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인 士氣 저하가 두려운 이유

입력 2015-01-21 20:43   수정 2015-01-22 03:50

"50년 이상 성장동력 이어온 한국
환경 따라 변할 수 있는 능력 덕분

숱한 위기가 남긴 傷痕 극복하고
기업가정신 발휘할 토대 다져야"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올해는 광복 7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됐다. 우리 생각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세계에는 우리보다 못한 나라들이 많아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유엔개발프로그램(UNDP) 등 모든 국제기구가 이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성과는 무엇보다 경제성장 덕분이다. 한국 경제성장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외부 흐름을 잘 탔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서 성립한 세계 자본주의 질서는 한국의 광복을 가져온 탈(脫) 식민지화와 함께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가져왔다. 한국은 처음에는 냉전 하에서 원조를 통해, 그 다음에는 1960~70년대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 그런 조건을 잘 활용했다. 물론 국내적 능력도 중요했다. 1950년대에는 농지개혁으로 결정적인 체제위기를 극복했고, 유례없는 교육열과 1960~70년대 국가의 동원력도 경제성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개도국도 수년 또는 십수년씩 성장해서 선진국 문턱까지 가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반면 한국은 50년 이상 성장 동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변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에는 바뀌는 국내외 조건에 맞춰 자유화와 개방을 추진하고 연구개발 능력을 키웠다. 민주화도 성장이 지속될 수 있게 한 하나의 요인이었다.

이런 구도에서 예외는 1997년 외환위기다. 외환위기는 1990년대 들어 한국이 미국 헤게모니의 성격과 세계 자본주의 질서가 바뀐 데 적응하지 못해 일어났다. 그러나 그 결과 치른 엄청난 비용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진입할 정도의 성장은 유지됐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가. 무엇보다 위기가 너무 잦았다. 분단, 전쟁, 정변으로 이어진 1960년대 초까지는 물론 고도성장이 시작된 후에도 그랬다. 1997년 외환위기뿐 아니라, 8·3 긴급조치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1970년대 초의 위기, 1970년대 말 중화학공업화의 과잉투자로 인한 1980년대 초의 위기, 사실상 또 하나의 외환위기인 2008년 위기 등이 그것이다. 지난 70년간 한국은 성장률에서 세계 수위를 다투는 한편으로 위기의 빈도도 매우 높은 나라였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외부 조건은 녹록지 않다. 우선 2008년 이후 대공황 이래 세계 자본주의의 최대 위기인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이어지고 있다. 장기침체 가능성도 점쳐진다. 무역에서는 다자협상이 13년을 끌면서 거의 포기 상태다. 더 근본적으로는 중국의 등장과 일본의 변신으로 2차 대전 이후 짜여진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의 기본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는 통일문제도 같이 얽혀 있다.

국내 문제는 어떤가. 무엇보다 그동안 빈발해 온 위기의 유산이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급락한 출산율이 성장잠재력을 낮추는 것은 두드러지는 예다. 더 무서운 것은 ‘기업인의 사기 저하’다. 도산하고, 구조조정 당하고, 재기는 불가능하고,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도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오래 반복됐다. 그 결과 세계를 향해 뛰는 기업인이 되겠다는 우수한 인재는 줄어들고 공무원 지망자만 넘쳐난다. 이것이 성장 잠재력을 올릴 리 만무하다.

한국은 광복 70년 만에 선진국이 됐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 자본주의 질서가 바뀌는 것에 잘 대처해야 한다는 데 이의(異議)가 있을 수 없다. 그런 한편 국내적으로는 수많은 문제 중에서도 기업인의 사기를 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전체 국민의 ‘불안감’을 줄이는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성장 과정은 항상 어려움의 연속이다.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남는 것은 침체뿐이다. 그런 일은 선진국 문턱에서뿐 아니라 문턱을 넘은 뒤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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