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 일본 열도로 건너간 백제 문화

입력 2015-03-06 17:48   수정 2015-03-30 13:59

대원고 최경석 쌤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8)

(7) 무령왕릉이 알려준 백제의 美
(9) 실크로드의 끝에 신라가 있다
(10) 진흥왕, 한강을 차지하다
(11) 뉴욕으로 날아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12) 원효와 의상, 서로 다른 길을 가다살반가사유상



혹시 여러분은 ‘도왜인((渡倭人)’ 또는 ‘도래인(渡來人)’이라고 들어보았나요? 한자어를 풀어보면 말 그대로 바다 건너 왜, 즉 일본으로 들어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도왜인은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일본 야마토 정권의 수립과 그후 아스카 문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주로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들이 다수이며, 간혹 중국에서 건너온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면서 고대 일본 문화 형성에 기여하게 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백제의 학자였던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 열도로 건너가 한자와 유학을 전합니다. 6세기말에는 승려 혜총이 일본 아스카 시대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소가노 우마코에게 불교의 율법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불교를 반대하던 세력도 있어 불교 수용은 하나의 커다란 정치적 논쟁과 세력 다툼으로 번지게 됩니다. 소가노 우마코는 당시 쇼토쿠 태자와 손을 잡고 반대 세력을 몰아내기까지 합니다. 7세기 초에도 백제 승려 관륵이 건너왔으며 천문과 지리 등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백제 불교의 수용은 일본 입장에서 선진 문물을 배울 수 있는 유력한 통로였던 것이지요.


유학과 불교를 전해 준 백제인들

이렇게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문물 중에 오늘날 우리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를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우선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칠지도’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얼핏 본 적이 있을 텐데요. 마치 나무 줄기에 양 옆으로 3개씩 가지가 붙은 모양의 철제 칼입니다. 이 칼의 양쪽 옆면에는 금을 박아 새겨 놓은 글, 즉 명문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어요. 여기엔 대략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게 이 칼을 만들어 주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와 인물, 그리고 의미에 대해선 현재까지도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간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수의 연구자들은 백제 전성기였던 4세기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가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당시 백제의 위상이 매우 높았으며 일본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백제가 칼을 갖다바쳤다는, 즉 당시 일본이 오히려 정치 외교 관계에서 우위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약 74cm의 길이로 된 이 독특한 모양의 칠지도는 현재 일본 이소노가미 신궁에 일본 국보로 지정, 보관되어 있습니다.

스에키 질그릇, 그리고 호류사 백제관음상

한편, 일본에서 5세기께 고분에서 많이 발견되는 매우 단단하고 굳은 질그릇이 있습니다. 우수한 재질의 그릇이라는 뜻의 ‘스에키’가 바로 그것인데요. 그 이전까지 일본 열도에서는 물레나 가마를 사용하지 않고 800도 정도의 온도에서 구워 질그릇이 그리 단단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백제에서 이주한 도공들이 언덕 경사면을 이용, 오름가마를 만들고 여기에서 무려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단단한 그릇을 구워내게 됩니다. 또한 대부분 회청색을 띠게 되지요. 이 오름가마로 연료가 연소될 때 산소가 일시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흙 속의 철 성분이 산소와 만나면 붉게 변하는데, 이를 차단하였기 때문에 회색 또는 회청색으로 변합니다. 이미 백제의 이러한 질그릇 생산 방식은 가야에 전해졌으며 일본에도 그 방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6세기에는 백제 불교가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는데요. 그 후 일본 아스카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호류사가 쇼토쿠 태자에 의해 건축됩니다. 여기엔 7세기 백제에서 전해진 불상으로 알려진 ‘호류사 백제관음상(호류지 목조관음보살입상 또는 구다라관음)’이 있습니다. 2m가 훨씬 넘는 키로 매우 날렵하고 호리호리해 보이는 이 관음상은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를 하고, 얼굴에 약간의 은은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형태입니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삼존석불과 비교해 볼만 하지요. 하나의 나무로 조각한 이 불상은 자비를 베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인데, 팔과 몸을 스치듯 감싼 채로 아래로 늘어뜨린 옷 매무새가 매우 입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한쪽 손은 위로 향하고 반대편 손은 아래로 향하면서도 정병을 들고 있어 지루함을 깨고 대칭적 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아하면서도 기품있는 신비함을 간직한 백제관음상이지요.

의자왕이 보내준 바둑판

마지막으로 저는 백제의 의자왕과 관련된 유물을 통해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의자왕은 잘 알다시피 나당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백제의 마지막 왕입니다. 보통 우리는 그와 관련된 삼천궁녀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이자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향락과 사치로 나라를 망쳤다는 의자왕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이지요. 오히려 의자왕은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용맹하여 신라의 성들을 선제 공격할 정도였습니다. 다만 나당연합군에 의한 파상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는 수도 사비성이 함락된 후에도 끝까지 웅진으로 피신하여 저항하다 결국 중과부적으로 지게 되고 당나라에 끌려갑니다. 그런데 백제가 무너지기 전에 의자왕이 일본에 보내준 바둑알과 바둑알통, 바둑판 등이 있습니다. 현재 도다이사 쇼소인이라는 왕실 보물창고에 보관된 이 보물들은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바둑알은 상아로 깎아 염색한 것인데, 그 안에 풀을 물고 날아가는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바둑알통은 은판을 오려 붙인 것인데 여기엔 코끼리 그림이 있습니다. 심지어 바둑판은 저 멀리 인도양에 위치한 스리랑카산 나무로 만든 것인데, 여기에 상아를 활용하여 가로 세로 19줄을 새기고 옆면에는 여러 무늬를 넣었습니다.

지난 호에서 백제는 바다 네트워크를 잘 활용했다고 알려드렸는데, 그 범위가 동남아시아까지 뻗어나간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매우 놀랍습니다. 이렇게 일본 열도에 다양하면서도 뛰어난 선진 문물을 전해 준 백제. 그러나 백제는 660년 멸망하였으며 3년 뒤 일본과 백제 부흥군이 연합하여 나당연합군과 백강에서 일전을 벌이지만 수백 척이 불타며 참패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단, 그 화려한 유물들을 오늘날까지 남겨둔 채 말이지요.

■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배문고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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