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前 장관의 '경제위기 대응실록'을 읽고

입력 2015-01-09 21:15   수정 2015-01-10 05:48

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


[ 김유미 기자 ] 자의든 타의든 새해에 책 한 권을 읽은 것이 뿌듯하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최근 내놓은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글로벌 경제위기까지’(삼성경제연구소)였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비롯해 40여년간 한국 경제 현장을 누볐던 전직 경제관료의 실록이다.

인물의 무게감도 컸지만 ‘실전 위기 경제학’이라는 부제가 비장했다. 그는 1997년 재정경제부 차관을 맡아 외환위기에 대응했고 2008년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글로벌 경제위기와 마주쳤다.

책은 1997년 외환위기 회고부터 시작한다. 그는 당시 위기를 ‘과욕과 무지가 부른 재앙’이라고 일컫는다. 당시 물가를 잡으려는 저환율(원화강세), 통상마찰 예방을 명분으로 내건 8% 단일관세율은 “경제사에 남을 최악의 정책조합”이었다. 수출경쟁력은 악화하고 저렴한 수입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1996년 말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가자마자 ‘환율을 수출포기점 920원대 이상으로 올리자’고 재정경제부에 제언했지만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경상수지는 경제의 종합건강지수이고 환율은 나라 경제를 지키는 주권”이라는 그의 ‘환율주권론’은 익히 알려진 바다. 2008년 위기가 터졌을 때도 그는 환율부터 챙겼다.

강 전 장관의 논리는 책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대내균형(물가안정)과 대외균형(경상수지 흑자)이 상충할 때는 ‘비난을 무릅쓰고’ 후자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가가 급등하면 가계가 당장 고통받는다. 정부에 비난의 화살이 날아온다. 하지만 감당해내야 한다. 관료니까. 이것이 그가 강조하는 패기다.

한국은 두 번의 위기를 고환율(원화 약세)로 넘겼고 2010년엔 세계 7위 수출대국에 올랐다. 하지만 가계보다 수출 기업에 부(富)가 돌아갔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강단과 고집으로 유명한 강 전 장관도 ‘비난을 무릅쓰는 것’이 쉽지 않았던 듯하다. 원화 약세 때문에 음악 동호인들은 CD 수입가격, 강남 아줌마들은 자녀 해외유학비가 올라 자신에 대한 인터넷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고 떠올린다. 그리고 당시 가족들이 대신 겪은 아픔을 애통하게 떠올린다.

그가 가장 강하게 비판한 것은 두 가지다. 미국식 경제학에 치중한 학계, 그리고 물가와 환율의 책임을 공유한 한국은행. 특히 한은에 대해서는 위기 때마다 저환율을 방치하고 정부와 다른 길을 갔다며 비판한다. 환율 주권은 기재부에 있다는 명제도 다시 꺼낸다.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갈린다. 한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전 저환율 정책은 국민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뜻이었는데 왜 한은을 공격하느냐”고 했다. 1950년대 한은 설립 이야기 등 여러 곳에서 ‘인과관계 왜곡’이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환율 주권의 정의가 뭐냐는 질문도 나온다.

하지만 논쟁이 크게 불거질 것 같진 않다. 요즘 기재부와 한은의 관계는 예전보다 협조적이란 평가다. 기재부 안에서도 환율 주권에 대한 외침이 과거 같진 않다. 논란을 키웠다가는 국제적으로 ‘한국은 공공연히 외환시장에 개입한다’는 편견을 조장할 수도 있어서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긴다는 게 기재부와 한은 공통의 목소리다.

독후감을 쓰기 전에 책의 말미를 눈여겨봤다. 40년 넘게 경제정책의 딜레마를 경험했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경제학자 케인스의 따뜻한 가슴과 하이에크의 차가운 머리는 함께 갈 수 없는가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답은 의외로 소박해서 다소 예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투기와 거품이 없는 다이어트 경제학’. 정부의 통 큰 개혁, 가진 자들의 통 큰 자비 등으로 이뤄지는 절제의 경제학. 어렵다. 그도 덧붙인다. “가능할까? 현실은 우울하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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