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주경야독 백화점 여사원, '손글씨'로 성공하다

입력 2014-04-08 14:46   수정 2015-09-30 17:56

③정경숙 피오피나라 대표(한양여대 시각디자인과 졸)
'先취업-後진학' 경험담 "현장에서 필요한 공부 하라"




지식경제사회에 걸맞은 인재상은 '간판보다 실력'입니다. 안전제일 직업관을 벗어던지고, 청년층이 잡프런티어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펙초월 채용문화'로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롤모델이 될 전문 지식인과 맞춤형 전문대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POP(구매시점광고)란 걸 잘 몰랐습니다. 영업을 하면 누가 이걸 돈 주고 쓰냐고 했죠. 이젠 거리 호떡장사 할머니들도 POP 하면 ‘아, 그 예쁜 글씨’ ‘사 와서 달아놓으면 매출 높아지는 것’ 그러거든요. 그만큼 널리 알려지고 시장이 생긴 거죠.”

말 끝에 정경숙 피오피나라 대표(41·사진)가 자그만 붓을 들었다. 물 흐르듯 붓 가는 곳마다 글씨가 피어났다. 모던함과 빈티지함이 뒤섞인 수제 손글씨. 내용이 따스했고 형태는 아름다웠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감성이 듬뿍 담긴 디자인이 완성됐다.

POP(point of purchase advertising)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장소에서 이뤄지는 모든 형태의 광고를 뜻한다. 매장 상품을 홍보하는 직접 쓴 손글씨가 대표적이다. TV·신문 등의 대형광고와 다른 아기자기한 글씨체가 지나치는 고객의 눈길을 붙잡곤 한다.

한국피오피전문가협회장을 겸하고 있는 정 대표는 업계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시장이 자리 잡지 못한 2000년대 초 과감히 회사를 설립했다. POP가 새로운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란 역발상이 먹혔다. 불황기 여성 소자본 창업의 모범사례로 여러 차례 매스컴을 타면서 지금 업계에서 활동하는 인력 대부분을 길러냈다.

그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고교 졸업 후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였다. 일손이 부족해 말단사원인 그가 직접 매장 상품 손글씨를 써 붙였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스스로도 낯설지 않았고 재미있어 자꾸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백화점 POP실에 근무하다 좀 더 전문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할 수 없을까 고민한 끝에 선택한 곳이 전문대였다.

최근 서울 당산동 피오피나라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롯데마트 강변점에 근무하면서 야간에 한양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며 “정말 절실할 때 현장 실무에서 필요했던 내용을 배워 확 와닿았다. 졸업 후 곧바로 회사를 차려 업계에 뛰어들었으니 학교 2년이 크나큰 디딤돌이 됐다”고 말했다.

- 좀 늦은 나이로 대학에 입학했다.

“2000년 한양여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으니 20대 후반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들어갔다. 앞서 1992년 롯데백화점에 고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늦은 나이에 학교 갈 때도 그렇고, 졸업 후에도 진로를 웹이나 디지털 디자인으로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 사연이 있을 듯 한데.

“원래 영업관리직으로 백화점에 입사했다. 매장 진열상태를 체크해 관리하는 업무였다. 유통업계는 어디든 POP가 걸려 있다. 당시엔 전문가도 없고, 급하면 자급자족하는 형편이라 직접 손글씨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 POP에 자질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똑같이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조형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웃음) 처음 했는데도 곧잘 따라 썼다. 고객 반응이나 주위 평가도 괜찮았다.”

- 그때부터 POP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

“그런 셈이다. 백화점 판매촉진팀 POP실에 쭉 근무했다. 관심이 깊어져 대학에 진학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다 싶었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니 전문대가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회사가 대기업이라 명문대 출신 대졸 사원들이 많았다. 학벌만 생각했다면 4년제대 진학을 알아봤을 텐데, 난 POP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공이 더 중요했다.”

- 회사는 언제 창업했나. POP 시장이 불확실했을 텐데.

“2000년대 초반은 광고 디자인이 디지털 프린트로 바뀌는 시점이었다. 백화점 내에서 POP실은 존재감 큰 부서였는데,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다.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대체하거나 특별한 손기술 없이도 디지털로 뽑을 수 있게 됐다. 2002년이 터닝포인트였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POP 관련 강의도 맡게 돼 퇴사하고 같은 해 회사(피오피나라) 문을 열었다. 수작업 POP 시장에선 거의 최초의 브랜드였다.”

- 사업화까지 나서게 된 계기는.

“디지털 방식이 대세지만 어눌해도 따뜻한 아날로그 디자인을 원하는 틈새시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형매장은 디지털 광고로 전환됐으나 화장품 로드숍 매장엔 여전히 손글씨가 필요했다. 피오피나라는 POP 학원이 아닌 제작·교육을 겸하는 일종의 창업컨설팅 회사다.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LG생활건강 뚜레쥬르 시세이도 등에서 강의를 하며 얻은 결론이다.”

- 디지털 트렌드에서 손글씨 수요가 있는 이유는.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대량생산 디지털로 충족할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이 되레 환영받는 것 아닐까. 밥 한 끼 먹더라도 인테리어에 신경 안 쓴 식당에 앉아있기 싫을 것이다. 만약 디지털 프린트의 4~5배 예산을 들여 손글씨 메뉴로 감성에 어필한다고 하자. 음식 값 올려도 오히려 손님이 더 많이 온다. 그만큼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아이폰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 그래도 사업 초창기엔 어려웠을 것 같다.

“POP에 대한 인식 자체가 일천했으니. 인근 빵집에서 전화가 와 써줄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웃음) 2000년대 중반 경기가 안 좋을 때 방송에서 여성 소자본 창업 아이템으로 소개한 게 컸다. 큰 자본 투자 없이 손재주로 창업할 수 있다는 게 이색적으로 비쳐진 것 같다. 제작시장이 커지고 교육 수요도 많아졌다. 지금은 호떡장사 할머니들도 POP 하면 ‘아, 그 예쁜 글씨’ 하고 안다. 돈 주고 사 오면 매출이 늘어난다는 인식도 생겼다.”

- 화제를 바꿔보자. 대학생활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세월이 지났지만 그 시절 참 바빴다. 롯데마트 강변점에 근무했는데 2교대 근무였다. 새벽 6시 일어나 7시까지 출근, 오후 4시30분에 퇴근했다. 옷 갈아입고 학교에 가면 5시30분 정도 됐다. 수업은 5시부터 시작이었는데 그나마 직장인 편의를 봐줘 항상 30분쯤 늦었다. 밤 9시쯤 수업 마치면 10~11시에 저녁 챙겨먹고 새벽 2시까지 과제에 매달리곤 했다.”

- 정말 힘든 2년이었겠다.

“2년 내내 다크써클을 달고 지냈어도 공부가 재미있고 좋았다. 학생들 중 나이가 제일 많았지만 강의 시간 놓칠까봐 스쿨버스 안 기다리고 캠퍼스를 뛰어가곤 했다. 자랑 같지만 과톱도 했고. (웃음) 무엇보다 이론이 아닌 실무 중심이라 수업이 확 와닿았다. 업무로 했던 게 이런 원리였구나, 막 느껴지니까. 그래서 공부가 너무 소중했다.”

- 현업에 도움이 된 수업이 있다면.

“특정 수업이나 커리큘럼보다는 현업에서 뛰는 젊은 겸임교수들 강의가 도움이 많이 됐다. 원론이 아니라 실제 고객들을 많이 접하는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졸업작품전 때도 기업체 CI(기업이미지)나 캐릭터, 셔틀버스, 쇼핑백 등 패키지로 제작하는 등 현장 감각을 익힐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 굳이 전문대를 선택한 계기는.

“사실 당시 유망학과였던 4년제 애니메이션과에 갈까 고민도 했다. 입학 당시 사회생활 경력이 꽤 됐다. 일하는 분야와 학과가 맞물리는 게 나을 것으로 봤다. 그때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경력과 전공이 일관성 있게 이어져 대기업에서도 나를 믿고 강연을 맡겼을 것이다. 학벌만 생각하지 않은 건 잘한 판단이다.”

- 전문대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이 걸리진 않았나.

“아니다. 절실히 필요로 할 때 2년간 전문대에서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4년제를 택하지 않았지만 내 인생에 ‘플러스 알파’를 얻었다. 물론 전문대만이 답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난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이후 한양사이버대 디지털디자인과에 편입해 더 공부했다. 앞으로는 디자인 관련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도 있다. 정답은 없겠지만 필요할 때 조금씩 공부해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전문대니까 안 가겠다, 졸업했으니 끝났다, 그런 자세야말로 잘못된 듯하다.”

- 요즘 정부가 강조하는 ‘선취업 후진학’을 한 셈인데.

“사회경험 먼저 하고, 정말 필요한 경우 진학하는 게 좋다. 보통 성적대로 학교를 택하고 다시 거기에 맞춰 직업을 갖지 않나. 비유하면 한 번 선 본 남자와 결혼하는 것 같다고 할까. 직접 부딪쳐야 적성도 더 잘 알 수 있다. 그런 연후 진로를 선택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전문대가 그렇다. 단지 성적이 안 돼 전문대에 입학했다가 후회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 전문대에 진학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젊을 때는 학벌이나 학력 콤플렉스가 있다. 대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고졸과 대졸 사원 간 위화감도 있고. 그땐 명문 4년제 졸업생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무조건 좋은 학교 나와 직장생활 하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 싶다. 40대가 되니 그게 서서히 보인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데 있어선 나 같은 선택도 좋은 방식이라 생각한다.”

◆ 나에게 전문대란…

내 커리어의 부피를 몇 배로 키워준 ‘뻥튀기 기계’ 같은 존재. 장난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다. 현업 경력과 학교에서의 전공이 맞물려 내 활동의 발판이 돼줬다. 손글씨가 주전공이지만 포토샵 같은 디자인 프로그램, 디지털 매체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내게 간판만 주지 않고 실력까지 키워준 곳이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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