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개헌 반대하다 중장 예편
브라질 대사 등 외교관길 걸어
故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 깊어
[ 백승현 기자 ] ‘영원한 야전군인’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이 지병으로 25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채 사령관은 특히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 개헌에 반대하다 예편당한 뒤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도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두터운 교분을 이어갔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채 사령관은 1926년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다, 북한에 소련군이 주둔하자 이를 피해 1947년 서울로 내려왔다. 이듬해 4월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에 합격해 육사 5기로 임관했다. 이후 강원 경북 제주 등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에 투입됐다.
1950년 6.25전쟁 직후 북한 인민군에 포위돼 자살을 결심했을 정도의 위기 상황에서 탈출한 채 사령관은 인민군에게 악명 높았던 게릴라부대 ‘백골병단’을 결성해 인민군 후방 교란에 나섰다. 이때의 전과는 한국 국군 전사의 주요한 실전 사례로 꼽힌다.
그는 휴전 이후에도 백골부대를 이끌고 빨치산 및 인민군과 교전해 크고 작은 성과를 올렸다. 1950년대 후반 강릉 9사단에 배치된 그는 육사 선배이자 사단 참모장이던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5·16 쿠데타에 가담했으며 혁명5인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도 참여했다.
베트남전쟁 때인 1965년 주월한국군 초대 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에 임명돼 1969년까지 4년 가까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 2군사령관을 거쳐 1972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예편 당시 유신 개헌에 대한 반대 소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아 ‘영원한 군인’으로 불렸다.
전역 후에는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 등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외교관 시절 박 전 대통령이 자녀 유학비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아 박동진 당시 외무 장관이 “청와대에서 웬 봉투를 그리 많이 내려보내느냐”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군 복무기간 전투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베트남 등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데 힘써 온 그는 대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월남전참전자회 총재도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씨와 1남 2녀가 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 02-3010-2631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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