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미텔슈탄트가 부러운가

입력 2015-06-11 20:34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이들은 19세기 남부 독일의 자영농 중심 사회를 배경으로 발흥했다. 이들의 계층적·직업적 자긍심은 다수의 중소 생산자 간 분업시스템의 발달로 이어졌다. 산업화 속에서도 가내 수공업자, 전문 수공인 등은 산업노동자로 전락하지 않고 창업을 일으켜 중산층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들은 산업혁명에 앞선 영국의 대량생산 위협에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극단적 집중’으로 맞섰다. 국내 수요로는 뻗어 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이들은 바로 밖으로 눈을 돌렸다. 군소국가들로 분열돼 있던 19세기 독일에서 관세동맹 등 경제적 통합이 시작되자 지역 간 경제개발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지역별로 독특한 클러스터를 구축해 다른 기업들과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숙련기능인력 양성, 기술 표준화 등의 문제는 공동으로 해결해 나갔다(SERI 경제포커스, ‘독일 미텔슈탄트 성공이 주는 교훈’ 중).’

또 하나의 5개년 계획

전 세계 히든 챔피언의 절반이 나온다는 독일 중소기업, 미텔슈탄트(Mittelstand)의 역사적 배경이다. 모든 나라가 미텔슈탄트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성과만 볼 뿐 정작 이런 배경은 도외시하는 것 같다. 높은 마진을 기꺼이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한다는 미텔슈탄트 자체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다. 그저 정부 지원이 어떻고 저떻고 떠드는 게 전부다. 오로지 그것 때문이라면 어느 나라든 미텔슈탄트를 뚝딱 만들어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중견기업 성장촉진 5개년 계획(2015~2019)’을 내놨다. 2019년까지 중견기업 5000개, 히든 챔피언 100개가 목표라고 한다. 거창하다. 이런 식의 5개년 계획을 몇 번만 더 하면 독일 미텔슈탄트를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성장촉진이라는 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기업정책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보호 위주 중소기업 정책도 그대로고, 규제 위주 대기업 정책도 그대로다. 정말 성장촉진으로 가겠다면 이것들부터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으로 가야 한다면 특히 그렇다.

“핵심은 정신과 태도”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건 중소기업 지원시책에 중견기업을 적당히 포함시켜주고, 대기업 규제에서는 중견기업을 빼준다는 게 골자다. 중견기업에 대한 소위 ‘지원절벽’을 해소해 주자는 취지라고 한다. 사실상 중소기업 범위만 확대한 거나 다름없다. 정부 시각은 여전히 제로섬이요, 이분법적 수준이다.

독일의 미텔슈탄트 흉내내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즉각 프랑스판 미텔슈탄트(ETI)를 만들었다. 사르코지는 정부 지원 펀드를 만들었고, 철暳若?ETI용 은행을 설립했다. 이걸 보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파리는 베를린이 미텔슈탄트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믿는 모양”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서독의 경제 부흥을 입안했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전 경제장관은 미텔슈탄트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미텔슈탄트는 (정의 육성 목표 등) 단순한 숫자의 의미가 아니다. 그건 특수한 정신과 구체적 태도의 표현이다.” 우리 정부가 만든 5개년 계획은 어느 쪽인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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