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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포럼] '일본은 미래 한국 반면교사' … "장기불황 성장통 대비하자"

입력 2014-09-17 09:31   수정 2014-09-18 10:45

'한일 경제협력 방안' 주제 한경닷컴 제2회 일본경제포럼 개최




“오늘의 일본은 내일의 한국이다. 역사적·정치적 문제로 무조건 일본을 밀어내거나 감정적으로 대해선 안 된다. 산업구조가 유사해 일본이 걸어온 길을 한국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이 겪은 장기불황을 한국이 답습하지 않으려면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의 경제협력이 절실한 이유를 이 같이 요약했다. 양국 정상이 만나지 않고 있는 갈등 관계 때문에 경제까지 손을 놔선 안 된다는 것. 편견과 감정적 접근을 배제하고 일본을 거울 삼아 보면 한국 경제의 갈 길이 나온다고 입을 모았다.

한경닷컴과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이 주최하고 한국도요타자동차, 현대모비스, 한국닛산이 후원한 ‘제2회 한경닷컴 일본경제포럼’이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렸다.

포럼을 주최한 한경닷컴 황재활 대표는 “발표자로 나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일 양국의 공동 발전을 위한 '윈윈(win-win)' 방안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행사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유관기관 종사자를 비롯해 일본·경제 관련 전공 대학생, 금융 분야 취업준비생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특히 일본 국영방송 NHK가 취재하는 등 양국 관계 이해의 출발점이 될 이번 포럼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포럼에선 한일 양국 경제 전반과 농업, 언론, 유통, 마케팅,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지난 6월 개최된 1회 포럼에 비해 세분화·전문화된 수준의 발표가 계속됐다.

참석자들은 오후1시부터 6시까지 이어진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태도로 행사를 지켜봤다.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지는 등 시종일관 열띤 분위기로 진행됐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젊은 참석자가 크게 늘어나 한일관계의 미래를 밝히는 의미도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의 명문 도쿄대 학생을 비롯해 행사 참석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도 눈에 띄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 한일 경제협력 방안은?’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선 경제 교류협력부터 풀어나가는 실용론이 강조됐다. 이를 디딤돌 삼아 양국 정상이 만나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반적 양국 관계의 해빙 무드가 전개되는 선순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한일 하나의 경제권' 동아시아 주도하자



첫 강연자로 나선 이종윤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사진)은 “한일이 하나의 경제권을 만들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가교 역할을 맡자”고 제안했다. 산업구조가 유사한 한일 양국이 주도해 과당경쟁을 피하고,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못지않은 역내 경제협력시스템을 구축해 시너지를 내자는 것이다.

그는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던 기존의 구미 경제체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체력이 떨어졌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며 “한국과 일본은 유사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양국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면 출혈경쟁을 피하고 비교우위에 따른 산업을 특화하는 등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 참가자들은 이 부회장이 제시한 ‘한일 하나의 경제권’ 개념이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나 한일 FTA 체결과는 어떤 차이점을 갖는지, 한일 관계와 한중 관계의 균형 유지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이 부회장은 “하나의 경제권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안이 한일 FTA지만 역사적·정치적 요인으로 곧바로 체결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양국 경제단체 중심으로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한일 관계와 한중 관계는 대립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다만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기반한 한일 양국이 주역이 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곡물시장 진출 전략 "치밀하게 은밀하게"



‘한일 농업 비교, 선진국 일본의 전략과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한 이춘규 박사(사진 ·서울신문 정치 선임기자)는 이날이 학계 데뷔전 격이 됐다. 지난달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그는 특히 제조업 등 주류가 아닌 농업 연구로 주목받았다.

농업 분야에서 일본의 장기 투자전략을 배우자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이 박사는 “세계 곡물시장 가격 변동이 심해지면서 식량안보가 중요해졌지만 한국과 일본은 식량자급률이 40% 안팎에 그쳐 취약한 편” 이라면서 “양국의 대응 전략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한국은 민관 협력과 장기적 대처를 통해 성공 사례를 만든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3위 곡물 유통업체로 부상한 일본의 종합상사 ‘마루베니’의 사례를 들었다. 마루베니는 지난 2012년 미국 가비론사 인수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곡물 메이저로 주목받았다. 글로벌 업계 1위 카길을 겨냥해 ‘한국판 카길’을 만든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청산 절차를 밟은 한국의 전략 실패와 대비된다.

이 박사는 “정책 일관성과 전략의 부재가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판 카길’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다 보니 경쟁국들의 견제가 극심해 실패한 것” 이라고 진단한 뒤 “장기적이고 드러나지 않게,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찌감치 해외농업개발협회를 설립하고 민관이 힘을 합쳐 곡물시장 선진국이 된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일본은 한국의 거울… "객관적으로 보자"



“오늘의 일본은 곧 내일의 한국이다.” 도쿄 특파원을 지낸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사진)은 일본 경제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해 선진국 도약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미디어가 일본에 대한 감정적 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 잣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국장은 “주관적 편견을 갖고 감정적으로 일본을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며 “객관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은 양국 경제협력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양국의 정치·외교 문제가 꼬였다고 해서 경제적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현지 취재를 한 그는 “비관론이 우세했지만 직접 목격한 일본은 특유의 장점인 질서 의식, 공동체 의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이었다” 며 “잠깐 글로벌 1위 자리를 내줬다가 되찾은 도요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일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개발(R&D)이 탄탄한 기초체력 때문에 일본 경제가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국장은 “일본 기업과 경제가 정말 쇠퇴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반문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과 비교해 심각한 문제인가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면서 “유독 일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정확히 현실을 인식하고 일본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보다 앞서간 일본에게서 배울 수 있다”고 당부했다.

◆ "장기불황 견딜 수 있는 유통업체 필요"



‘한국 유통의 변화와 전망’을 주제로 발표한 이정희 중앙대 교수(사진)는 일본의 유통업 체력을 높이 평가했다.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 속에서도 유니클로, 다이소 같은 혁신적 유통업체가 나타났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

그는 10여 년 전의 일화를 들어 이를 풀어 설명했다. 이 교수는 “유통 분야 일본의 최고경영자(CEO)가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유통업체 관계자에게 비결을 물어본 적 있었다. 그때의 자신감이 지금도 있을지는 의문” 이라며 “유통시장 개방 전후로 외형적으로는 상당한 성장이 있었지만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업체의 상생 문제를 노출하는 등 내적 취약점이 크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교수는 “유통 분야는 일본이 걸어온 길을 거의 비슷하게 뒤따라가고 있다” 면서 “그동안 한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급성장했지만, 과연 일본과 같이 장기 불황에 들어갔을 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과 규모에 의존한 지금까지의 성장 위주 전략은 앞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얼마나 단단한 체제를 만드느냐가 불황에서도 성장하는 기업이 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기 때문” 이라며 “미래의 경쟁력은 규모화, 종합화가 아니라 창의와 혁신성, 차별화 및 전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핵심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힘줘 말했다.

◆ 일본 시장 마케팅 "이해 넘어 공감하라"



“일본 소비자는 까다롭다. 현지에선 소비자의 마음속에 들어가 감동시키는 ‘고토 마케팅’이 대세다. 한국 기업도 일본 시장을 공략하려면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분석해선 안 된다. 이해 정도 수준에 그쳐서도 곤란하다. 공감을 통해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본 현지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최상철 일본 유통과학대 대학원장(사진)은 일본 시장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한국 기업들을 겨냥해 쓴 소리를 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일본 시장을 이솝우화의 ‘신포도’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고 지적한 뒤 “정확한 타깃팅으로 마케팅 전략을 잘 짜면 일본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대학원장은 “일본 소비자는 품질에 대해선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이들이 금융 자산이 충분한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면서 “결국 한국 기업들이 일본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면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정 마케팅, 공감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본 시장 자체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충고도 뒤따랐다. 최 원장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에 취해 상대적으로 일본 시장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까다로운 성향의 소비자들이 있는 일본 시장에서 통하면 해외 어느 시장을 가더라도 성공의 보증수표를 얻는 것” 이라며 기업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 '출구론' 외교로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이원덕 국민대 교수(사진)는 한일 양국의 경색된 관계를 ‘출구론’ 외교로의 발상 전환을 주문했다.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 진전 없이는 양국 관계 개선은 없다’는 입장을 뒤집어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역사인식 문제를 풀자’는 쪽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반드시 역사인식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만 경제협력을 포함한 교류에 나설 수 있다는 건 위험한 생각” 이라며 “예를 들어 일본이 자국 내에서 헌법 개정 논의를 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이를 무조건 ‘군국주의화’ ‘우경화’ 패키지로 묶어 판단해 버리면 한일 양국이 소통할 수 있는 경로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경계했다.

그는 급도로 냉각된 양국의 국민감정을 걱정했다. 일본의 경우 일반 가정에서 한국 유학생을 받기 꺼릴 정도가 됐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양국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나, 한일 정상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있으면 일반 국민의 관점에서도 상대를 보는 시각이 극단적으로 편향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우선 양국 정상이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일 양국의 상호인식 문제는 결국 오해와 편견, 착시에서 비롯된 것” 이라며 “연내 양국 정상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4차례 정도 있다. 다자간 회담에서 만남을 피하지 말고 분위기를 만든 뒤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내년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밑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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