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공학한림원 토론마당] "공대, 기술 가르치는 사람 없고 연구자만…대학 평가방식 바꿔야"

입력 2014-02-18 20:56  

'공대 혁신의 길을 묻다'

교수 평가 SCI논문에 편중…산학협력·교육 등 세분화를
융합 강조로 전공과목 축소, 기본지식 부족…자질 저하
대우 퇴직한 KIST 연구원, 국내 갈 곳 없어 MIT 교수로



[ 김태훈 기자 ] “공과대학은 산업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탐구해야 하는 데 언제부터인가 기업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습니다.”

‘공대 혁신의 길을 묻는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의 진단은 일치했다. 공대가 산업현장으로부터 괴리됐다는 것. 논문으로 모든 걸 평가하다 보니 산업을 잘 알고 탐구하려는 시도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기존 평가지표인 논문에서 벗어나 산학 협력, 기술사업화, 교육 등으로 평가지표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견해였다. 융합을 강조하면서 전공필수 과목을 줄였는데, 이게 도리어 공대생들의 기본 능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과 멀어진 공대

이준식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공대에서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사라지고 연구자만 남은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진단했다. 이 부총장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만든 공과대학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재료공학에는 철강, 제철 담당교수가 없고 전기공학에는 강전, 발전, 송전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며 “대학과 관련된 모든 평가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성과에 치우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설립 취지와 목적이 다른 200여개의 대학이 있지만 모두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게 이 같은 평가 방식에서 비롯된 모순이라는 진단이다. 현재 대학 연구개발(R&D) 과제의 90%가 정부로부터 나오는 것도 공대가 기업과 분리된 증거로 꼽힌다. 기업이 돈을 내는 R&D 과제 비중은 한때 40%에 달했지만, 최근 10% 미만으로 줄었다.

채수원 고려대 공대학장(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도 “대학 교수 승진, 재임용 평가의 80~90%가 논문에 의해 좌우된다”며 “산학 협력 잘하는 사람, 교육을 잘하는 사람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공대 내부의 트랙과 평가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길주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최근 창조경제를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창업하라고 하는데 이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창업 경험이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KIST 연구원으로 일하던 후배가 대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회사가 망한 뒤 국내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했지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교수로 영입한 일이 있다”며 “국내 대학이 이 같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섭 강조하다 놓쳐버린 기본 자질

교육 방식에서 문제를 찾는 진단도 많았다. 융합형 인재를 키우려 학생들의 전공 수업 부담을 줄였는데 이게 도리어 공대생의 기본 자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승권 LG전자 사장은 “창의와 융합을 강조하지만 결국 기본이 튼튼하지 않으면 무엇도 할 수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공대 출신 학생들의 기본 실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느냐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채 학장은 “전공 필수과목을 제대로 안 듣고도 졸업할 수 있다 보니 기초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융합과 전공 기본 교육을 어느 수준에서 균형을 맞출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에 입학하면 누구나 졸업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강신영 바른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상임대표(전남대 교수)는 “암기식 학습에만 길들여진 학생들이 대학 입학 후 저학년 때는 책을 놓고 학문과 멀어졌다 고학년 때는 다시 취업에만 몰입하는 게 문제”라며 “미국처럼 2~3학년 전공 선택 때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 승인하는 등 전공 기초과목을 열심히 하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게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입학만 하면 누구나 졸업할 수 있는 한국식 대학 제도로는 우수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공대에 맞는 재정지원 필요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독일의 산업기술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는 산업체로부터 기술료 수입과 과제를 수탁받은 돈만큼 정부가 다음해 매칭펀드로 지원하고 있다”며 “기업과 출연연구기관, 대학의 R&D 연계를 강화하려면 이 같은 방식의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대표는 “정부 R&D 예산이 17조원까지 늘어났지만 상당수 자금을 주요 부처들이 프로젝트별로 나눠주다 보니 정부에 대한 의존이 줄지 않고 있다”며 “교수들이 정부 관료를 쫓아다니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고, 지방정부도 중앙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예산 배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부총장은 “기업이 공대 교육에 참여하고 이 성과에 따라 재정 지원을 하는 등 공대에 적합한 프로그램 도입 등을 공대혁신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 주도로는 변화에 한계가 있고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을 때 공대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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