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유럽 집시가 생계 위협"…경제난 西유럽 '부글부글'

입력 2013-12-15 21:52  

글로벌 이슈

이민자 관대했던 英·佛·獨…최근 이주민 복지 대폭 축소
구걸·소매치기 등 범죄 급증에 서유럽 부국들 불만 확산
이주민 대다수는 집시족…'빈곤 이민'에 극우세력도 활개



[ 김보라 기자 ]
‘하나의 유럽’을 외치며 국경을 허무는 데 주력해온 유럽연합(EU)이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위기로 불거진 이민자 갈등이 주된 원인이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경제난이 심해지는 가운데 이주민들이 몰려와 자국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루마니아·불가리아 엑소더스 예고

분열의 도화선이 된 건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다. 두 나라는 2007년 EU에 함께 가입했다. 문제는 내년 1월1일부터 두 나라에 대한 이주 제한이 풀리면서 노동시장이 전면 개방된다는 것.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두 나라에서 서유럽 부국으로 대량 이주가 시작될 게 불 보듯 뻔하자 이민을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유럽 이민자들은 이미 서유럽 부국의 골칫덩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인신매매와 조직범죄, 부패 등으로 EU 내에서도 악명이 높은 나라다.

동유럽 이주민들의 제1종착지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속에서도 실업률이 가장 낮았던 독일이다. 독일 연방노동청은 내년부터 연 10만~18만명의 이주민이 더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1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서 독일로 이주한 사람은 14만7000만명으로 두 나라가 EU에 가입한 2007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실제 독일 중서부 도르트문트의 노르트슈타트는 수백명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출신 이주 여성들이 집단 성매매를 하는 슬럼가로 전락했다. 이들은 거리에서의 호객행위를 금지하자 주택가까지 숨어들었고, 한 방에서 20여명이 집단 거주하며 도시 슬럼화를 부추겼다. 프랑크푸르트 만하임, 도르트문트 인근의 뒤스부르크도 같은 이유로 범죄율이 높아졌다. 뮌헨에는 최근 2년 새 1만명이 넘는 이주민이 유입됐고, 이들 상당수는 노숙 중이다.

프랑스와 영국도 다르지 않다. 파리 시내에는 루마니아 조직범죄단이 소매치기와 절도를 일삼고 있고, 런던에서는 개인 정원에까지 침입해 쥐를 잡아먹고 사는 노숙인들로 연일 신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럽의 집시 ‘로마’ 도마 위에

동유럽 이주민 중에는 유랑민족 ‘로마(집시)’가 상당수다. 로마는 수백년간 유럽 전역을 떠돌며 끊임없이 차별받아온 민족이다. 유럽 내 인구만 1200만명으로 추산되지만 범죄의 온상으로 낙인 찍히며 경제 한파가 몰아칠 때마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이민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창이던 지난 9월, 마침 그리스에서 ‘금발의 소녀 마리아’ 사건이 터졌다. 그리스 중부의 로마 거주지에서 마약 단속을 하던 경찰이 이 금발의 소녀가 부모와 전혀 닮지 않았다며 유전자 검사를 한 것. 결국 국제경찰 인터폴까지 가세해 친자가 아님을 밝혀냈다. 이들 부부가 등록한 아이는 모두 14명으로 드러났다. 출생신고의 허점을 이용해 중복 출생신고를 한 뒤 다자녀 정부 지원금으로 매달 2500유로(약 360만원)를 받아온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마들이 아동을 유괴하거나 매매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면서 유럽 전역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의 인권 문제도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EU 17개국 장관들은 반인종 차별을 강조하는 ‘로마 선언’을 채택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는 한 이들에 대한 적개심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민장벽 높이는 서유럽 부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최근 동유럽을 탈출하는 이주민에 대한 복지 혜택을 대폭 제한하기로 했다. 실제 영국은 EU 이주민 실업자가 지난해 61만명에 달해 건강보험 부담이 연간 15억파운드(약 2조5689억원)에 달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달 27일 “EU 이주민에 대한 실업수당 등 복지 서비스의 문턱을 높이겠다”며 “EU 회원국 국민들의 이동 자유에 관한 규칙도 재협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빈곤에 의한 이주가 곳곳에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며 가세했다.

다문화와 통합의 상징이던 유럽에 이민장벽이 점점 높아지자 루마니아의 모니카 마코베이 유럽의회 의원은 “영국 등이 동유럽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서유럽 국가들이 동유럽 국가에 저렴한 생산 비용 등을 이유로 공장을 세울 권한도 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빈곤 이주’ 늘자 극우파 활개

이주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유럽 통합은 물론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세력도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지지율이 사상 최고 수준인 30%대까지 치솟았다. 국민전선은 지난 10월 프랑스 동남부 도의원 보궐선거에서도 53.9%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영국에서는 반유럽주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의 지지 기반이 확대되면서 집권 보수당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최근 이주민 정책과 관련해 신뢰하는 정당을 묻는 설문에 UKIP의 지지율이 22%로 야당인 노동당(17%), 보수당(11%)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네덜란드에서도 EU에 반대하는 우파 정당인 자유당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고, 노르웨이에서는 반이민 가치를 내건 극우 성향 진보당이 총선에서 약진해 연립정부에 처음 진출했다.

EU가 표방하는 가치인 통합과 다문화주의는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반유럽 반이민 성향의 극우정당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차기 유럽의회에서 친유럽 세력이 극단적 세력에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도 크다. 프랑스 국민전선과 네덜란드 자유당은 이미 선거연대에 나섰다.

차기 유럽의회에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EU가 추진하는 재정적·정치적 통합 노력은 암초에 부딪힐 전망이다. 극우 세력이 강력한 원내 세력으로 부상할 경우 EU 내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국경 철폐를 선언한 ‘솅겐조약’을 거스르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은 “극단적 세력에 주도권을 내주는 일이 없도록 친유럽 세력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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