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업인 功過 균형 있는 평가를

입력 2014-03-27 20:36   수정 2014-03-28 05:19

펀드투자에 얽혀든 최태원 회장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평가해
기업인으로 실력 발휘할 기회 주길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게오르규의 대표작 ‘25시’는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이 소재다.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모함을 받아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다.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소용없었고 유대인들이 동족을 부정하는 배신자로 오해하기도 했다. 다급한 의사소통을 위해 유대어 몇 마디를 배웠다. 그러나 유대어를 안다는 사실 때문에 석방될 기회를 놓쳤다.

오랜 수용소 생활에 지친 모리츠는 수용소에서 만난 독일군 장교 밀러 대령이 시키는 대로 이름과 외모를 독일식으로 바꾸고 경비병이 됐다. 그러나 독일이 패전하면서 연합군에 잡혀 포로수용소에 다시 갇히게 됐다.

최태원 SK 회장의 인생유전도 기막히다. 약관의 나이에 선친을 이어 그룹경영의 짐을 떠맡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종합무역상사는 밀어내기 수출과 리베이트로 인한 과거 분식회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룹회장과 2세들은 회계와 거리를 두면서 몸을 사렸다. 공연히 유대어를 배워 화를 자초한 모리츠처럼 최 회장은 회계까지 챙기다 휘말려들고 말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최 회장에게 동정적이었다. 명문 상고 출신 조세전문 변호사 경험에서 보면 회계 문외한인 신참 경영인 책임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TV로 생중계된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노무현 정부 인사가 SK 수사를 막고 있다는 항의까지 받았다. 아무튼 구속수감 7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번 투자펀드 사태는 정말 이상하게 꼬였다. 2008년에 계열사 출연으로 465억원의 펀드를 조성했는데 투자한 파생상품 손익이 최 회장 동생에게 귀속되도록 디자인됐기 때문에 횡령이라는 것이다. 최 회장 형제는 자금을 빌렸다 갚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펀드 조성 3년 후에야 검찰수사가 개시됐고 재판도 2년간 계속됐다. 140조원 자산을 다루는 그룹총수가 몇백억원 펀드투자 결재를 3년 후까지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펀드 조성을 몰랐다고 진술했으나 1심 재판부는 불구속 기소된 최 회장을 징역형으로 법정구속하고, 구속 기소된 동생은 무죄로 판결했다.

구치소에 갇힌 상황에서 교체된 새 변호인단에 이끌려 펀드 조성 사실을 몰랐다던 1심 재판 진술을 번복했다. 펀드 조성은 알았으나 자금 인출은 몰랐다며 말을 바꿨다. 그러나 진술 번복 작전은 무위로 끝났고 재판부의 질책과 함께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역시 상고를 기각했다. 밀러 대령에게 끌려다니던 모리츠처럼 변호인단에 휘말려 진술을 번복했다가 최악의 결말을 맞은 것이다.

사실 펀드를 누가 어떤 권한과 책임으로 관리할지와 파생상품 손익을 언제 어떻게 평가할지는 복잡하다. 물리학과 출신 그룹회장이 모두 알고 결재할 수준을 넘는 고급회계 영역이다. 회계부서에서 문제없다고 판단해 결재를 올렸을 것이고 이를 믿고 결재했을 것이 분명하다. 횡령사건인줄 알았다면 회계부서 임직원 모두 드러누워서라도 말렸을 것이다.

최 회장은 14개월째 수감 중이고 SK하이닉스 중국 우시공장 대형 화재와 SK텔레콤 통화 불능 사태 등 투자 소요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경영인과 사외이사가 주도적으로 결정한다지만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사외이사는 기본적으로 위험회피 성향이 높다. 하이닉스 인수 결정에서도 SK텔레콤 사외이사 1인은 반대했고 1인은 기권했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40년간 재임했던 프레드 로델은 1939년 발간한 저서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에서 기업경영 등 전문영역 관련 사항에 대해 법률가가 재판을 독점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회사경영과 관련된 분쟁은 기업경영 경험을 갖춘 인사의 전문지식을 활용하면 보다 공평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SK그룹을 자산 규모 국내 3위로 성장시켜 주주 이익을 높였고 수출 비중 확대를 통한 국가 경제 기여로 경제계의 신망이 높다. 최 회장의 공과(功過)가 균형 있게 평가됨으로써 경제발전에 기여할 통로가 열리길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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