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피부 이식재' 모자라 돼지피부까지 사용…속 타는 火傷환자들

입력 2014-09-13 09:00  

한 명 기증 때 100명 혜택보지만…인체조직 기증 1년에 248명뿐

세균 감염 막는 피부 이식재, 재고 부족해 제때 치료 못해
90% 이상 美서 수입하지만 '보스턴 테러' 사건 이후로 해외반출량 줄며 수입 급감
낮은 건강보험 수가 때문에 비싼 유럽산은 수입 어려워
해법은 인체조직기증 늘리는 것…의료진 인식부터 개선해야



[ 홍선표 기자 ]
지난 7월1일 부산 화명동의 한 화상전문 병원 응급실로 최모씨(46)가 급히 실려왔다. 자동차 정비공인 최씨는 작업 도중 발생한 화재로 전신의 64%에 화상을 입었다. 불에 탄 피부를 제거한 의료진은 고민에 빠졌다. 사체의 피부를 원료로 한 피부 이식재를 상처 부위에 덧씌워 세균 감염과 수분 증발을 막는 치료법을 써야 했지만, 병원에 피부 이식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급히 피부 이식재를 구해 상태가 심각한 양쪽 다리에만 씌웠다. 다른 부위는 소독제를 발라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치료를 못한 탓에 최씨는 입원 2주째부터 패혈증에 걸렸다. 한 달 뒤에는 폐렴 증세까지 보여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했다.

지난달 11일 같은 병원에 이송된 이모씨(48)도 전신의 52%에 화상을 입었지만 피부이식재가 모자라 정상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 입원 1주일 뒤에는 패혈증이 나타났다. 이들을 치료하고 있는 의료진은 “피부이식재가 충분했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환자들이 패혈증까지 악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중증 화상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피부이식재가 크게 부족해지면서 화상 환자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국내에 유통되는 피부이식재 물량의 90% 이상을 공급해오던 미국이 지난해부터 피부이식재 수출 물량을 급격하게 줄인 탓이다. 유럽산 피부이식재는 원가보다 낮게 건강보험 수가가 책정돼 있어 수입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피부를 포함한 인체조직 기증이 드물어 당장의 해결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화상 전문의들은 “지금처럼 피부이식재가 부족한 상황에선 자칫 대형 화재라도 발생할 경우 손도 써보지 못하고 환자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수입 급감

피부이식재는 화상환자를 체액 증발과 세균 감염으로부터 지켜내는 ‘갑옷’과 같은 역할을 한다. 화상을 입으면 상처 부위를 통해 인체의 체액이 빠져나가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세균 감염으로 패혈증 등의 질병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본격적인 치료와 수술 전 단계까지 피부이식재를 덮어 씌우게 된다. 환자의 정상적인 피부를 떼어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중증 화상환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의료기관에서 사용한 피부 조직 가운데 국내에서 기증받은 비율은 8.5%에 불과하다. 나머지 91.5%는 모두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피부이식재의 원재료나 완제품이었다. 피부이식재 수급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이 피부이식재의 해외 수출을 크게 줄이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4월 미국 보스턴에서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이 자국 내 대형 테러에 대비해 해외 반출량을 줄인 탓이다.

이 때문에 일반 병원은 물론이고 한국인체조직기증원과 주요 화상전문병원조차 피부이식재 재고량이 바닥났다. 윤천재 베스티안 부천병원 원장은 “지금은 피부이식재를 구하느라 병원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급한 환자 치료를 위해 가공업체에 직접 전화를 해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인체조직 기증 턱없이 부족

피부와 근막, 뼈, 혈관 등 인체조직의 80% 정도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의료계의 현실이 피부이식재 등의 수급난을 불러온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신장 간 등과 같은 장기기증은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피부 등의 기증은 턱없이 부족하다. 피부와 같은 인체조직을 기증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장기기증 희망 서약자는 82만여명에 달하지만 사망 시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서약자는 26만여명에 그치고 있다. 화상 전문의와 피부이식재 관련 업체들은 피부이식재에 대해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있는 건강보험 수가가 미국 외의 다른 국가에서 피부 이식재를 수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냉동 방식으로 보관하는 미국산 피부이식재 제품의 건강보험 수가는 ㎠당 2810원이다. 반면 알코올의 일종인 글리세롤 용액에 담아 보관하는 유럽산 피부이식재의 수가는 ㎠당 1370원, 1970원에 불과하다.

인체조직 수출입 컨설팅업체 아토즈바이오의 어철호 대표는 “수입원가와 운송료, 가공비용 등을 합하면 미국산 피부이식재도 가공업체 입장에선 팔아도 이익이 남지 않는 상품”이라며 “유로스킨뱅크 등이 판매하는 유럽산 피부이식재는 ㎠당 수입원가만 1.6유로(약 2100원)로 보험 수가보다 비싸 도저히 들여올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텅 비어 버린 냉동고… 해법은?

피부이식재가 보관돼 있어야 할 냉동저장고가 텅 비면서 병원들은 어쩔 수 없이 돼지피부와 인공피부 등 대체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 효과는 사람에게서 기증받은 피부이식재에 미치지 못한다. 또 인공피부는 건강보험 적용에서 제외돼 있어 사체 피부이식재에 비해 평균 5~6배까지 비싼 경우도 많다. 화상을 입는 사람들이 대부분 저소득층인 만큼 이들이 감당하기엔 비용이 너무 비싼 게 현실이다.

양혁준 가천대 길병원 교수(대한화상학회 이사장)는 “심한 화상을 입은 화상환자에게는 인공피부가 그다지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사람의 피부인 사체 피부이식재를 따라올 수 있는 대체품은 아직까지 없다”고 설명했다. 피부이식재 수급난으로 환자들이 치료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국내에서 인체조직의 기증을 늘리는 게 근본적인 해법인데,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여전히 낮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가 실시한 설문에서 일반 국민 중 인체조직기증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1.7%에 그쳤다. 헌혈과 장기기증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자 비율(99%)과 크게 대비된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위급한 환자를 다루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인체조직기증이 뭔지 대체로 알고, 환자들에게 권유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다른 의사들조차 인체조직기증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장기적으로 피부 등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홍보가 시급하다. 단기적으로는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뇌사자들 가족에게 인체조직 기증을 권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 기준으로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뇌사자는 409명인데, 이들 중 인체조직기증까지 함께 한 사람은 172명이었다. 일반 사후 기증자까지 합쳐도 인체조직을 남기고 떠난 이는 248명에 불과했다. 한 사람의 기증으로 최대 100여명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인체조직 기증의 특성상 장기기증과 인체조직기증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국내 환자들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윤경중 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본부장은 “인체조직 기증 희망 서약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며 “신장이나 폐 같은 장기처럼 피부와 뼈 같은 인체조직도 기증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국민에게 알리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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