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시원해지고 대담해져
[ 김선주 기자 ]

그레이스 켈리,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마를렌 디트리히, 그리고 오드리 헵번. 모두 ‘스타일 아이콘’으로 꼽히는 은막의 스타들이다. 패션 업계는 매년 우아하거나 신비롭고, 섹시하거나 무심한 이들의 매력 중 하나를 대중에게 환기시켜 유행의 방향을 바꾼다.헵번은 그중에서도 사랑스러운 ‘레이디 라이크 룩’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헵번이 1954년 영화 ‘사브리나’에서 입었던 도트 블랙 드레스와 카프리 팬츠,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선보였던 리틀 블랙 드레스(LBD) 등 간결한 디자인과 색상, 몸에 꼭 맞는 품의 ‘헵번 룩’은 지금도 패션 업계에서 끊임없이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지방시는 헵번의 의상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만들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가 헵번을 위해 만든 ‘오드리 슈즈’는 지금도 플랫 슈즈의 고전으로 꼽힌다.
헵번은 국내 패션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토종 여성복 브랜드 마인이다. 마인은 1988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한섬이 처음 내놓은 여성복 브랜드다. 마인이 론칭 이듬해인 1989년 봄·여름(S/S) 컬렉션에서 선보인 주요 의상은 LBD의 한국판인 ‘리틀 블루 드레스’였다. 이 푸른색 드레스는 앙증맞은 모양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우아한 여성미를 드러내 출시와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마인의 ‘헵번 사랑’은 2000년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1년 가을·겨울(F/W) 컬렉션에서는 헵번의 카프리 팬츠를 연상케 하는 이름의 ‘카프리 드레스’를 선보였다. 블랙 블라우스에 아이보리 플리츠 스커트를 배치한 이 드레스는 지금도 마인의 대표 제품 중 하나로 꼽힌다.
2004년 S/S 컬렉션에 내놨던 ‘로즈 재킷’도 헵번의 영향권 안에 있는 제품이다. 잘록한 허리선, 영문자 A 모양으로 허벅지까지 살짝 퍼지는 선, 블라우스처럼 가슴 부분에 단 얇고 긴 리본, 연분홍색 장미를 떠올리게 하는 은은한 색상 등이 “레이디라이크 룩의 진수”라는 평을 받았다. 마인은 지난해 1월 하얀 토끼털로 장식한 양가죽 장갑인 ‘헵번 글로브’를 출시하기도 했다.
마인의 올 S/S 컬렉션 주제는 ‘절제된 여성미’다. 큰 틀에서 보면 레이디라이크 룩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선은 한층 시원하고 대담해졌다. 일부 제품은 허리선을 잡아주는 A라인을 기본으로 하되 ‘소문자 A’ 대신 ‘대문자 A’처럼 보이도록 미세하게 선을 조절했다. A라인 민소매나 칠부 상의에 밑단이 퍼지는 A라인 하의를 배치한 ‘A-A 라인’도 다양하게 활용했다.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진 않았지만 간결해 보이도록 최소한의 장식만 허용했다. 이에 따라 주력 제품인 ‘미디움 펀칭 드레스’는 가슴과 치마 중간 부분만 펀칭 처리했다. 이 제품은 원단에 촘촘하게 구멍을 뚫은 듯한 효과를 주는 펀칭 기법을 활용한 A라인 블랙 드레스다. 여성스러운 선을 잃지 않되 활동성을 고려해 만들었다. 목 둘레를 나풀거리는 작은 꽃잎처럼 처리해 노골적인 꽃 문양이 없어도 여성미가 드러나도록 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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