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빛과 바람을 담은 건축물들…안도 다다오의 흔적 만나러 서귀포로 가자

입력 2014-04-21 07:10   수정 2014-04-21 09:41

국내
서귀포 글라스하우스
서귀포 본태박물관

일본
예술의 섬 나오시마
홋카이도 '물의 교회'
오사카 아즈마하우스
고베 4x4 하우스

인도 다다오 건축기행



건축은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다. 일상을 영위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세 조건, 의식주의 마지막 요소를 관장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다. 그러나 건축을 범속한 장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한 채의 집을 짓는 데에는 개념과 현실적 요구, 미의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때문에 뛰어난 건축가는 설계에 앞서 도시의 역사부터 건물이 놓일 자연까지 모든 것을 고려한다.

건축은 여행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문화유산이 된 옛 시대의 고건축은 물론 현대의 천재적 건축가들이 빚어 놓은 건축물은 건축가 자신은 물론 당대 미의식과 건축기술, 문화적 역량의 총화다. 따라서 여행지의 일부로 건축을 발견하는 것뿐 아니라 건축 자체를 여행의 테마로 삼는 것은 통상적인 여행과는 또 다른 기쁨과 통찰을 안겨준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서정적인 건축은 여행의 주제로 삼기에 충분하다. 일본은 물론 국내에도 그의 걸작들이 있으니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노출 콘크리트가 주를 이루는 안도 다다오식 건물의 외관은 우아하고 분명하다. 사람이 사는 집으로서의 실용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의 신전과 같은 경건함을 풍긴다. 그가 사랑하는 자연, 물과 빛과 바람의 흔적들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든다.

안도는 1941년 오사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프로 복서로 지내며 대학 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의 건축은 여행을 통해 독학한 것이 전부다. 전설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작품들과 만나면서 그의 이력은 크게 전환했다. 안도는 스승을 만나기 위해 시베리아와 핀란드를 거쳐 파리에 당도하지만, 그해 8월 코르뷔지에는 숨을 거둔 뒤였다. 귀국한 그는 1969년 안도 다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했고, 고향 오사카에 지은 ‘스미요시 연립주택’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경력의 정점이 아니라 한 과정을 지나고 있었을 뿐이었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

안도 건축 여행의 시작은 ‘예술의 섬’이라 불리는 나오시마에서 시작하는 게 어떨까. 구사마 야요이를 비롯한 아티스트들이 이 섬의 곳곳을 작품으로 장식했다면, 마을의 구조와 건물 등 공간의 하드웨어를 창조한 주인공은 안도였다.

나오시마는 시코쿠지방 가가와 현에 있는 세토 내해의 작은 섬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구리 제련소가 있었지만, 공장의 유독가스로 인해 자연이 황폐해진 후 쓸쓸하게 방치된 섬이었다. 나오시마에 새로운 활기가 감돌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베네세그룹의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배를 타고 섬에 발을 딛는 순간 이방인들을 맞이하는 구사마의 붉은 점박이 호박은 이제 이 섬의 상징이다. 갤러리에는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고, 월터 드 마리아·오다케 신로 등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은 섬의 순한 자연과 충돌하며 곳곳에서 매혹적인 긴장을 만든다.

그러나 나오시마의 진정한 주인공은 단연 안도다. 베네세하우스 뮤지엄과 지중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등 섬 남쪽을 차지하고 있는 세 채의 미술관은 모두 안도 작품이다. 2000년대 중반 지어진 지중미술관은 땅 속에 정체를 감추고 있다.

앤디워홀 작품 품은 베네세하우스

지하 공간으로 빛은 더욱 은밀하고 황홀하게 스며든다. 모네와 제임스 터렐 등 아티스트들의 작품 한 점 한 점과 갤러리의 공간은 유기적으로 소통한다. 안도의 까다로운 설계 덕분이다. 베네세하우스는 갤러리와 호텔, 공원과 해변으로 이뤄진 복합 공간이다. 평화로운 해변에 위치한 건물들은 눈부신 바다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안착해 있다. 앤디 워홀과 자코메티, 제프 쿤스 등 현대 미술가 작품들을 소장한 갤러리는 예술 애호가들의 환호성을 끌어낸다. 현대 미술의 문외한이라 해도 건축 자체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마음을 사로잡히게 된다. 작품들이 놓인 공간은 오직 그 작품만을 위해 설계된 무대 같다. 지붕에서 스며드는 자연광과 적절한 조명 덕분이다.

나오시마에서는 안도의 건축뿐 아니라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도 둘러볼 만하다. 100년이 넘은 가옥과 염전 창고, 신사 등 옛 건물들은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과 더불어 근사한 오브제로 변신했다.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전 가가와 현의 명물인 쫄깃한 사누키 우동으로 허기를 채워보는 것도 여행의 호사다.

안도 건축의 고향, 오사카


배에서 내린 후 향하는 행선지는 오사카다. 오사카는 안도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이자 그의 건축 아이디어들이 태동한 현장이다. 안도가 살았던 나가야는 좁고 긴 주거지였다. 학교가 끝난 후 귀갓길에서 마주치던 목공소와 철공소, 생선 가게들, 강변에서 뛰어 놀던 추억은 그의 건축 문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안도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주물 공장에서 장난치듯 목형을 만들거나 유리를 불어보며 사물의 외형만이 아니라 그 원리까지 사고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안도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스미요시 연립주택’ 역시 오사카에 있다. 건축주의 이름을 따 ‘아즈마 하우스’라고도 불리는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은 안도가 구사하는 건축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창문 하나 달려 있지 않은 직사각형 콘크리트 상자는 낡은 연립주택 사이에 좁다랗게 끼어 있다. 외관의 현대적인 단순미와 달리 조용한 안뜰과 통풍이 잘 되는 구조, 자연의 순환을 중시하는 철학 등은 일본의 전통 건축 디자인과도 상통한다.

치카츠 아스카 역사박물관은 건축학도와 역사학도 모두에게 꿈의 현장이다. 안도는 이 박물관을 설계해 프리츠커 건축상과 일본예술대상 등 수많은 건축상을 거머쥐며 왕좌에 올랐다. 잿빛 기념비처럼 단조롭고 경건한 건물은 부드럽게 일렁이는 녹색 수목 사이에 숨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건물을 두고 마야 신전과 고대 피라미드가 떠오른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한다.

건축 디자인은 박물관의 용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고대의 유물들이 풍요롭게 소장된 건물 입구는 인근에 산재한 고분들의 안온한 풍경과도 닮았다. 안도의 건축 철학에서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공미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다.

오사카 시내 신사이바시의 갤러리아 아카도 놓치면 아쉽다. 잿빛 갤러리는 안도의 개성을 건물 한 채에 압축시켜 놓은 듯 상징적인 건물이다. 거대한 박스처럼 시무룩해 보이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면 바깥에서 짐작하기 힘들었던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활짝 열린 아트리움과 4층까지 연결된 계단, 극적으로 등장하는 하늘, 지하 공간에 환하게 머무는 빛…. 안도는 이 건물을 인도 여행에서 마주친 사막의 계단식 우물로부터 구상했다고 밝혔다. 과연, 갤러리아 아카의 실내는 도심 한가운데의 고요하고 심원한 잿빛 사막처럼 신비롭다.

성산 일출봉을 그림처럼 가둔 지니어스 로사이

제주에서 만나는 안도 다다오


콘크리트로 이뤄진, 자칫 삭막해 보이기 쉬운 안도 다다오의 작품들에 일종의 영성이 흐르는 것은 자연을 위해 남겨둔 건물의 여백들 때문이다. 캔버스처럼 깨끗한 잿빛 벽 위로 바람과 물과 빛이 쉼 없이 오가는 풍경. 그러고 보면 제주도에 그의 건축이 상당수 모여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푸른 바다에 감싸인 제주도는 돌과 바람의 섬이다. 바람이 머리를 온통 흐트러뜨리는 섭지코지, 안도가 휘닉스아일랜드에 설계한 ‘지니어스 로사이’는 자연 속에 느닷없이 착륙한 외계의 건물처럼 매력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현무암으로 이뤄진 소박한 정원과 물이 흐르는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검은 돌담 사이로 화폭처럼 자리 잡은 긴 창이 보인다. 창은 성산 일출봉 풍경을 그림처럼 가뒀다. 바람만이 부드럽게 불어올 뿐 사방은 마치 지상 세계가 아닌 것처럼 고요하다. 건물 안쪽에는 미디어 아트를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그 안을 거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황홀하고 아쉽다.

휘닉스아일랜드에는 또 하나의 안도 작품이 있다. 노출 콘크리트를 골격 삼아 세운 유리의 성채 ‘글라스 하우스’다. 바람을 맞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멀리서 바라보는 글라스 하우스는 아늑한 녹지와 함께 감미로운 바닷바람에 떠 있는 듯 환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안도 특유의 단순하고 명쾌한 공간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다 보면 열린 지붕과 외벽이 섭지코지의 다채로운 빛과 바람을 그대로 끌어안는다.

서귀포시 안덕면의 본태 박물관은 전통 공예품과 현대 공예품을 전시할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본태는 ‘본래의 형태’를 뜻하는 명명. 안도는 지형의 고저와 인근 풍광 등 건물이 위치한 환경을 디자인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본태 박물관은 산방산과 형제섬이 무심히 내다보이는 한라산 자락 중턱에 위치해 있다. 두 개의 갤러리를 잇는 갈림길에서는 야생화와 선인장으로 침착하게 조성된 화단이 거울 같은 호수와 함께 눈길을 붙든다.

여행자에게 황홀경을 안기는 건 절경만이 아니다. 때로는 건축이야말로 어떤 풍경에 방점을 찍고 마침내 감흥을 완성한다. 제주도에서 둘러보는 안도의 세 걸작이 그 말을 증명한다.

고베와 홋카이도로 이어지는 안도 다다오 건축 기행

고베- 4X4 하우스

고베는 안도 다다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그는 1995년 고베 지진 후 복원 사업에서 멋진 건축물들을 남기는 동시에 자신이 얻은 상금의 상당 부분을 지진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4×4 하우스는 고베 지진의 진원지인 아와지섬을 마주하고 기념비처럼 서 있다. 주요 철로와 해변 사이에 위치한 좁은 땅 위, 풍요로운 삶을 전할 수 있는 건축이 그의 목표였다. 안도는 콘크리트 건축물의 세부들을 세심하게 다루는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섬과 바다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홋카이도- 물의 교회

일본의 최북단, 가장 추운 지역에 있는 ‘물의 교회’는 안도 다다오의 걸작들 중 가장 인기 있는 건물에 속한다. 산림에 둘러싸인 건물 앞에는 하천에서 물을 끌어온 인공 연못이 있다. 물의 교회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언제나 다른 풍경, 다른 분위기로 변신한다.

절기와 물, 하늘, 나무, 지상의 평화가 그의 건축 안에서 조용히 공존한다. 건물에 들어서는 동안 들려오는 명상적인 물소리, 교회 건축물 위의 유리 상자와 투박한 석조 십자가는 쉽게 잊히지 않을 순간으로 남는다.

정미환 여행작가 clart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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