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평화·화해의 '아이콘' 종교, 어둠의 그림자도 많이 남겼다

입력 2014-08-08 18:45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우리 神이 최고' 집착은 가장 큰 오류
배려와 관용이 모두의 아픔을 해결




종교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뿌리가 깊다. 어찌보면 영생을 꿈꾸지만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적인 인간에 종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신)를 믿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절반은 속세적이고 절반은 영적이다. 신에게 소원을 비는 기복(祈福)은 속세적 성격이 강하고, 천국(내세)에 대한 소망은 영적인 성격이 짙다. 종교는 인간의 사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는 때로 철학의 씨앗이 됐고, 때로는 철학이 종교의 바탕이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교가 드리운 그림자도 많다. 중세 유럽에서의 면죄부 판매나 마녀사냥은 종교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역사적 아픔들이다. 화해나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종교로 야기된 전쟁 역시 무수히 많다.

과학과 종교…창조 vs 진화

종교와 과학은 수시로 마찰을 빚는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표적 사례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다. 성경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이 우주 탄생의 원리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창조론적 믿음은 진화론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으로 창조론적 신념을 흔들 때까지만 해도 신이 만물 창조의 주인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데카르트는 신이 창조한 피조물은 영속하는 것이 아니어서 신이 순간마다 연속적으로 재창조한다는 ‘연속적 창조론’을 주장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선 창조론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진화론자들보다 높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을 종교적 집착성에 의존한 허구적 믿음쯤으로 생각한다. 진화론은 현재 무수한 생물종(種)을 설명하는 정설로 자리 잡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는 진화론의 원리를 잘 설명한다. 진화는 대부분 자연선택을 통해 일어난다고 믿는다. 환경에 잘 맞는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기고,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개체군에 유전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또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사유의 뿌리…철학과 종교

철학과 종교는 어느 쪽이 뿌리가 깊을까. 재미있는 질문이지만 정답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종교가 철학의 씨앗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종교적 믿음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시도한 것 또한 철학이다.

특히 ‘종교의 시녀’ 역할을 했다는 중세철학은 종교와 철학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몸’이었음을 보여준다. 4~5세기 서로마제국 몰락 이후부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철학적 조류를 뜻하는 중세철학은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신학과 밀접히 연관되었다. 교부철학에서 스콜라철학에 이르는 약 1000년간의 서양철학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적 진리를 규명하는 데 철학의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근대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철학자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 역시 ‘천사는 환상이며 영혼은 생명체에만 깃든다’며 신의 존재를 부인했다. 칸트는 신은 지적으로 탐구할 연구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이란 존재는 인간의 연구로 규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존재를 부인하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칸트는 존재 여부를 떠나 희망과 안식을 주는 상징으로서의 신은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종교를 일종의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로 본 셈이다.

종교가 드리운 그림자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의 저자 가이 해리슨은 세상엔 10만개에 달하는 종교가 있다고 말한다. 신을 믿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마음의 평온, 사후세계 보장이 핵심이다. 종교가 주는 메시지는 마음의 평온, 그리고 이웃에 대한 배려다. 기독교가 인권이나 평등 등 인간의 기초적인 권리를 향상시키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평화 역시 종교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하지만 종교 마찰로 야기된 아픔도 역사 곳곳에 존재한다. 면죄부는 속세적인 물질적 욕망이 종교에 덧씌워진 아픔이고, 마녀사냥은 종교라는 명분으로 무참히 인권을 짓밟은 역사적 슬픔이다. 해리슨은 종교가 범하는 최고의 오류는 ‘우리 신이 최고’라는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른 종교 경전을 전혀 읽어보지 않고 자신의 신이 월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팀과 한 번도 경기를 해보지 않은 축구팀이 대회의 우승자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나의 종교(신)만큼이나 다른 종교도 배려하는 관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최악의 종교전쟁 십자군전쟁, 유럽 르네상스에 '물꼬'

‘종교전쟁’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전쟁,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로부터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8회에 걸친 원정에 참여한 대규모 군사를 일컫는다. 당시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한 것이 연유다.

이슬람의 침략으로 동로마제국 황제 로마노스 디오게네스가 만지케르투 전투에서 패하고 투옥당했다. 그 후 황제에 오른 알렉사우스 콤네우스 역시 안티오크 베데스다 등의 도시를 이슬람에 빼앗기자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이슬람과의 전면전을 요청했다. 십자군 전쟁은 교황이 주도했다. 그 당시 교황의 권력은 황제보다 훨씬 막강했다. 종교적인 이유가 컸지만 인구 증가로 인한 영토 욕구도 전쟁을 야기한 또 다른 빌미가 됐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자 땅을 얻고자 하는 욕심으로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다.

십자군 전쟁은 200년 동안 8차례에 걸친 긴 싸움이었지만 결과는 ‘십자군의 패배’였다. 그 결과 전쟁에 앞장섰던 교황의 권력은 전쟁 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약해졌다. 반면 교황과 주도권을 다투던 황제는 자연스레 권력이 강해졌다. 사람들의 충성도 교황에서 황제로 옮겨갔다. 이에 따라 십자군 전쟁은 왕권이 중심이 된 중앙 집권화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전쟁에서는 졌지만 동방 무역의 발달로 서유럽과 이탈리아 도시들이 번영하는 계기가 됐다. 무역으로 큰 돈을 거머쥐는 상인도 많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십자군 전쟁으로 동방의 수많은 물품과 지식을 접하게 됨으로써 유럽 르네상스에 물꼬를 터줬다.

김하영 인턴기자(동국대 신방과 3년) ha2young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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