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 숙청은 김정은 관리능력 떨어지는 증표… '급변사태≠체제붕괴'
[ 김봉구 기자 ] 북한이 이례적으로 연거푸 '중대제안'을 해 왔다. 상호비방 및 자극행위 중지,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핵재난 방지조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우리 정부가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실천적 행동을 먼저 보여주겠다"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유화 제스처일까, 위장 전술일까. 얼마 전까지도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거절한 북한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 배경이 궁금했다. 북한의 중대제안이 알려진 다음날인 17일 박종철 북한연구학회 신임 회장(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 회장은 "이번 제안은 북한이 취하는 '이중전략'의 일환"이라며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 중단을 전제로 하고, 핵재난 방지조치 또한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우리 측의 핵우산 제거에 초점을 맞춘 듯 보여 중대제안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학회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 견해"임을 강조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은 대박' 발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막연한 담론 수준을 벗어나 피부에 와 닿게 통일의 필요성을 표현했다는 평가. 이제 비용과 편익을 구체적으로 따져 통일 준비를 해야할 때란 설명도 뒤따랐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박 회장은 "장성택 숙청은 김정은의 관리·조정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생각보다 김정은의 리더십이 확고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지만 북한에 단기간 내 '급변사태'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다"며 "또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최고지도자 교체, 정권 변화, 체제 붕괴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어 곧바로 북한 붕괴가 일어나는 것처럼 도식화해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 북한 측 제의, 어떻게 봐야 되나.
"북한은 장성택 숙청 이후 우리 측에 대해 이중전략을 택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내부 상황의 국면 전환을 위해 도발을 감행하는 등 남북관계에 긴장감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주민생활 개선을 통해 지지를 확보하고, 국제적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도 있다. 이번 조치는 그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우리 측은 제의를 받지 않았다.
"진정성이 의심된다. 우리 측 입장은 상대방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사항인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신뢰를 쌓고 나아가 남북관계 개선을 전반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 우리 측 원칙인데, 이 대목에서 북측이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제의를 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인 것 같다."
- 어떤 내용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요구가 그렇다.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움을 알면서도 이를 전제로 '중대제안'을 한 것은 책임 회피 성격이 짙다. 장성택 숙청으로 인한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면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핵재난 방지조치 역시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한국의 핵우산 제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진정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이 이슈가 됐다.
"의미 있다고 본다.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비용 부담을 들어 통일을 반대하는 견해들이 많다. '통일은 대박'이란 표현은 통일이 여러 비용을 초래하고 정치·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만 있는 게 아니라, 경제적 도약의 발판이 되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긍정적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 계산된 표현이란 얘기인데.
"통일이 고령화나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다만 진정으로 '통일은 대박'이 되려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동일 업종을 개업해도 대박집이 있고 쪽박집도 있지 않나. 통일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이제 통일 대비 시스템을 갖추고 정부, 민간단체, 개인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다."
-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 회장이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통일엔 비용이 들어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편익도 있다. 통일비용은 기관이나 개인마다 선정 기준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크게 보면 통일비용은 초기 안정화 비용, 각 부문별 제도·기구 등의 통합비용, 북한 주민에 대한 사회복지비용,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비용 정도로 나뉜다. 통일비용은 딱 정해진 게 아니다. 목표와 능력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 비용 대비 편익이 어느 정도 될지가 핵심 아닌가.
"통일 편익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분단비용인데, 가장 눈에 띄는 게 국방비 감소다. 통일이 되면 안보 불안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우리의 경제력 자산이나 기업가치가 저평가 돼 있는 부분을 만회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산출할 수 없는 분단으로 인한 정치적·사회적·심리적 비용 해소도 있다. 또 하나는 통일로 인한 순수한 이익이다. 전세계가 자원경쟁, 인구노령화 문제로 도전받고 있는데 통일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최소 7000억 달러 이상의 지하자원 매장, 군복무 중인 120여만 명의 젊은 노동력… 모두 북한의 이점이다. 무엇보다도 통일되면 북한 지역 재건에 많은 투자가 뒤따른다. 로저스 회장뿐 아니라 김용 세계은행 총재도 북한에 개발자금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시장은 극동아시아 자원개발과 연결돼 있어 한반도를 넘어 새로운 경제협력 기회가 마련되고 새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 하지만 여전히 통일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통일비용이 막대할 것이란 견해는 독일 사례를 참고해 사회복지비용을 산정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비용 규모는 어떤 식으로 북한 주민에게 복지 혜택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통일비용을 단순 투자비용으로만 보고 투자에 대한 이익 회수는 감안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분단으로 인해 저평가된 부분도 원상회복되면 우려처럼 통일비용이 엄청나지는 않을 것이다."
- 화제를 바꿔보자. 최근 통일담론이 부쩍 늘었다."통일문제엔 두 가지 접근법이 존재한다. 우선 분단의 안정적 관리를 통한 평화 정착, 협력 증진이 있다. 또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목표가 있다. 그동안 정부에 따라 때로 분단 관리에, 때로 통일 달성에 비중을 뒀다. 대체로 보수 성향 정부가 분단 관리, 진보 성향 정부가 통일 달성에 치중했는데 이젠 이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
- '평화통일'이란 용어를 갈라 보면, 평화에서 통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 같다.
"분단 관리와 통일 달성을 동시에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 정부냐, 진보 정부냐를 떠나 양자가 함께 가야 하는 상황이다. 한반도 전쟁 발생 방지도 중요하지만 국내외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게 국민적 공감대 아닌가."
- 정부도 그렇지만 야당도 '북한민생인권법' 추진을 들고 나왔다.
"이게 출발점일 수 있다. 정부 성향에 따라 통일문제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다. 통일은 북한 정부만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주민들과의 접점이 중요하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 '통일 대박'의 혜택을 어떻게 공유할 것이냐 같은 문제가 핵심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민생문제 해법이 결국 통일의 주요과제가 될 것이다."
- 종북 논란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핫이슈인데.
"우리 사회는 그간 정치세력들이 지나치게 진영논리에 빠져 있었다.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많이 했는데 그걸 벗어나 어떻게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통일을 달성할지, 이를 위해 뭘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할 시점이 됐다. 여야가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회 내에서 통일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면 좋은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 장성택 처형에 대해 여러 설이 제기됐다. 진실은 무엇인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우선 개인 간 권력투쟁이 있었고 여기에 당·군 등 북한 주요 국가기관과 그 기관을 관장하는 개인 간의 이권갈등까지 중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알다시피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상적 경제체제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이권을 중심으로 국가기관들이 경제적 이권을 할당받아 국가를 분할경영 하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상층 엘리트 간 갈등이 불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은은 어떤가. 지배체제를 굳혔다는 얘기도 있고, 반면 실권이 없다는 설도 나왔는데.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볼 수 있다. 김정일 때만 해도 여러 갈등을 잘 조정했는데 김정은은 이걸 잘 못하는 것 같다. 조정이 안 되니 극단적 숙청 사례가 나오는 것이다. 리영호가 제거되고 또 장성택이 처형되고… 리더십의 한계로 보인다."
- 김정은의 관리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 김정은이 김정일에 비해 관리·조정·통제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예측이 쉽지 않지만 권력 상층부에서 김정은에게 직접 도전할 세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최룡해가 김정은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장성택을 숙청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김정은이 조정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 급변사태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하는지.
"현시점에서 단기간 내에 북한 권력층에 큰 변화가 있을지 없을지는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북한 급변사태란 게 뭘 의미하는지 세분화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실각인지, 북한 정권의 교체인지, 체제 자체의 붕괴인지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너무 단순화시켜서 '급변사태는 곧 북한 붕괴'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 로드먼이 유일한 외교창구 역할을 하는 비정상적 상황이다. 북한이 어떻게 갈 것이라 보나.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제사회 투자 유치나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다. 중국과의 교역 확대나 투자 유치에도 한계가 있다. 중국 역시 여러 전략적 고려로 김정은 체제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조치는 취하겠지만,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은 상당한 부담이다. 무조건적 지지나 경제발전 협력 확대는 없을 것이다. 결국 북한이 바뀌어야 할 문제다."
- 올해 학회는 어떻게 이끌어 갈 계획인지.
"10월쯤 사상 처음 북한연구 '세계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국내외 연구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북한연구 방향을 점검하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비교하는 자리로 만들겠다.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의 학자들을 초청하고 우리 학회가 허브 역할을 맡을 것이다. 또 김정은 시대를 다방면으로 분석하는 학술연구총서 발간, 우리 사회의 다양한 수요층을 겨냥한 맞춤형 통일 관련 포럼도 분기별 개최도 추진할 생각이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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