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가업 승계 막는 상속세, 투자도 위축시킨다

입력 2015-07-21 20:42  

완화해야 할 가업 승계 상속세 부담

유럽 기업 60%는 가족회사…경영지혜 축적에 효율적
한국,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100년 기업' 싹 시들어
고율의 상속세는 투자와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

"상속세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믿음에 기초한 것으로
경제적 비효율을 높여 고용과 성장에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어느 나라든 가족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게 사실이다. 가족기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유럽연합(EU)의 전문가 그룹이 200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 기업의 60% 이상이 가족기업이다. 미국도 S&P500 기업의 33%, 포천 500대 기업의 37%가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이다. 과거에는 가족기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가족 경영을 후진적 지배구조로 여기는 경향마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족기업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이들 기업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 연구는 가족기업의 효율성이나 기업 승계에 따른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가족기업의 경제적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하는 정책담당자나 정치인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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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기업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들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지가 2014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창업자나 그 가족이 최대주주이고 이들이 최고경영자를 선택할 수 있는 가족기업이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의 19%를 차지한다. 2008년 이후 이들 기업의 매출성장률은 7%로 비(非)가족기업의 6.2%를 웃돈다. 기업 경영은 교과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통해 배운다. 가족기업은 기업 경영을 통해 축적한 지식을 후계 세대에 전수할 수 있으며 비교적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상속세 마련 부담에 회사 매각

가족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가업 승계다. 특히 상속제도가 가업 승계를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러 가족에게 상속재산을 분배하도록 강제하면 다수의 상속자가 경영에 참여하게 돼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고 이들 간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업의 투자는 감소하게 된다. 실제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상속이 가족 간에 분산되는 국가의 기업 투자는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상속 개시 2년 전부터 투자가 크게 감소한다. 그리고 높은 상속세율은 가업 승계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상속 기업의 투자를 줄여 기업의 성장과 고용?부정적 영향을 준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 상속에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과했을 때 상속이 개시되기 2년 전부터 투자가 줄어들고 상속이 개시되는 해에는 45%나 감소했다. 이것은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의 현금자산을 줄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상속 기업의 현금자산 비중이 상속 개시 전에는 18.4%였는데 상속을 개시한 해에는 12.2%로 감소했다). 이로 인해 상속받은 기업이 재무적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가업 상속이 어려운 것은 한국의 가족기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가업 승계가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금 등이 부족해 가업 승계 시 부과되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납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07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족기업의 78.7%가 가업 승계가 이뤄지면 상속세 부담으로 경영을 전혀 할 수 없거나 심각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업 상속은 2008년 51건, 2010년 54건, 2012년 58건, 2013년 70건으로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상속세 부담에 가업 상속을 포기하고 있다.

상속과 富의 불평등에 대한 미신

정부는 뒤늦게 가족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7년부터 가업 승계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작년에 상속세 공제 대상 기업과 공제 한도를 확대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부(富)의 무상 이전을 대폭 확대해 기업을 경영하는 부자에게 수백억원의 세금을 면제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부의 무상 이전에 대해서는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속세는 부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6?정책분석센터에 따르면 부의 상속으로 부의 불평등이 초래된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데이터를 보면 상속이 부의 형성에 기여하는 바는 예상한 것보다 매우 낮았다. 상위 5%가 미국 전체 자산의 51%를 소유하고 있지만 이들 자산의 14%만이 상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속세가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불분명하지만 생산설비의 비효율적 사용을 초래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상속세를 회피하려는 과정에서 기업 자산의 비효율적 사용이 늘어 기업의 성장을 어렵게 하고 조세 기반이 취약해진다.

사실 부의 불평등을 문제 삼는 것은 이로 인해 생활 수준에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활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소비 수준이다.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지만 소비 수준이 낮다면 행복한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기업을 물려받았다고 소비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 자체가 소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을 잘 경영해 높은 배당소득을 얻으면 소비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기업을 처분해 소득이 발생하면 마찬가지로 소비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부의 처분으로 발생한 소득에 과세하거나 소비에 과세하면 생활 수준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

스웨덴은 상속세 폐지

2004년 상속세를 폐지한 스웨덴이 이를 잘 말해준다. 스웨덴은 평등적 사회 정책으로 유명한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2004년 부자들이 상속세를 내지 않고 후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도록 상속세를 폐지했다. 소득세에 대한 과세를 통해 평등주의적 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2013년 스웨덴의 소득세는 국내총생산(GDP)의 19.9%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자산에 대한 과세는 4.3%에 불과했다.

상속세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믿음에 기초한 것으로 오히려 경제적 비효율을 높여 고용과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바가 훨씬 크다. 그래서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저소득층에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한국 경제도 자산에 대한 과세를 줄이고 이를 점차 소득에 대한 과세나 소비에 대한 과세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것은 충분한 사전준비와 검토를 거쳐 시행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라도 잘못된 믿음에 기초한 가업 상속에 대한 과세는 대폭 줄여 나가야 한다. 그것이 기업 자산의 효율성을 높여 고용과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고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미래 세대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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