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현영 기자 ] "명품이요? 브랜드요?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옷, 특이한 악세서리만 찾아다녔어요. '나만의 스타일'을 고집해왔고 '그 옷 어디서 샀어?'라고 누가 물어보면 기분이 정말 좋았죠."
1년 365일 옷 사고 입어보고 대학 주변으로 놀러다닌다는 국가대표 소셜커머스(전자상거래) 쿠팡의 트렌드 여성의류 담당 전환히 MD(32·사진). 그는 '10여년 전 쇼핑하느라 긁은 카드값을 아직까지 갚는다'면서 너스레를 떠는 당찬 MD다.
타고나진 않았지만 이제 술도 제법 마신다고 말문을 연 그는 "지역에서 오프라인 매장만 운영해오던 사장님들을 설득하려면 밤낮 없이 직접 찾아가 질리도록 뵙고 '소주 한 잔' 부딪혀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2년 전부터 서울에서 부산을 제 집 드나들 듯 한 전 MD는 2011년 11월 쿠팡 입사 이후 정확히 24개월 만에 '트렌드 여성의류 미다스의 손'이란 별칭을 얻었다. 그간 팔아치운 옷은 380억 원(딜수 약 2700개)에 이른다. 이는 역대 쿠팡 패션담당 큐레이터 중 단연 '1등 기록'으로 꼽힌다.
갑자기 몰아친 한파로 몸이 잔뜩 움츠러든 11월 마지막날. 새 옷들을 입어보느라 덥다면서 얼음이 잔뜩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와 마시던 전 MD. 그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쿠팡 본사에서 만났다.
◆ '2점대 학점' 허덕이던 문예창작과 졸업장 버리고 꿈꾸던 '옷더미'에 파묻혀
'사진 작가'로 일해온 아버지의 권유로 전 MD는 대학에 진학해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일찍이 그의 오빠는 미술을 전공해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만 확실한 목표를 세우지 못한 탓이다.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은 작가였다.
"솔직히 대학에 다니면서 매번 '이곳에 왜 앉아 있을까'하고 고민한 적이 많았어요. 어릴 적엔 '패션디자이너'로 살고 싶었는데 오빠와 달리 전 그림에 소질이 없더라구요. 인생의 방향도 잡지 못하고 이쁜 옷만 찾아다니다가 이쪽 방면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낸 직업이 바로 패션 MD였어요."
잠시 전공을 살려 패션잡지 에디터(편집자)로 지원해 볼 마음도 가져봤지만, 평소 옷 고르던 모습대로 잘 모르던 MD로서 삶이 더 끌렸다는 그는 마침내 가장 좋아하고 잘하던 분야에서 '천직'을 만났다.
"MD로 6년 정도 일해오면서 '일하는 중'이라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옷을 사며 좋아했는데 직장에서 트렌드 옷더미를 매일 구경하고 입어보고 있잖아요. 요즘엔 '365일 놀면서 일한다'는 말이 꼭 저를 두고 하는 얘기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꿀맛 같은 주말도 휴일도 전 MD에겐 없다.
"주로 차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쇼핑하면서 놀잖아요. 그 모든 것이 제 일이거든요. 그래서 주말엔 일부러 번화가와 대학가 주변을 다니면서 젊은 여성들의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하고 평상 시 잘 다녀보지 않은 곳의 오프라인 매장도 들어가 봐요. 디자인이 정말 예쁜데 가격까지 저렴하면 협력사로 곧장 달려가 비슷한 옷을 찾아달라고 하죠."
불현듯 유교경전인 논어의 어록 중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란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타고난 가정환경에서 자란 MD…'불모지' 소셜커머스에 '아우터·원피스'를 입히다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가정환경 덕분이었다. 소위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집안의 막내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사진작가로 일하면서 사진잡지에 평론도 많이 썼어요. 학교에 사진 강의도 자주 나갔죠. 오빠는 일찍부터 미술을 전공했어요. 어머니도 오래 전에 강남지하상가에서 악세서리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그때 어린 절 참 많이 꾸며주셨어요. 그렇게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의 첫 사회생활은 소셜커머스 분야가 아니다. 2007년 GS홈쇼핑 의류담당 주니어 MD로 입사해 3년 만인 2010년 NS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겨 2년 가까이 더 MD 일을 터득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브랜드 위주로 움직이는 MD보다 항상 독창적인 스타일을 찾아내고 알리고 싶었다.
"때마침 '소셜커머스'란 새로운 유통채널이 나왔어요. GS와 NS홈쇼핑을 거치면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지만 항상 이전보다 주도적인 나만의 트렌드 의류를 발굴하고 싶은 열정은 커져만 갔죠.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사표를 내고 도전했어요."
2011년 11월 드디어 '불모지'와 같았던 소셜커머스 쿠팡의 의류담당 시니어 MD가 된 그는 입사하자마자 적응할 새도 없이 영업부터 다녀야했다고 그 당시를 떠올렸다.
"처음엔 너무 황당하더라구요. 마케팅 시스템은 커녕 팔아야 할 상품부터 당장 발굴해서 입점시켜야 했죠. 그래도 너무 행복했어요. 이전 직장에선 협력사와 거래하는 일이 너무 뻔했거든요. 브랜드 위주로만 움직이는데 이곳에선 디테일한 부분까지 진짜 기획다운 기획을 할 수 있었어요."
입사 이후 지금까지 그는 쿠팡 패션 담당 MD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누적 매출액은 약 380억원, 누적 딜수는 2700개를 웃돈다. 트렌드 의류가 1~2만원대 저렴한 가격대로 팔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믿기 힘든' 판매 기록으로 평가된다. 하루 평균 5~10개 딜을 진행했다는 얘기다.
◆ 2012년 기다리던 첫 '대박' 오픈마켓 탑셀러 입점…"1년 동안 부산 찾아가 술 마셨다"

일명 기다리던 첫 '대박'은 입사한 지 불과 5~6개월 만에 터졌다. 오픈마켓이 '잘 나가던' 당시 패션 분야에서 인기 1~2위를 다투던 아우터(코드·카디건 등 겉옷) 업체 '마크막스'를 NS홈쇼핑 시절부터 포함해 꼬박 1년 가까이 찾아가 직접 입점 계약을 따낸 것이다.
"오픈마켓 탑셀러이던 '마크막스'를 굉장히 론칭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업체는 이미 오픈마켓에서 안정적으로 판매하며 공고히 자리를 잡았던 터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셜커머스라는 곳에 물건을 줄 이유가 없었죠. 꼭 이곳의 인기 아우터를 팔고 싶어서 1년 동안 부산에서 직접 사장님을 만났어요. 무작정 내려가서 저녁에 뵙자고 해 술 마시면서 지속적으로 제안 드리고 열정을 보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마크막스'를 입점시켜 5일 동안 특집전을 연 전 MD는 하루 평균 5~6000장, 모두 2억장(약 2억2000만원)이란 판매고를 올리며 쿠팡을 경쟁력 있는 유통 채널로 급부상시켰다. 이후 그와 파트너사는 공고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단독 쿠팡' 특집전을 마련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 MD는 트렌드 여성의류 시장에서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진 '익일배송'을 성공시킨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쿠팡의 배송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너무 센 차별전략인 셈이죠. 입점을 앞둔 업체들조차 까다로운 배송 조건을 듣고나선 손사래를 쳤어요. 이 와중에 트렌드 여성의류를 '익일배송'해야한다면서 업체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트렌드 여성의류의 익일배송은 그 어느 유통 채널도 시도해 보지 못한 영역이었어요."
일부 파트너사와 익일배송을 시도하면서 가파르게 매출이 오르자 전 MD도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 도전으로 '가능성을 엿본' 전 MD와 파트너사의 경우 지금은 다음 시즌의 예상 재고를 넉넉히 확보, 트렌드 여성의류의 익일배송 시대를 열어제쳤다.
지난해 2월부터 이름을 알린 '날씬스키니 팬츠'의 경우 직접 딜 이름을 지어 스키니진의 컨셉을 한층 살린 경우다. '날씬스키니'란 상품명은 벌써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아 다른 곳에서도 판매 중이다. 전 MD 덕분에 '단독 쿠팡' 상품은 잇따르고 있다. 역시 오픈마켓에서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많은 인기를 얻은 '리얼코코'도 그 사례다.
◆ "'고맙다'고 말해줄 때 가장 기뻐…MD는 꼼꼼하지 못하면 필패(必敗)다"
단기 목표는 당연히 '소셜커머스 업계 판매 1위 MD'다. 또 6년 이상 MD로 지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밤잠을 설치면서 영업에서 배송까지 모든 업무를 맡아서 뛰어다니는 영세한 협력사들이 '고맙다'고 말해줄 때라고 그는 전했다.
"안정적인 MD 자리를 박차고 도전한 곳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이 성장해서 정말 뿌듯해요. 그래도 협력사들이 '고맙다'고 말을 건네면서 제 손을 꼭 붙잡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 더 행복해요. 불과 2년 전에만 해도 이곳저곳에서 무시당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눈물이 날 정도에요."
아찔했던 순간도 털어놨다.
"입사 직후엔 급한대로 친분이 있던 협력사와 거래를 진행했었어요. 매출이 비교적 많이 잡혀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물건을 납품해온 공장이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갔죠. 고객들에게 모두 전화해 보상해야 했던 엄청난 사고를 겪었죠."
그래서 MD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으로 그는 '꼼꼼함'을 꼽았다.
"아찔했던 그 사건 이후로 몸소 재고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MD는 '디테일'이 생명이에요. 꼼꼼하지 못하면 절대 이 일 못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0% 사고로 돌아와요. 무엇보다 소셜커머스 MD는 다른 유통 채널에 비해 잡일이 굉장히 많아요. 지치지 않으려면 꼭 일을 즐겨야만 합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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