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87체제에서 자라난 독버섯들

입력 2014-12-22 20:57   수정 2014-12-23 04:55

87민주화 운동에 스며든 종북세력
헌법 119조2항도 사회주의적 퇴행
통진당 해체 판결은 자유의 재확인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은 자유의 원칙을 잘 보여준다. 사상과 이념은 자유지만 그것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면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 말이다. 이는 자유의 한계이론이 아니라 자유의 정의(定義) 문제이며 책임과 규율의 원칙이다. 통진당은 북한체제를 추종하며 인민주의적 정치체제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자유와는 양립 불가능하다. 일부에서 말하는 사상의 자유가 스스로 지배권력이 되겠다는 정당활동에까지 허용될 수는 없다. 타인의 자유를 압살하는 정치체제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는 정당은 이미 충분히 폭력적이다.

이는 자유와 폭력의 대결이지 자유 대 자유, 혹은 다양한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상대방의 코앞에서 멈춘다’는 오랜 법언(法言)이 설명하는 그대로다. 누구라도 허공에 주먹을 휘두를 자유가 있지만 폭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조직을 결성하는 데 이를 수 없다. 일각이지만 얄팍한 자유의 논리로 통진당을 옹호하는 것은 사상적 난교요, 지력의 백치이며, 이념의 무정부성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다.

종북은 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났다. 주체사상 연구라는 이름 아래 태어난 세력들이 87년 민주화 운동 과정에 스며들면서 동조자를 모았다. 극단적인 체제부정이며, 자본주의 혐오증이며, 반(反)사회 성향의 극대화다. 386은 휘갈겨 쓴 ‘전두환 타도’의 깃발과 함께 대학 도서관 건물 2층 난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불행히도 386은 종북의 울타리, 숙주, 혹은 방패가 되었다. 그들은 피터팬처럼 성장을 거부한 채 지금껏 소위 인정투쟁을 벌여왔다. 그런 면에서 386과 종북 모두를 5공 키즈(kids)요 전두환 키즈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하나의 잘못된 시대는 그렇게 그림자를 길게 남긴다.

아니 특별히 잘못된 시대가 아닌 곳에서조차 종종 관찰되는 것이 반사회 성향이다. 미국에서조차 엘저 히스 같은 간첩들이 버젓이 국무부에서 근무할 정도였고, 재무부의 해리 D 화이트는 케인즈와 함께 전후 세계 경제질서를 구축하는 쌍두마차의 하나였다. 이들은 나중에 매카시의 고발이 있고서야 체포되었다. 미국에서조차 자생적 간첩이 암약했다. 얄타 회담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한 히스는 소련의 한반도 진주에 책임이 있다. 매카시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떠는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종북에 대해서도 낭만주의적 동조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김일성 충성서약에 이르면 경악할 것이다. 히스의 경우도 옛 소련 문서가 나오고서야 입증되었다.

87체제의 부작용인 악의 꽃들이 도처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다. 하나가 종북이라면 다른 하나는 인민주의적 정치성향의 내재화다. 이 둘은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적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네크로필리아는 자살, 죽음 혹은 죽임에의 충동을 일으키는 어두운 힘이다. 후진국 정치는 아래와 위에서 모두 이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나치즘의 광기나 숨막히는 스탈리니즘, 홍위병의 창궐,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모두가 인민주의적 충동 즉, 네크로필리아다.

한국 민주주의 역시 험악한 길을 걸어왔다. 해방 후 제헌의회가 가졌던 인식 지평은 분명 한때의 유행이었던 사회주의였다. 그러나 6·25를 거치고 한국인들 앞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면서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의 길을 달렸다.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자유시장경제로 들어섰던 헌법은 87체제와 더불어 헌법 119조2항의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을 허용하고 말았다. 인민주의적 퇴행이었다. 독버섯은 그렇게 자유 속에서 자라났다. 노동이 정치세력화하는 일련의 역주행도 일어났다. 국회는 서서히 포퓰리즘의 볼모가 되었다. 자기파괴의 힘은 지금도 자라나는 중이다. 87체제의 대중적 정치에너지 속에는 어두운 힘도 들어 있다. 그 힘을 제어하고 판도라의 관 뚜껑에 못질을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지금이야말로 영혼의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자유 속에서만 나온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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