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高 벼랑' 몰린 中企…수출 포기·축소 속출

입력 2014-07-02 22:05   수정 2014-07-03 04:24

환율 세자릿수 시대 임박…기업 '쇼크'
"수주 3분의 1 토막" 생산인력 감축

수출中企 '키코 악몽'…석달새 70원 떨어진 환율에 속수무책
"환율하락 너무 가파르다" 비명

주문 격감→생산 축소→인력조정 악순환
"대응할 시간 필요…" 정부의 시장개입 촉구



[ 김낙훈 / 박수진 / 추가영 기자 ]
수도권 인쇄업체 S사는 지난해 150만달러어치의 인쇄물을 수출한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올 상반기엔 고작 20만달러어치만 해외에 팔았다. 평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실적이다.

이 회사의 J사장은 “원화 가치는 급격히 오르는데 경쟁국인 일본 엔화는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졌다”며 “일본 바이어들이 한국에서 조달하던 물량을 동남아나 중국 등으로 돌리거나 일본 업체에서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간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는 게 J사장의 하소연이다.

인천의 기계부품업체 U사도 사정이 비슷하다. 연간 600만~700만달러어치를 수출하는 이 회사는 작년까지만 해도 평일엔 맞교대로 24시간 공장을 돌렸다. 하지만 올 들어선 잔업을 하지 않고 있다. Y사장은 “미국과 중동 동남아 바이어들로부터 수출대금으로 달러를 받는데 요즘 환율로는 돈을 받아도 남는 게 없다”며 “사정을 얘기하고 가격을 올려달라고 하니 바이어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 올 들어 주문이 작년 같은 때보다 15%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율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2월3일 달러당 1085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원·달러 환율이 5개월 만에 70원 이상 떨어질 만큼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4월 조사한 ‘중소기업이 생각하는 적정 환율’(달러당 1086원30전)은 이미 깨졌다. 손익분기점 환율(1038원10전)보다 30원가량 낮은 수준으로 환율이 떨어졌다. 수출을 늘릴수록 중소기업이 손해를 보는 구간으로 환율이 진입했다는 얘기다.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중소기업들이 수출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공장 가동률이 급락했고 채용을 줄이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원화 환율이 급락한 것은 무역수지 흑자 등으로 외화가 국내로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일부 대기업이 수출을 크게 늘린 덕분에 한국은 올해 상반기에도 203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냈다.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기기(12.7%)와 반도체(10.6%) 자동차(4.1%) 등의 수출 증가율이 전체 수출 증가율(2.6%)을 앞질렀다.

그러나 이에 따른 환율 하락 여파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한계선상에 있는 중소기업에까지 고스란히 미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4월 수출중소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0곳 중 9곳이 환율 하락으로 채산성(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생산 인력도 감축

급격한 환율 하락은 수출 현장에서 ‘주문량 감소→가동률 하락→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일할 사람이 늘 부족한 도금 염색 등 뿌리산업 쪽에서마저 기존 인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직원 수 70여명의 인쇄업체 S사는 해외발주 물량이 감소하면서 최근 몇 달 새 20명을 감축했다. 이 회사의 J사장은 “일감이 줄면서 공장가동률이 월초와 월말에는 70%, 월 중순에는 30% 수준으로 떨어져 자연감소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 수를 줄였다”고 말했다.

반월의 도금업체 M사도 170명이던 인원을 올 들어 150명으로 감축했다. 이 회사 역시 신규충원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줄였다. 이 회사의 K사장은 “종전에는 주야 맞교대로 24시간 공장을 돌렸으나 5월부터 하루 18시간 근무로 단축했고 주말근무도 완전히 없앴다”며 “종전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이직할 기미가 보이면 적극 말렸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고 전했다.

경기도의 섬유염색업체 D사도 해외 염색 주문이 없어 공장가동률이 80%에서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염색은 하루 12시간씩 맞교대 근무하거나 적어도 2~3시간씩 잔업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달째 잔업이 거의 없다. 이 회사의 K사장은 “원화값이 높아지면서 바이어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거래처를 돌려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환위험 대비 안 해

원화 환율이 최근 계속 떨어졌는데도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손을 놓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4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떻게 환율 하락에 대응하고 있나’라는 질문(복수응답 허용)에 중소기업들은 △원가절감(43.6%) △수출단가 조정(38.3%) △대금결제일 조정(13.8%) 등 소극적인 방법만 쓰고 있다. 환변동보험 가입 확대(9.6%)나 선물환가입 규모 확대(9.6%) 등 외환파생상품을 활용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곳은 10곳 중 2곳에 불과했다.

중소기업들이 환율변동 위험에 노출된 데에는 키코(KIKO)의 악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기업에 득이 되지만, 정해 놓은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큰 손실이 나는 통화옵션파생상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1000개가 넘는 수출 기업이 10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메타바이오메드의 오석송 회장은 “수출이 전체 생산량의 95%를 차지하기 때문에 최근 환율 하락으로 매출이 7~8%가량 줄어드는 피해가 생겼지만 환헤지 상품 가입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 업체와 가격경쟁 치열

국내 중소기업들은 엔화 약세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울 구로구 가산디지털밸리에 있는 씨앤엠로보틱스의 주상완 사장은 “중국시장에서 일본 제품과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로봇 장비의 일종인 센터링 머신 등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는 업체다. 주 사장은 “예전에는 중국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을 30~40%가량 낮춰 팔았지만 지금은 10% 이내로 가격차가 좁혀졌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업계와 전문가들은 외환당국의 적절한 외환시장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홍순영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대기업들은 일찍부터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해 해외 공장이전과 환헤지상품 가입 등으로 대비했기 때문에 큰 타격이 없지만 중소기업들은 다르다”고 말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도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연초 대비 70원 가까이 떨어졌다면 이는 1억달러 수출기업이 가만히 앉아 70억원 손해를 보는 셈”이라며 “정책당국은 중소기업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절한 속도조절책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낙훈/박수진/추가영 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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