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기소개서

입력 2013-12-06 21:2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요즘 자기소개서는 꼭 ‘셀카’ 같다. 모두들 어떻게 하면 더 멋있고 예쁘게 보일까 하고 이리저리 각도를 잰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지우고 잘 나온 사진만 남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셀카는 유명 연예인의 밀랍 표정이나 국적 없는 성형미인과 닮았다.

자기소개서의 본질은 생면부지의 채점관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최대한 솔직하게 알리는 것이다. 입학시험 때부터 취업, 이직, 임원 공모 등 모든 선발 과정에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민낯은 가리고 화장발로 덧칠한 모습만 보여주려 애쓴다. 모범답안에 나올 것 같은 가공인물을 닮으려고 포장하기도 한다.

틀에 박힌 미사여구만 나열하거나 고릿적 문구까지 갖다 쓰는 개념상실형, 아무 정보도 없는 무색무취형도 있다. 대표적인 게 ‘유복하지는 않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고,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며, 학창 시절에는 줄곧 개근상을 탔고…’ 등이다. 이런 건 자신의 기본 교양까지 의심받게 만든다.

단순 경력만 나열하면 “너, 영조대왕이냐”는 소리를 듣는다. 최장기간(52년) 재위한 영조는 ‘자서’에다 몇 살에 작위를 받고 몇 년에 무슨 예를 행했으며 어떤 벼슬을 거쳤는지만 열거해놨는데 이런 건 빵점짜리다.

자기소개서를 아예 남에게 맡기는 ‘대필파’도 많다. 그래서 ‘애들 자기소개서는 학원이 다 써주고 어른들 자기소개서는 헤드헌팅업체가 써준다’는 말까지 나돈다. 거대 공기업 회장 자리는 물론이고 수많은 산하기관의 임원 공모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러나 남이 써주는 글에는 진짜 경험이 빠져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어서 장단점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변별력도 없다. 그야말로 몰개성의 극치다.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란 그 사람의 개성이 잘 드러나서 ‘이 사람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가 돼야 한다. 엊그제 만난 한 기업 임원은 “모두가 비슷한 얘기여서 고민하다가 한 사람이 눈에 들어 바로 채용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어릴 때 맨발로 다니다 파상풍에 걸린 게 마음 아파 방학 때마다 네팔 등 오지에서 자신의 헌 신발을 나눠주며 봉사했다는 경험을 높이 샀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소개서는 자신의 진면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소통도구여서 나를 내세우려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상대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게 더 중요하다. 글이나 말이나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위선과 기만으로 분칠하면 남도 금방 알아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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