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박명구 금호전기 회장 "CEO가 기술 알아야 회사 잘 운영"…영원한 엔지니어

입력 2015-06-09 21:34   수정 2015-06-10 09:07

CEO 오피스
예순 넘은 요즘에도 연구실서 쪽잠 자며 신기술 연구

20대 때 '미래 이끌 발명가' 명성
깜박임 없는 형광등 안정기 개발…1980년 스위스 발명대회서 대상
당시엔 이전에 없던 혁신기술

위기는 신기술로 돌파한다
외환위기 때 조명사업 위기…냉음극형광램프 국산화 '승부'
LED도 기술 착실히 쌓고 진출
기존 전기시설 교체 필요없는 LED 조명으로 미국 시장 공략나서



[ 안재광 기자 ] 경기 화성시 장기리 금호전기 연구소에는 박명구 금호전기 회장(61)의 개인 연구실이 있다. 연구소 한쪽 6.6㎡(약 2평) 규모의 조그마한 연구실엔 전구계측기 등 박 회장의 손때가 묻은 실험장비가 즐비하다. 너무 오래돼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구닥다리’도 적지 않다. 그래도 박 회장은 장비를 애지중지한다. 40여년 엔지니어로 살면서 정들었기 때문이다.

결재를 위해 잠시 집무실에 들르는 때를 제외하곤 개인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곳에서 쪽잠을 자며 연구에 몰두하는 일도 적지 않다. 지인들은 이런 박 회장에게 “쉬엄쉬엄 하라”며 걱정해준다. 그는 “몸에 익어 어쩔 수 없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곤 한다. 하지만 ‘회사를 잘 운영하려면 최고경영자(CEO)가 기술을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대학 때 창업해 ‘발명왕’ 등극

박 회장은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대학 때 청계천에서 콘덴서나 마이크로프로세서 같은 전자 부품을 구해와 조립하고 분해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외국 기술에 의존하는 부품을 국산화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졸업 전 친구 다섯 명과 창업을 했다.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비교적 일찍 찾은 것이다.

그러다 ‘사고’를 쳤다. 전자식 안정기란 것을 만들었는데 이 제품이 1980년 스위스에서 열린 ‘제9회 발명전’에서 전자부문 금상 및 전체 그랑프리 대상을 차지했다. 안정기는 형광등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깜박이거나 꺼지지 않게 하는 부품이다.

박 회장은 깜박임이 심한 자기식 안정기를 대체하는 전자식 안정기를 개발했다. 금호전기에서 연구비로 받은 1750만원이 종잣돈이었다. 전자식은 깜박임이 거의 없고 전기도 훨씬 덜 먹어 당시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미래를 이끌어갈 발명가’란 수식어가 20대 중반을 갓 넘긴 박 회장에게 붙었다. 그는 “개발비를 타내려고 시작했는데 실제로 개발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며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구나 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외환위기 때 입사해 구원투수 역할

박 회장이 금호전기에 합류한 것은 1998년이다. 연세대에서 전자공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고 개인 회사를 운영하鳴?부친의 부름을 받아 부사장으로 들어왔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였다. 매출이 급감하고 수주가 줄줄이 끊긴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1935년 청엽제작소란 이름으로 설립된 금호전기는 1976년 금호그룹에 인수됐다가 1982년 계열분리됐다.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동생 고 박동복 회장이 금호전기를 가지고 나왔다. 고 박동복 회장의 다섯째 아들이 박명구 회장이다.

박 회장은 “처음 회사에 왔을 때 하늘이 새까맣더라”고 회상했다. 매출은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지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외부에서는 ‘금호전기가 곧 망할 것 같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조명 이외에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다.

기회가 왔을 때 박 회장은 놓치지 않았다. 국내 한 대기업에서 ‘LCD TV에 들어가는 냉음극형광램프(CCFL)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2000년께 들어왔다. 이 대기업은 외국에서 사서 쓰던 CCFL을 국산화하길 원했다. CCFL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LCD TV의 뒷면에서 광원 역할을 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분야였지만 박 회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반대하는 임직원에게 “형광등은 우리가 최고다. TV에 들어가는 형광등인데 못 만들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설득했다. ‘형광등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었다. 조립라인 12개 가운데 1개 라인을 바로 CCFL로 전환했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 150억원은 은행을 설득해 빌렸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박 회장이 주도해 개발한 CCFL은 금호전기의 기존 조명사업보다 더 큰돈을 벌어줬다.

뒤늦게 뛰어든 LED…차별화로 돌파

금호전기의 ‘번개표’는 1960년대 최고의 백열전구 브랜드였다. 길어야 2주 안팎이었던 전구 수명을 6개월로 늘려 ‘만들면 팔리는’ 제품이었다. 국내 전구시장의 70%를 장악할 정도로 시장 지배력이 컸다. 1963년 국내 최초 한국산업규격(KS)에 ‘번개표 전구’가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 조명시장이 LED(발광다이오드)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번개표는 더 이상 시장의 강자가 아니었다. 소수의 사업자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전통조명과 달리 LED시장에선 수천 곳의 기업이 경쟁해야 했다. 전형적 ‘레드오션’인 LED 조명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박 회장은 주저했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기술 차별화였다. 중국 기업들과 가격으로 경쟁하면 뒤처질 게 뻔했다. LED가 시장의 대세가 된 상황에서 안 할 수도 없었다. ‘기술로 승부를 내는 수밖에 없다’고 박 회장은 생각했다.

비교적 늦은 2009년 LED사업에 진출했다. 기술을 착실히 쌓아 준비된 상태로 들어갔다. 덕분에 일본의 조명 전문 기업과 거래할 기회도 찾아왔다. 이 일본 기업은 가격을 좀 높게 쳐줄 테니 최고의 품질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벌써 5년여를 거래했다. CCFL 진출 때와 마찬가지로 장기 우량 고객사를 LED 쪽에서도 만들었다.

전등만 갈아끼우는 LED로 미국 공략

박 회장의 역점 사업은 미국 LED 조명시장 공략이다. 기존 형광등 자리에 LED등을 그대로 끼울 수 있는 제품을 들고 나갈 계획이다. LED를 쓰려면 등뿐 아니라 조명기구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금호전기의 LED등은 기존 기구물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안정기와 같은 조명기구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이런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박 회장은 미국에서 쓰이는 안정기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동부에서 제품을 들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3년 안에 매출을 두 배가량 늘려 2018년 1조원을 달성하겠다”며 “기술적 우위를 유지해 빛을 근간으로 한 전자 및 전기 분야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강조했다.

■ 박명구 회장 프로필

△1954년 광주 출생 △1971년 경복고 졸업 △1980년 제9회 스위스 발명전 전자부문 금상 및 그랑프리 수상 △1981년 연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1년 엘바산업 대표 △1982년 발명유공자상 수상 △1986년 연세대 전자공학박사 △1998년 금호전기 부사장 △2000년 금호전기 사장 △2005년 석탑산업훈장 수훈 △2006년 금호전기 부회장 △2011년 LED산업포럼 초대위원장 △2014년 금호전기 회장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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