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000·1000…허약해진 '맷집'] 더딘 경제회복, 소비·투자 침체

입력 2014-05-18 21:02   수정 2014-05-19 05:54

'원高 쇼크'에 더 취약해졌다

2004~2007 원화강세기와 비교해보니

수출환경 많이 달라져…신흥국 성장세 꺾이고 국내기업 수익성도 하락
물가안정 효과도 '반감'…오히려 디플레 우려 제기



[ 김유미 / 마지혜 기자 ] ‘한국 원화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리레이팅(제자리찾기) 중.’(A증권사) ‘국민소득 2만달러도 가능해질 것.’(B연구소)

2006년 1월4일. 연초부터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를 뚫고 외환위기 이후 처음 세 자릿수(종가기준)를 기록했다. 2004년 본격화한 아시아통화 강세 속에서 원화의 활약은 특히 돋보였다. 원화는 일본 엔화(100엔당)에 대해서도 2005년 900원대에 안착했다. ‘1000(달러당 원) 1000(100엔당 원) 환율’을 함께 뚫은 2000년대 중반, 원고·엔저는 외환위기 극복과 선진국 진입의 청신호이기도 했다.


○환율하락 요인은 비슷

그로부터 8년 뒤. 원화는 다시 ‘1000·1000’ 시대를 눈앞에 뒀다. 기대보다 불안이 지배적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8일 전문가들과 함께 ‘환율하락의 이해득실’을 분석한 결과 긍정적 면보다 부정적 면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달러당 1024원으로 마감, 900원대 진입을 불과 20원가량 남겨놨다. 원화값이 엔화에 대해서도 크게 올라 원·엔 환율(100엔당)은 이달 초 1000원대를 깼다. 환율이 본격적인 내림세를 탄 해는 2012년. 원·달러 환율은 그해 초 1155원80전에서 지금까지 131원80전(11.4%) 하락했다. 원·엔 환율 하락세는 더 가팔라서 493원10전(32.8%)에 이른다.

지금과 비슷한 꼴이 2004~2007년의 환율하락기다. 이 시기 원화강세를 이끈 것은 글로벌 달러 약세였다. 재정과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달러 약세를 유도했다. 최근의 환율 하락을 부추긴 것도 달러 약세다. 양적완화정책에 따라 달러가치는 꾸준한 하락세다.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을 끌어내린 것도 당시와 비슷하다. 2004~2007년엔 세계경제 호황에 힘입어 수출이 호조였다. 금융위기 이후 감소했던 경상수지 흑자는 2012년 508억달러, 2013년 798억달러로 급증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환율하락 압박은 더 커진 상태”라고 분석했다.

○교역 여건은 더 취약

2004~2007년은 세계경제가 초호황기였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당시엔 신흥국이 고속성장하고 교역이 증가하던 때였다”며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경쟁력 부담을 상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경기회복세가 더디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예년 같지 않은 데다 교역증가율은 올해 더 둔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지금의 경상수지 흑자는 투자 부진으로 중간재 수입이 줄어든 탓이 크다”며 “뜯어보면 여건이 훨씬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오랜 저성장을 거치며 기업의 체력은 크게 약해진 상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2007년 9.5%에서 지난해 0.7%로 수직하락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못 내는 한계기업(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은 2009년 말 2019개에서 2012년 말 2965개로 급증했다. 엔저까지 겹치면서 통신 및 사무기기, 자동차 등의 운송용 기기 등 일본과 경합이 치열한 수출업체들의 손실이 벌써부터 우려되고 있다.

○물가하락도 반길 일만은 아냐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내리고 가계의 구매력은 높아진다. 2006년 이후 신용카드 사용액이 기록을 경신하고 일본 골프여행이 유행한 배경이다. 하지만 지금 물가상승률은 디플레를 우려할 정도로 낮은 상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중반엔 유가 급등을 원화가치 상승이 상쇄하는 등 환율하락의 이득이 컸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소비 국경은 흐려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비싸진 원화로 해외에서 직접 물건을 구매(직구)하면 국내 경기엔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저성장으로 가계소득 증가율이 둔화된 데다 최근 세월호 사고까지 겹쳐 과거와 같은 ‘소비 붐’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2.0%에 그쳤다. 2007년(5.1%)과 비교해 경기가 여전히 탄력을 못 받고 있다. 2017년 9.7%에 달하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1.5%로 추락했다.

○국민소득 증가 효과는 숫자뿐

환율이 떨어지면 달러 표시 국민소득은 늘어난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 것도 환율이 달러당 800원대 진입을 넘보던 2007년이었다. 원화 강세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당길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체감경기와는 별개다.

2000년대 중반 환율하락의 뒤끝은 좋지 않았다. 부동산 거품이 지나가고 금융위기를 맞으며 2008년 4월 환율은 고속으로 역주행했다. 주요국 중에서도 가장 가파른 급등세였다. 저환율을 믿고 파생상품 ‘키코(KIKO)’를 계약했던 중소기업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앞으로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은 “환율하락으로 인한 수출감소 효과는 6개월 이상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며 “환율이 내릴 때 처음엔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 급격히 꺾이는 ‘역J커브’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상수지 흑자 기록에 안주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김유미/마지혜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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