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설산(雪山)…킬리만자로를 오르다

입력 2015-08-03 07:10   수정 2015-08-04 09:48

깊은 열대우림과 광대한 황무지를 지나 '폴레폴레' 걷다보면
만년설 뒤덮인 해발 5895m '빙하의 땅'…마침내 한계 위에 올라서다

유영만 교수의 '킬리만자로' 4행시

킬리(Kill理) - 기존 이치(理致)를 다시 의문시하고 반추하며
만(萬) - 만 가지 지혜로 이르는 방법을 찾아보며
자(自) - 자기(自己)의 존재 이유(理由)와 자유(自由)로운 삶을 추구하다 발견한
로(路) - 노선(路線), 그 길이 바로 나답게 살아가는 삶




탄자니아 북부의 아프리카 평원에 우뚝 솟은 킬리만자로. 만년설로 뒤덮인 정상은 해발 5895m로 아프리카 대륙의 지붕이라고 불린다. 일상에서 벗어나야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는 법. 또 하나의 역사를 쓰고 싶어 일행과 함께 킬리만자로로 떠났다. 고산증과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던 무모한 여정.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멋진 도전이 이뤄졌다.

아프리카 여행의 백미'마이그레이션'

킬리만자로 등반 이후 시간이 있다면 마이그레이션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동물 대이동’을 뜻하는 마이그레이션은 아프리카 여행에서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다. 수백만 마리의 누는 매년 7월에서 9월 사이에 물과 목초를 찾아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지대를 흐르는 마라강을 건넌다. 종착지는 마사이마라의 초원. 도강을 위해서는 배고픈 악어떼를 뚫어야 한다. 생과 사가 갈리는 순간이다. 무리에 떠밀리고 짓밟혀서 익사하는 누가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대여정. 엄청난 수의 누떼가 한꺼번에 강을 건너는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객이 찾아온다. 하지만 누가 언제 건널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만큼 마사이마라에서 최소 며칠은 기다리며 지내야 한다.

7월의 킬리만자로는 추웠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 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일부다. 1938년에 발표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떠올리고,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중얼거리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홍콩을 거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드디어 목적지인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했다. 스와힐리어로 ‘번쩍이는 산’을 뜻하는 킬리만자로는 세 개의 분화구로 구성돼 있다. 해발 5895m?키보, 5149m의 마웬지, 4006m의 쉬라. 그 이름들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작렬하는 7월의 아프리카 여름은 예상보다 더 뜨거웠다. 인구 50만명의 소도시, 탄자니아의 아루샤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해발 1980m의 마랑구 게이트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첫날 목적지인 만다라 산장으로 향하는 산행은 울창한 열대우림을 가로지르는 짧고 편한 길이었다.

둘째날은 3720m의 호롬보 산장까지 12㎞를 가는 일정이었다. 산행은 예측불허의 변수들이 만들어가는 변주곡이다. 특히 변화무쌍한 날씨는 더욱 예측을 어렵게 한다. 해발 3720m 호롬보 산장으로 가는 길은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평탄한 길이었다. 하지만 고도가 3000m를 넘으면서 고산증 초기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가 오고 날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긴 시간을 걸어야 했다. 사투의 여정. 건기에도 비가 올 수 있다는 것, 7월의 아프리카도 추울 수 있다는 것은 경험하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이다. 삶은 각본대로 풀리지 않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위기 상황에서 한계에 도전하다

우리 일행은 호롬보 산장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고산 적응을 위해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4000m 고지의 지브라 록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서 좀 쉬고 다음날을 맞이했다. 정상 등반 이전의 마지막 산장인 해발 4703m의 키보 산장까지 가는 길이다. 저 멀리서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마주하며 걷고 또 걸었다.

가이드가 항상 우리 일행에게 건네는 말은 물 많이 마시라는 것과 ‘폴레폴레’였다. 천천히 걸으라는 뜻이다. 고지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희박해지고 고산증세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결과적으로 ‘폴레폴레’는 ‘빨리빨리’보다 더 빨랐다. 평균 6시간 걸린다는 산행이었지만 우리는 어둠이 깔리는 오후 6시 즈음에 도착했다. 이른 저녁을 대충 먹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몸은 천근만근, 온몸이 쑤시고 머리는 여전히 고산증세에 시달렸다. 의문이다. 과연 이런 몸으로 계속 도전할 수 있을까.

오후 10시30분, 눈이 절로 떠졌다. 정상 등반에 도전할 사람과 산장에서 쉴 사람을 나누는 회의가 열렸다. 나의 몸 상태를 본 일행이 등정 명단에서 뺐다. 하지만 나는 ‘간다’고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침묵. 지금 상태로 가는 것은 무모하다는 판단이었을까. 두려움과 설렘의 교차, 희망과 용기 속에서 파고드는 긴장감에 나를 내던졌다. 결단의 순간일수록 단호해야 한다.

오후 11시를 조금 넘어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걸었다. 길은 화산재와 모래로 뒤덮인 가파른 언덕길의 연속. 한밤의 공기는 칼바람으로 다가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얼어붙게 했다. 체력은 바닥 나서 열 발자국 걷다가 한 걸음 쉬었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할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힘겨운 사투였다.

힘든 고비 뒤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해발 5000m가 넘으면 산소량이 평지의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체온은 떨어지고 숨이 차고 머리는 몽롱하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겠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반복됐다. 그래서 몇몇 일행은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하지만 어둠을 뚫고 지금까지 걸어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것도 위험천만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리는 사력을 다해 계속 가기로 결정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먼동이 터오자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이 꽤나 험난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만약 처음부터 정상이 보였다면 이런 도전을 감행했을까.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희망을 움켜쥐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길을 떠났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세계, 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절망이 희망의 싹을 틔우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출발 후 약 9시간의 사투 끝에 해발 5865m의 킬리만자로 길맨 포인트에 올랐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힘든 순간 뒤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길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도전보다 힘들었다.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조금만 걸으면 힘이 부족해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가파른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했지만 함께한 동료들과 가이드 덕분에 한계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도전이자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정상 등반 인증 일련번호를 받고 보니 10만4446번이었다.


도전이 다른 나를 만나게 하다

몸의 한계를 거부하는 다짐과 각오는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와일드(Wild)’를 보면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음도 결국 두 손을 들게 된다. 몸의 한계가 마음의 한계다. 절체절명의 상황은 대부분 몸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찾아온다. 마음으로 몸을 통제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들지 않으면 결국 포기할 수밖에.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우주다. 우주가 망가지면 그 속에 살아가는 마음도 같이 망가진다.

이번 킬리만자로 등반은 함께여서 가능했다. 등반(登攀)은 언제나 동반(同伴)이다. 혼자 정상에 오르는 외로운 여정이 아니다. 무거운 짐을 옮겨주는 포터, 음식을 마련해주는 요리사, 함께 길을 가며 안내하는 가이드와 셰르파 덕분에 힘든 산행도 즐겁게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 무엇보다 함께 킬리만자로로 떠난 동료들 덕분에 어려운 정상 등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희망의 연대가 작은 성취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도전은 자기 변신의 과정이다. 시작과 끝이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도전을 시작할 때의 나와 도전을 마칠 때의 나는 질적으로 다르다. 도전은 시작할 때의 나와 돌아올 때의 내가 손잡고 돌아오는 동행이다. 그래서 떠남은 언제나 만남이다.

자신의 한계는 직접 한계에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다. 우여곡절과 절치부심 끝에 체험한 킬리만자로 등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어느 산악인이 말했듯 ‘등반의 완성은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살아서 내려오는 데’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현재를 떠난 사람만이 낯선 마주침을 즐길 수 있으며, 지금의 삶이 窄떨?소중하고 감사한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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