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세계 최대 춘천 레고랜드 건설, 때 아닌 역사논쟁 휘말려 '시끌'

입력 2015-01-17 09:05  

"청동기 유물 많아 안 돼"
"집터·청동기 유물은 고조선 비밀 푸는 열쇠"
일부 역사·고고학계,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

"고조선 연계는 무리수"
비파형 청동검 등 전남·서해안서도 많아
고조선 유물 단정 못해



[ 홍선표 기자 ]
지난 14일 오후 1시 의암호로 둘러싸인 강원 춘천시 중도(中島). 28만㎡(8만5000여평) 규모의 레고랜드 건설현장에선 200여명이 청동기시대 집터 위를 덮고 있던 파란색 방수천을 걷어 내고 그 안에 모래를 채워넣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문화재청이 복토(覆土) 작업을 거친 집터에 레고랜드를 짓도록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장을 감독 중인 문화재 발굴업체 관계자는 “레고랜드는 지하 터파기 공사를 하지 않는 공법으로 건설될 예정이어서 흙에 덮인 지하 유적은 그대로 보존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물이 가장 많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섬 북쪽 지역은 개발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5000억원의 공사비를 투입, 춘천에 세계 최대 규모의 레고랜드를 건설하는 사업이 때아닌 역사 논쟁에 휘말렸다. 지난해 11월 공사가 시작됐지만 역사·고고학계 일부가 사업 부지에서 발굴된 고인돌과 집터 등 청동기시대 유물을 보존해야 한다며 개발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9월 부지 내 박물관 건립과 고인돌 이전 복원 등을 조건으로 건설을 승인했지만, 반대 단체들은 법원에 공사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레고랜드 공사 첫 삽은 떴지만

레고랜드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좋아하는 장난감인 레고의 크고 작은 블록을 이용해 놀이공원 내 건축물과 각종 캐릭터를 꾸민 테마파크다. 디즈니랜드의 뒤를 잇는 세계 2위 규모다. 현재 영국 미국 등 5개국에 6개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각 테마파크를 찾는 관광객만 연간 120만~200만명에 이른다.

레고랜드 운영사인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은 2011년 강원도 등과 투자합의각서(MOA)를 맺고 춘천 중도를 레고랜드 부지로 선정했다. 춘천 레고랜드에는 약 3000만개의 크고 작은 레고 블록이 사용된다. 레고랜드와 인근 테마파크의 면적만 129만㎡로 세계 레고랜드 가운데 가장 크다. 춘천시는 멀린그룹이 1000억원, 강원도와 국내 기업이 4000억원 등 모두 5000억원을 투입해 2017년 3월 개장하는 레고랜드가 침체에 빠진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승태 강원도 레고랜드추진단장은 “미국 칼스배드시의 경우 레고랜드가 들어서 21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며 “춘천 레고랜드에도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이를 통해 매년 44억원의 지방세수가 추가로 걷힐 것”이라고 말했다.

청동기 유물 대거 출토…찬반 논란 커져

각종 인허가와 착공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레고랜드 조성 사업은 대규모 유물이 출토되면서 역사 논쟁으로 번졌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7월 레고랜드 부지에서 고인돌 101기와 집터 917기, 대형 환호(마을 주변을 따라 파놓은 도랑)의 흔적, 비파형 동검과 청동 도끼 등 청동기시대 유물 1300여기가 발굴됐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춘천 중도 고조선유적지 보존 범국민운동본부 등 레고랜드 반대 단체는 900여기에 이르는 집터가 청동기시대에 6000~7000여명이 거주했던 증거라고 주장했다. 특히 고조선의 특징적 유물인 비파형 동검 출토는 고조선 영역이 한반도 중부에까지 미쳤던 증거라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지난 5일 춘천지방법원에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건설 중단을 위한 행정소송도 벌인다는 방침이다.

풍납토성 보존 운동을 이끌었던 이형구 선문대 역사학과 석좌교수는 “중도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977년 지표조사를 나서면서 유적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며 “고대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유적 위에 레고랜드를 짓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류 역사·고고학계와 레고랜드 시행사 측은 타당성이 부족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중도에서 대규모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긴 했지만 청동기시대에 1000년에 걸쳐 조금씩 형성된 유적일 뿐 대규모 집단 거주지라는 주장은 억지라는 것이다.

비파형 동검도 전남 여수와 서해안 지역에서도 수차례 발견된 만큼 한 자루의 비파형 동검을 고조선과 연결하는 것 역시 무리라는 지적이다.

최성락 목포대 고고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900여기의 집터는 기원전 14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며 “대규모 거주지가 존재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현재 공법이 보호에 유리”

이 같은 논란 속에 박물관 건립 등을 조건으로 지난해 9월 레고랜드 건설을 승인한 문화재청은 지금의 건설 방식으로 유적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레고랜드의 경우 지하 하부구조 공사 없이 땅 위에만 건물을 짓는 만큼 공사가 이뤄져도 문화재에는 손상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

모래흙으로 이뤄진 중도의 지질 특성상 집터를 외부에 노출할 경우 오히려 집터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화재청의 판단이다.

현장심사에 참여한 한 문화재청 매장문화재분과 위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민들이 중도에 마 우엉 등 뿌리가 깊은 작물 농사를 지어 지하에 있던 집터가 많이 파괴됐다”며 “3차원(3D) 스캔을 통해 유적에 대한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유적을 땅에 보존하는 것이 문화재 보호에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춘천=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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