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茶山 석학'에게 듣는다] 유병삼 교수 "정부 단기과제에 너무 쏠린 듯…노동·복지정책, 경제와 함께 가야"

입력 2014-01-03 21:24  

(4)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복지는 미래 세대의 '곶감'
보편적 복지는 문제 많아…경제보다 앞서나가면 어리석은 복지일 뿐

일본은 거의 민간이 철도운영
공기업 최대 문제는 비효율성…경쟁 도입하면 원가절감 가능, 낙하산 인사는 개혁 '걸림돌'



[ 주용석 기자 ]
“민영화가 경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철도노조 파업으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민영화 논란에 대해 “공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공기업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민영화나 경쟁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복지 예산이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서는 등 복지가 확대되는 데 대해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거둬들이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에 경제(성장)보다 늦게 가야 한다”며 “경제보다 앞서나가는 복지는 어리석은 복지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연세대 상경관 연구실에서 유 교수를 만났다.

▷민영화 논란이 뜨겁다.

“국가 기간사업은 민영화하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분야는 민간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가지고 있다. 철도만 해도 일본은 거의 다 민간이 한다.”

▷‘민영화하면 요금이 오른다’는 우려가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요금 인상의 의미는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가령 어떤 공공요금이 현재 1만원인데 민영화하면 3만원이 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2만원은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런 사실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정부는 경쟁체제만 도입하겠다고 한다.

“공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비효율이다.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를 고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철도 회사 두 곳이 경쟁한다고 치면, 사실 요금을 가지고 경쟁하기는 어렵다. 결국 (누가 더 원가를 줄일 수 있느냐와 같은) 비용 측면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고 이는 효율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공기업 수뇌부를 비전문가나 정치인 같은 낙하산 인사로 채우는 것부터 고쳐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장으로 오면 회사 사정을 잘 모른다. 결국 회사의 실질적 운영은 회사에 오래 있었던 부사장, 전무, 상무들이 거의 도맡아 하게 된다. 강력한 개혁이 어렵고 공기업이 방만해지기 쉽다.”

▷복지 예산이 (올해) 처음 100조원을 넘었다.

“복지 이슈를 너무 일찍 끌고 들어오는 건 조심해야 한다.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거둬들이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에 경제보다 뒤늦게 가야 한다. 경제보다 앞서나가는 복지는 어리석은 복지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복지를 꼽는다면.

“보편적 복지가 대부분 다 문제다. 선택적 복지는 정당성을 갖지만 개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까지 포괄적으로 복지를 늘리는 일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70%에 준다고 하는 데 이것도 높다고 본다. 복지는 미래 세대의 곶감인데 이걸 미리 다 빼먹어버리고 후손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해선 안 된다.”

▷복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내는 게 맞지만 소득세는 내는 사람의 저항이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소득세 인상으로도 재원이 부족하면 결국 누구나 보편적으로 내는 소비세(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한다.”

▷최근 1년간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됐는데.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기업이 경제권력을 통해 불공정행위를 저지르는 걸 막는다는 측면에선 좋다. 하지만 단지 기업의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기업 활동까지 매도하고 규제하려 드는 것은 경제에 좋지 않다. 경제에 ‘민주화’라는 말이 붙으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흐를 위험이 커진다.”

▷왜 그런가.

“경제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에 ‘민주화’란 말을 쓰면 한쪽은 정의가 되고 다른 한쪽은 ‘정의가 아닌 것’이 될 위험이 있다. 대형마트가 한 달에 두 번 쉬는 게 정의인가.”

▷한국 경제를 진단해달라.

“한참 신 나게 달려오다 이제 힘이 부쳐 탄력을 잃고 비실비실하는 경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지만 그걸 100%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비실비실한 경제에서 벗어나려면 뭘 해야 할까.

“단기 부양책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 노동정책이나 복지정책을 짤 때도 경제의 선순환, 지속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경제 부총리나 기획재정부는 너무 단기 과제에 빠져드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신경써야 할 건 뭔가.

“투자는 결국 저축을 가지고 하는 거다. (소득이나 이익 중에서) 얼마를 소비하고 얼마를 투자할지, 정부가 그 규모를 어떻게 관리하고 이끌어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창조경제도 모방경제, 단순한 복제경제,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자는 것 아닌가.”

▷투자가 저조하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투자가 늘어나려면 기업이 ‘투자하면 장사가 잘 될 것’이란 전망을 갖게 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들을 만나 왜 투자를 안 하는지 의견을 듣는 게 먼저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국산품에 좀 더 애착을 갖는 ‘바이 코리아’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수주의처럼 들린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해외 제품을 직접 구입하는 ‘직구족’이 늘고 있다. 외제품 소비가 늘어나는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보다 빠른 것 같다. 과거에는 수입품이 대부분 투자재나 자본재였기 때문에 수입 증가가 성장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소비재 수입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소비재를 많이 수입하는 경제가 되면 국내 기업들을 죽이는 결과가 된다.”

▷외국의 좋은 물건을 싸게 사면 이득 아닌가.

“소비자들이 물건을 소비하면서 얻는 만족감은 올라가겠지만 이것과 경제 활력은 별개다. 우리 국민들이 국산품을 사줘야 공장도 돌아가고 소득도 생기지 않겠나.”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뭘까.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터지면 큰 사단이 나는 지정학적 위험과 가계부채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면 회복 중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외적인 위험 요인은 뭐라고 보나.

“일본 경제가 아베노믹스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과 달리 일본 제품은 품질이 좋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생기면 우리한테는 큰 위협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까.

“(작년 초)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한다고 할 때 금리를 좀 더 내렸어야 했다. 이제는 늦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거둬들이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으면 선진국에서 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제 와서 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 당분간 올리지 말고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원화 강세 흐름은 막아야 할까.

“한번 생긴 흐름을 막는 것은 어렵다. 억지로 막다가는 부작용만 생긴다.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보다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 원화 강세 압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해외 투자를 지원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책 당국자나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사실 영화나 TV는 거의 안 본다. ‘지지고 볶고 말초신경 건드리는’ 프로그램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그보다는 인터넷에 들어가 국내외 유명대학이 올려놓은 다양한 강의를 권하고 싶다.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손쉽게 배울 수 있다. 이제 어느 대학에서 배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뭘 배우고 싶은지 아는 게 중요한 시대다.”

■ 유병삼 교수는…경제 이론 통계로 분석, 거시 계량경제학 권위자

경제 이론을 각종 통계로 실증분석하는 거시 계량경제학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다. 2008년 국제 학술정보 작성기관인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가 선정한 ‘자주 인용되는 연구자’ 5000명 중 국내 경제학자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학부 때 응용통계학을 공부한 유 교수가 계량경제에 눈을 돌린 계기는 1979년 한국은행에 다닐 때다. 당시 경제예측 모형 개발을 위한 사내 계량경제 연구모임에 참여하면서 계량경제학에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이후 계량경제학으로 유명한 미국 UC샌디에이고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 과정을 마치면서 학자의 길을 걷게 됐고 2009년 제28회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충북 충주(62)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미국 UC샌디에이고대 경제학 박사 △한국계량경제학회장(2003~2004년) △연세대 상경대학장 겸 경제대학원장(2010~2011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1994년~현재)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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