에 대한 영이 서지 않아 임시로 병장 계급장을 달도록 부대 차원에서 조치한 것이다.

하지만 틈틈이 탈영병을 잡아 영창을 보낼 때는 마음이 아팠다. 상관에 건의해 어떤 곳도 좋으니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통사정했다.

그래서 이번엔 논산훈련소 비행장 당번이 됐다. 당시 미군 고문관이 자주 논산을 찾았다. 미군기가 보이면 잽싸게 간부들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군생활 중 대여섯 번 보직과 근무지가 바뀌었다.

마지막 병장시절에는 운좋게 서울 병무청에서 병적확인업무를 보게 됐다. 당시엔 독일에 광부로 가려는 사람이 많았다. 국내에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명동 건너편 남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목에 서울병무청이 있었다. 독일 탄광에서 일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조국에 일자리가 없다보니 외국에 광부로라도 나가야 하는 현실이 가슴을 때렸다.

제대하자마자 친구들처럼 사법고시에 매달리지 않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기후현에 있는 일본공구의 수습생으로 들어갔다. 벌건 쇳물이 흐르는 용광로 앞에서 코피를 쏟으며 열처리를 배웠다. 귀국해 1970년 서울 성수동에 한국열처리를 창업한 것도 일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작용한 듯하다.

이제 한국열처리는 보잉사의 랜딩기어를 비롯해 항공기부품을 열처리하고 탱크의 캐터필러를 담금질하는 등 항공기부품 및 방위산업제품 열처리를 담당하고 있다. 요즘은 열처리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군복무 시절 광부파견 희망자들이 병적기록카드를 떼려고 장사진을 치던 시절과 맞물려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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