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고양이 소파' 디자이너 탄생 배경은…

입력 2014-04-24 15:04   수정 2015-09-30 18:11

④mun 문승지 대표(계원예대 감성경험제품디자인전공 졸)
'스토리텔링' 담아 제품 디자인하는 업계 최연소 디자이너
운동선수 포기하고 미술 시작 … 국립대 중퇴 후 전문대행



지식경제사회에 걸맞은 인재상은 '간판보다 실력'입니다. 안전제일 직업관을 벗어던지고, 청년층이 잡프런티어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펙초월 채용문화'로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맞춤형 전문대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모든 것은 한 통의 이메일로부터 시작됐다. 고양이를 위한 가구 ‘캣 터널 소파’로 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디자이너 문승지 씨(24·사진). 로이터통신을 비롯해 영국 데일리 메일, 미국 NBC,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이 그의 이색작품을 소개했다. 문씨가 무작정 기자들의 이메일로 보낸 포트폴리오가 지면을 장식한 것. 그만큼 콘텐츠가 훌륭했다.

“22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는데 동기가 서른 살이었어요. 직장생활은 서른부터 해도 되겠구나, 20대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입사 3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뒀죠. 월세방 빼서 사무실을 얻고 친한 형과 함께 회사를 차렸습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문씨의 창업 스토리는 바로 성과를 냈다. 실용교육 위주의 계원예술대 졸업전시회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캣 터널 소파(문승지·박용재·이강경 공동작업)를 사업 아이템 삼아 학교의 ‘1인 창조기업’ 입주기업이 됐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도 5000만 원의 투자도 받았다.

그는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업계 '최연소 디자이너' 타이틀도 따라왔다.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스튜디오 ‘mun’ 대표인 그는 여전히 자신을 디자이너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 모습이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겸손했다. 디자이너 직업에 갖는 자부심이 커서이기도 했다.

“원래 권투선수 생활을 했는데 혈우병(혈액이 적절히 응고되지 않는 병)을 앓았어요.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뒤늦게 미술 공부를 시작해 지방 국립대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계원예대 홍보글을 보고선 ‘아, 이거다. 디자인 하고 싶다. 여기 가자’ 그랬어요. 대학시절 제가 배운 디자인 수업은 모든 걸 스토리텔링에서 시작했습니다. 참 재미있었죠.”

스스로의 말처럼 문씨의 디자인에는 스토리가 있다. ‘mun은 이야기를 디자인 합니다’란 문구가 회사 모토다. 캣 터널 소파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공간이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또 다른 작품인 ‘포 브라더스’는 친환경이 타깃. 가구 제작 시 50~60%의 나무가 버려진다는 사실에 착안, 버려지는 나무가 없도록 설계해 하나의 합판에서 의자 4개를 만들어냈다.

유명 SPA브랜드 H&M도 스토리가 담긴 그의 디자인에 꽂혔다. H&M은 프리미엄라인 COS 전세계 45개 도시 매장의 메인디스플레이 작업을 문씨에게 맡겼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를 걸고 싶다”고 말했다.

- 고양이와 함께 하는 소파. 참신하다.

“강아지를 오래 키웠다. 캣 터널 소파는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다. 당시 연예인들이 유기견 돌봄 운동을 벌였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더라. 디자이너로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발상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펫퍼니처(애완동물가구)를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작품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반려동물을 위한 브랜드(엠펍)를 만들면 통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 이례적으로 해외 언론에서 먼저 주목했는데.

“전세계 기자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 (웃음) 기사 하단에 있는 기자 이메일로 수백 통을 보냈다. ‘한국에서 디자인 하는 몇 살짜리 누구인데,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당신의 매체에 실리면 영광이겠다’ 이런 내용으로. 당연히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아닌 경우도 있었다. 데일리 메일, 로이터통신, NBC, LA 타임즈 등 정말 연락이 많이 왔다.”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3D 모델링 같은 몇십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돈을 버는 사업적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일단 작업해 왔던 걸 알려보자는 생각에서 시도해봤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응이 너무 커서 놀랐다. 생각하면 모든 것의 시작은 그 이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그 후 여러 언론에 소개되면서 브랜드를 론칭하고, 창업지원도 받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 업계 최연소 디자이너라 들었다.

“2012년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22살 때였다. 전문대를 다녀 기간이 짧았고 군대도 면제였다. 동기가 30살이었다. 문득 ‘30살에 입사해도 신입사원 나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 20대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지금 아니면 창업하기 어렵겠다 싶어 일단 저질렀다. 회사 운영이나 창업에 대한 지식도 없이 사업자 등록하고 월세방 빼서 사무실 얻었다. (웃음)”

- 포 브라더스 작품도 특이하다.

“캣 터널 소파처럼 포 브라더스도 스토리를 중시했다. 포 브라더스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친환경이다. 버려진 병뚜껑이나 알루미늄캔으로 만드는 디자인은 너무 일차적인 것 아닐까? 포 브라더스는 하나의 합판에서 버려지는 나무 없이 4개의 의자를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가구를 만들 때 절반 이상의 나무가 버려지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H&M의 브랜드 COS 매장 디자인을 맡은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포 브라더스는 스웨덴 H&M과 콜라보(협력)한 것이다. COS의 각국 45개 도시 매장 디스플레이 작업을 했고, 여기에 포 브라더스도 배치됐다. 친환경 이미지를 가진 원목가구가 나무를 버리고 있다는 건 모순이다. 디자이너들이 이런 사실을 오픈해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어떨까. 연예인들의 캠페인보다 직접 와 닿는 무게감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 디자인한 제품마다 스토리가 뚜렷하다. 비결이 뭔가.

“학교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내가 졸업한 학과(계원예대 감성경험제품디자인전공)에서 디자인의 시작은 항상 스토리텔링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통해 시작되고 누구에게 무슨 스토리를 전하느냐. 이게 핵심이었다. 캣 터널 소파도 마찬가지였다. 내 디자인의 스토리는 거창하지 않다. 정말 심플하다. 동물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접한 사람들이 ‘요즘 동물들 살 판 났구나’ 그렇게만 생각해도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 전공이 특이하다. 학교를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스무 살 때까지 제주도에서 자랐다. 권투선수를 했는데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 (웃음) 고3 때 뒤늦게 미술을 시작했다. 제주대에 입학했는데 사실 등록만 해놓고 학교는 거의 안 다녔다. 그러다 학원에서 입시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계원예대 홍보글을 봤다. 면접 100%로 선발하고 디자인 공부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무조건 가야겠다 싶었다.”

- 운동선수에서 디자이너로 바꾸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운동하는 집안이다. 아버지와 동생도 모두 운동선수다. 하지만 나는 혈우병을 앓아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교시절 방황도 많이 했다. 다만 그림 그리는 건 좋았다. 사실 혈우병 수술할 때 의사가 생존확률이 3분의 1 정도라고 했다. 그 이후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뭐가 힘드냐, 하루라도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살자’ 그렇게 생각한다. 디자인도 내가 좋아서 택했다.”

- 그래도 4년제 국립대 그만두고 전문대 간다고 하니 말리지 않았나.

“부모님은 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응원해줬다. 어릴 때부터 아파서 그랬던 것도 같지만… 항상 감사하다. 4년제냐 아니냐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디자인 분야는 더 그렇다. 4년제대 계속 다니면서 꽉 짜인 커리큘럼에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면 일반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만 일하지 않았을까? 과연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 특히 디자인에 끌린 이유가 있었는지.

“디자인은 바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나. 사람들이 내 디자인 작품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좋았다. 특히 별다른 제한 없이 관심있는 수업을 듣는 계원예대 시스템이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 난 제품 전공이지만 가구 수업도 들었다. 곧바로 가구 디자인에 매료됐다. 제품 관련 프로세스를 배우고 가구 과목을 들어서 그런지, 가구만 전공한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학교에 대한 기억이 좋은 것 같다.

“시스템이나 문화가 자유로웠다. 교수님 생각과 달라도 디자인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같이 고민하고 이해해주는 편이었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는데 너무 아이디어가 안 나왔다. 교수님께 수업 빠지고 여행 다녀오고 싶다고 했더니 ‘그래 갔다와, 대신 다녀와서도 디자인 안 나오기만 해봐’ 그러셨다. (웃음) 그때 광주에서 열리던 디자인비엔날레로 디자인 여행을 다녀와서 정말로 좋은 아이템이 나왔다.”


- 디자이너 문승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졸업작품이었던 캣 터널 소파. 세 명이 학교에 천막을 쳐놓고 석 달 동안 거기서 생활하며 만들었다. 일일이 나무 깎고 공장 돌아다니며 부품을 가져왔다. 모든 과정을 다 겪고 나니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런 느낌이 오더라. 결과적으로 졸업전시회에서도 1등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무슨 디자인을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게 됐다.”

-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지금까지는 막 부딪쳤다. 그 결과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정말 즐겁게 일하고 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 앞으로 20대 후반이 넘어가면서는 프로페셔널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경험하고 준비할 것이다. 꼭 가구 디자인만 하는 건 아니다. 인테리어나 제품 디자인도 하고 있다.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다양하게 도전해 보고 싶다.”

◆ 나에게 전문대란…

전문대와 4년제를 나누는 것 자체가 웃기다. 특히 디자이너에겐 정말 필요 없는 구분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내게 학벌을 물은 적은 없다. 디자이너는 학벌이 아니라 작품이 중요한 것이다. 어느 교수에게 배우느냐, 커리큘럼은 어떤지가 핵심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전문대’란 말과 상관없이, 내가 경험한 학교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내겐 가장 많이 배우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곳이다. 적어도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4년제냐 아니냐에 구애받지 않았으면 한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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