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77) 설악산 울산바위 PC샹그리라 / 서울시청 암벽팀의 아름다운 도전

입력 2014-08-20 11:42   수정 2014-08-21 12:20


[김성률 기자] 설악산 울산바위로 출발하는 류근학 클라이머의 차량은 새벽 5시에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출발했지만 함께 등반하기로 한 표기승 클라이머는 보이지 않았다. 진종권 클라이머가 "새벽 3시에 비상이 걸려서 약속장소에 오지 못했고 직장 인근으로 픽업을 해야 한다"고 그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표기승 클라이머는 관악소방서 119구조대원이다. 밤새 출동대기를 하다 새벽에 출동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설악행에 합류한 것이다.

오늘은 서울시청 암벽팀(회장 박춘식 /공식명칭 서울시 공무원 클라이밍클럽, 이하 ‘시암팀’)과 함께 설악산 울산바위를 등반하기로 한 날이다. 시암팀은 서울특별시 본부는 물론  사업소와 각  자치구의 직원으로 회원모집에 등록하여 서울시청 암벽동호회의 암벽교육을 6주간 수료하여야 회원자격이 주어진다. 2001년도에 1기 수료생을 배출한 이래 매년 봉사와 희생정신이 투철한 클라이머들을 배출하고 있다. 박춘식 회장은 4기, 장석춘 등반대장은 6기를 수료했다.

시암팀에는 다양한 클라이머들이 활동하고 있다. 1기 수료생인 정경수 전 회장은 하드프리 5.12급을 등반하는 고수이며 보라매암장지기인 오은자 씨도 시암팀 소속이다. 그런가하면 요세미테를 등반하고 믹스등반에 일가견을 가진 김기성 전 대장은 기자와 아마다블람을 함께 등반하기로 한 사이이기도 한데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다음날에는 울산바위 요반길 등반도 예정되어 있기에 나름 비교적 만만한 길이라고 택한 것이 바로 PC샹그리라였다, 진종권 클라이머가 평소 사소한 의견대립이 있으면 우스개 소리로 "요반길 말번을 서본 적이 없으면 말을 하지 마라"고 할 정도로 요반길 등반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PC샹그리라길은 몸풀기에 적당한 난이도의 등반으로 생각되었다.

서울을 출발하여 단 한 번도 쉬지 않은 등반팀은 학사평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들고 설악산소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시킨 후 곧바로 울산바위로 향한다. 등반팀은 이날 120미터 자일을 지참했는데 PC샹그리라 등반이 끝나는 여섯째 마디 확보점에 120자 자일을 하강용으로 고정시키고 다음날 이 자일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하강할 계획이었다.

비교적 흐리지만 이 정도라면 날씨는 아주 훌륭한 편이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에  비하자면 체력소모도 줄일 수 있고 갈증도 심하지 않을 것이다. 울산바위 좌벽 아래 PC샹그리라 첫째 마디 출발지점에서 등반팀은 여유 있는 화이팅을 외쳐본다. 자 잠시 오늘 등반팀의 면모를 한번 살펴보자,


선등 류근학. 구로구청 도로과 조명시설물 팀장, 시암팀 3기, 등반경력 약 10년, 가벼운 몸으로 유연성 있고도 멋진 자세로 등반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베테랑 클라이머, 하지만 정작 본인은 "주말에 한번 등반을 하는 주말 클라이머이자 아마추어일 뿐 등반실력은 많이 미흡하다"고 겸손해 한다. “우리나라의 바윗길은 한 번이라도 다 가보자”라는 등반철학을 갖고 있는 그는 팀의 맏형으로 결코 등반을 서두르지 않는다. 신중하면서도 유연한 등반이 장점.

빌레이어 표기승. 관악소방서 119구조대 근무. 구조대원의 강인한 힘을 바탕으로 한 암빙벽 등반능력이 수준급.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는 구조대의 사나이로 항상 믿음직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이날 선등을 선배에게 양보하고 빌레이어를 자청했다. 등반중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있으면 무조건 든든한 훈남. 등반팀중 가장 젊은 40대의 젊은 피.

말번 진종권. 고충처리, 부패방지, 행정심판 등을 위해 국민과 소통하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근무중. 시암팀 9기, 등반경력 약 6년, 소년 같은 미소를 날리며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말없이 동료들을 챙기는 모습은 선배, 동료들의 귀감을 살만하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나이로 최근 5,10대의 선등에 도전하고 있다. 등반후에는 막걸리 한잔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고 재미있는 대화로 긴장을 풀어주는 멋진 사나이.


등반장비를 갖춘 류근학 클라이머가 손가락 마디마다 테이프를 붙인다. 마침 초크통의 초크가루가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하자 표기승 씨가 바로 배낭에서 초크가루를 꺼내 가득 채워준다. 서울시청 암벽팀의 세 클라이머가 오른손을 맞대고 화이팅을 외쳐본다. 

자 이제 출발이다. 밝게 빛나는 형광색 120미터 자일의 앞자를 묶은 류근학 클라이머가 홀드를 잡고 훌쩍 뛰어오르더니 어렵지 않게 직상구간 등반을 끝내고 우향 사선형태의 쉬운 크랙지대를 지나 본격적인 우향 크랙구간에 접어들기 전 첫째 마디 확보지점에 확보줄을 걸었다. 
아래에서 보기에는 등반이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실제로 어떨지는 붙어봐야 하는 일이다. 그동안 지켜본 류근학 클라이머의 등반은 가볍고 유연한 것이 특징이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고 호흡이 길면서도 안정적인 등반은 그만의 컬러이자 장점이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오래된 붉은색 헬멧을 쓴 표기승 클라이머가 출발한다. 그의 등반에는 쉼표가 없이 항상 진행형. 파워가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류근학 클라이머가 등반한 길을 따라 몇 분도 채 안되어 등반을 마친다. 다음에는 항상 안면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아름다운 꽃중년 진종권 클라이머의 차례. 진 클라이머는 외유내강형의 클라이머. 첫눈에는 어딘지 어수룩한 거 같지만 등반이 차분하고 빈틈이 없다. 그의 말마따나 요반길 말번을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닐테다.


PC샹그리라 첫 번째 마디는 출발지점에 물이 흘러 까다롭지만 전체적으로는 등반자에 대한 배려인양 긴장을 풀기에 적절한 난이도로 보인다. 류근학 클라이머는 난이도를 5.10b로 평가했다. 이하 각 마디의 난이도는 류근학 클라이머 개인의 평가이므로 등반에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류근학 클라이머가 둘째 마디를 출발한다. 일별하기에 둘째마디와 셋째 마디는 하나의 크랙으로 시원하고 장쾌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크랙을 찾으라면 인수봉의 취나드A 상단을 예로 들 수 있을 듯하다. 등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아직도 풀들이 많이 나있는 지대를 통과해 그가 본격적으로 크랙에 붙었다.


크랙구간을 통과하면 짧은 침니구간이 나타나는데 류 클라이머는 이곳에서 등을 벽에 붙여 상체를 올리고 왼발을 다시 높이 올려 침니등반을 한다. 그리고 다음은 침니를 빠져 나오기 위한 동작이 필요하다. 침니 마지막 부분에 캠을 하나 설치한 그는 왼발을 크랙 옆에 바짝 붙이고 홀드를 잘 살피며 조심스럽게 그러나 유연하게 침니구간을 빠져 나온다. 확보지점에서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구간이다. 침니를 벗어나면 바로 두 번째 확보지점이 나타난다.
 
두 번째로 등반하는 표 클라이머는 선등자와는 반대방향 즉 큰 바위에 등을 붙이고 손과 발로 침니의 윗부분을 밀면서 등반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역시 침니 마지막 부분을 빠져나오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 마침내 힘을 이용한 파워등반으로 크럭스를 통과해낸다. (5.10b)

셋째 마디 역시 둘째 마디와 이어져있는 우향크랙이다. 중간중간에 손가락 끝이 반 정도 밖에 들어가지 않는 구간이 나타나므로 선등자는 작은 호수의 캠을 여러 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셋째 마디는 그러나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된다 확보지점에 거의 다다라서 손가락을 크랙에 넣었을 때 물과 이끼가 만져졌을 때의 당혹감이란. 이 부근에서는 물이 흐를 때가 많으므로 발로 잘 지지하고 크랙에서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잘 잡아야 한다. 셋째 마디는 크랙등반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재미나는 길이다.(5.10c)

셋째 마디 등반을 마치면 확보지점에서 우측으로 넘어가는 고정자일을 타고 짧은 마디를 이동하여 지붕형 바위의 직상구간을 타고 넘어 넷째 마디 등반을 이어갈 수 있다. 오버 형태로 이어진 넷째 마디는 우측벽을 이용하여 천장에 도달한 다음 다시 좌상방향으로 나있는 사선크랙을 따라 이동한 후 마지막 부분에서 벽천장을 왼쪽 발로 딛고 일어나야 한다. 이 동작이 가장 어려운데 고비를 넘기면 그곳이 바로 넷째 마디 확보지점이 된다.(5,10c)

류근학 클라이머. 다소 멀다싶은 첫 볼트까지 진출하여 퀵드로를 걸고 등반을 이어나가 두 번째 볼트에도 퀵드로를 건 다음 후등자를 위해 슬링줄을 하나 걸었다. 그리고 다시 각도가 세어지는 천장 지점에 캠을 하나 설치했다. 이어서 두 번째 캠을 설치하고 앞으로 한 개의 캠과 한 개의 퀵드로를 설치하고 자일을 통과하면 바로 넷째 마디까지 등반을 마치게 되기 직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등반팀은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일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설악의 날씨는 의외로 밉살스러웠다. 결국 류 클라이머는 하강을 하고 등반팀은 확보점 위 방향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준비해온 행동식을 꺼내 먹으며 잠시 등반을 쉬어가기로 했다.

서울시청 암벽팀원들은 대부분이 공무원이다. 속된말로 철밥통.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그들은 왜 다른 취미활동들은 제쳐둔 채 힘들고 어려운 암벽등반을 취미로 하게 되었을까?

경기도 안성이 고향인 류 클라이머는 10여 년 전 북한산을 등반하다가 원효리지라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능선을 바라보는 순간 저곳을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정작 그 길을 가려고 하니 “저곳은 위험하기 때문에 등반을 배우기 전에는 힘들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시청 암벽팀에서 등산학교를 운영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지원. 수료후에 꿈꾸던 원효리지의 등반을 마쳤다. 첫 등반 때 5미터나 추락하는 등 항상 운이 따라준 것만은 아니지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그의 모습을 보면 설사 산과 바위를 지키는 신인들 그를 해치고 싶었으랴.

진종권 클라이머의 취미는 낚시였다고 한다. 수도 없이 대어를 낚으면서도 언젠가는 암벽등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바쁜 시간을 쪼개 어렵게 서울시청 암벽팀 등산학교에 입교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멀티등반의 묘미를 느끼며 아울러 하드프리 5.10급의 선등자로서 활발한 등반활동을 하고 있다.

비와 함께 몰려온 안개는 설악산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멋진 동양화 한 폭을 그리고 있다. 약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비가 그친 것을 확인한 류 클라이머가 다시 출발하여 천장 끝 벽을 밟고 무사히 올라섰다. 후등자들은 언제나 자유등반을 시도하지만 몇 번의 도전 끝에 구간구간 선등자가 설치해 준 슬링줄의 도움을 받아 넷째 마디의 등반도 완료(5.10c). 시암팀의 클라이머들은 상의와 바지가 모두 젖어 불편한 상태이지만 그 와중에도 미소와 여유만은 놓치지 않는다. 멋진 클라이머들이자 사나이들이 아닐 수 없다.


다섯째 마디는 좌측으로 넘어가는 좌향 ㄱ자형 사선크랙이다. 이 구간의 등반이 어렵다는 클라이머들이 적지 않은데 의외로 볼트는 4개가 설치되어 있고 잘 살펴보면 하켄도 두 개나 박혀있어 등반에 도움을 준다. 다만 언더크랙은 물에 젖어있기가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5.10c)

PC샹그리라 다섯째 마디는 익숙하지 않은 언더홀드와 미끄러운 크랙, 고도감 등이 복잡하게 작용하며 심리적인 위압감을 주게 된다. 왼쪽으로 쭉 이어진 크랙등반을 마치고 날개를 벗어나면 바로 그곳이 마지막 여섯째 마디의 출발지점이다. 그런데 이곳, 확보지점에 두 사람이 매달려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협소하다. 기자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도무지 방법이 없어 하네스에 몸을 의지한 채 그냥 매달려 있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2명만 확보를 하고 있는 것이 맞다.

마지막 여섯째 마디는 PC샹그리라 등반의 최고 크럭스라고 할만한 구간이다. 출발후 두 손은 레이백자세로 크랙을 뜯으며 발은 조금씩 높아지는 바위를 따라 딛고 등반을 해야 하는데 밸런스는 깨지고 몸은 그만 왼쪽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몰려온다.


삼성산 숨은암장의  외줄타기를 등반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보다 더 어렵고 무게중심을 잃고 왼쪽으로 떨어지게 되면 그야말로 절벽을 나르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후등자도 부담이 된다. 선등자는 도대체 이 어려운 구간을 어떻게 등반한 것일까? 기자도 가끔씩 선등을 서지만 선등자가 다시 한번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아슬아슬한 구간을 마치면 등반방향은 다시 오른쪽으로 꺾이며 다시 만만치 않은 슬랩구간이 나타난다. 세 개 정도의 볼트를 지나 마지막 슬랩구간 등반을 마치고 나면 저 앞으로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바라다 보인다. 바로 내일 등반하게 될 요반길 일곱째 마디다.

대표적인 자유등반가인 손정준 소장, 수리산악회의 김재식 대표 등 단지 몇 명에게만 선등의 기회를 허락했던 요반길, 김재식 대표는 요반길 등반을 떠나는 기자에게 "두 번 다시 등반하고 싶지는 않은 길"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도도하게 솟아있는 요반길 일곱째 마디를 바라다보니 다시금 도전의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등반을 마친 류근학 클라이머는 “PC샹그리라는 1피치부터 6피치까지 작은 크랙 및 오버, 언더로 개척된 바위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다양한 기술과 담력을 필요로 하는 코스네요. 잠시의 방심은 추락으로 이어지는 중상급의 코스로 생각됩니다. 특히 항상 바위가 빗물로 젖어 있어 미끄럽고 6피치의 경우 등반코스 관리가 잘 안되어 잡풀이 있고 흙이 항상 젖어 있으며 하켄도 일부 빠져 등반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라고 등반소감을 말한다.

그는 또 “비가 오는 날과 그 다음날에는 크랙이 손가락이 미끄럽고 잘 안 잡히므로 될 수 있으면 등반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등반이 양호한 날에는 루트를 잘 파악하여 캠장비를 여유 있게 준비하고 등반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선등자를 믿고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하여 주신 회원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함께 한 회원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안전등반을 당부했다.

하강은 60자 하강 두 번이면 된다. 그런데 두 번째 하강포인트에서 기자는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세 개의 확보점은 다수의 낡은 슬링으로 매어져있는데 하나만 새로 박은 볼트이고 두 개는 낡은 볼트, 게다가 하강링이란 것이 잠금장치도 없는 비너였다. 당연히 슬링줄을 제거하고 새로운 슬링을 걸던가 탈출용 하강링이라도 설치해놓고 왔어야하지만 비를 맞고 저체온증에 가까운 상태가 된 등반팀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또 이 지점에서는 자일이 하강방향으로 왼쪽의 크랙에 잘 끼이게 되므로 자일를 회수하는데 적지 않은 힘을 쓰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여섯째 마디 확보점에서 하강을 할 때 우측으로 하강을 하고 후등자들도 자일을 따라 곧바로 하강을 해야 자일이 크랙에 끼이는 일이 없다. 등반팀도 자일이 젖어 도저히 회수가 어려운 것을 마침 표기승 클라이머가 소지하고 있던 주마를 이용하여 십 수번을 당기고 난후에야 간신히 자일을 회수할 수 있었다. 역시 119 구조대다웠다.

그러나 첫 번째 하강을 하면서 크랙에 긁힌 빙벽용 120자 자일은 심한 외상을 입어 더 이상 사용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귀한 공용장비를 손상하게 되었으니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부디 이 자일을 잘라 다음 기수의 훌륭한 교육용 자일로 사용하기를 그리고 올겨울 빙벽등반 때에는 더욱 튼튼한 자일을 장만해주시기를 부탁드려본다. 

또한 PC샹그리라의 개척자인 부산클라이머스도 좋고 이 다음에 등반하는 어느 팀이어도 좋으니 이 지점의 보수를 부탁한다. 부산클라이머스는 고산, 거벽등반으로는 부산을 대표할만한 저력을 갖춘 산악회다. PC샹그리라 이외에도 밀양에 부엉새바위라는 난이도 5.9에서 5.13b까지 200여개의 루트가 있는 암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붙어본 PC샹그리라길은 중도에 비를 맞게 되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결코 쉽게 넘볼 수 있는 바윗길로 변하고야 말았다. 특히 비에 젖은 여섯째 마디 크럭스 구간은 보통의 담력과 완력으로는 쉽게 선등을 내줄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성적인 첫째마디에서 셋째마디, 힘과 등반기술을 필요로 하며 짜릿한 넷째 마디, 긴장감 넘치는 여섯째 마디는 이미 울산바위의 명품바윗길로의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등반팀이 다섯째 마디와 여섯째 마디를 완벽하게 등반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시청 암벽팀의 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국가를 이끌고 가는 국민의 공복이면서 시간을 아껴 당당하게 멋진 취미활동을 즐기는 그들, 그들은 왜 등반을 하는 것일까? 등반은 정직하기 때문에, 등반은 우정을 꽃피우기 때문에 그리고 등반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를 아끼며 도와가면서 등반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기자는 진정한 알피니즘과 산악인의 우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하강을 마친 그들의 얼굴에서는 이제야 등반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교차되어 나타나는 듯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들이 저들과 같이 정직하고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희망이 꽃피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비약이 지나친 것은 아마도 우리가 PC샹그리라라는 바윗길을 등반해서일지 모른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지상낙원'으로 묘사된 마을 샹그리라는 이제 설악산 울산바위에 자리를 잡고 클라이머들을 이상향으로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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