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사면초가"…S&P "평균 신용등급, 투기 직전수준 추락"

입력 2015-09-10 18:00   수정 2015-09-11 05:05

"매출 감소 심각한 위기…좀비기업 구조조정 시급"
자산총액 상위 150개사…순차입금 4년새 43%↑



[ 이태호/하헌형/김태호 기자 ] 한국 기업들의 평균 신용등급이 투기등급 직전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다. 중국 기업은 성장하고 일본도 빠르게 회복하는데 한국만 매출과 이익이 모두 줄어들면서다. 경쟁력이 바닥났는데도 은행 등 금융회사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0일 국제금융센터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연 ‘2015 S&P 초청 세미나’에 참석, 2009년 ‘BBB+’(투자등급 10단계 중 8번째)였던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 평균값(credit quality)이 지난달 말 ‘BBB-’(10번째)에 가까운 수준까지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신용등급이 있는 38개 대기업을 평가한 결과다. 5년 새 투기등급(BB+ 이하) 문턱까지 두 단계나 내려간 것이다. 권재민 S&P 아태지역 기업부문 신용평가 총괄전무는 “주요 기업의 매출이 줄어드는 현상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그동안 우려하던 중국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생산성 향상을 ㎸?노동생산성 개선은 답보상태여서 한국 기업들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S&P에 따르면 국내 자산총액 상위 150개 기업의 매출은 지난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영업이익률(중간값)은 2010년 7.4%에서 지난해 3.9%로 떨어졌다. 일본과 중국 기업들이 매출은 계속 늘고 6%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과 비교해 경쟁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평가다.

한국 기업들의 빚도 빠르게 늘고 있다. 자산총액 상위 150개 기업(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제외) 순차입금은 작년 말 현재 356조원으로 불어났다. 2010년(249조원) 대비 43%나 급증한 규모다. 영업실적 악화로 부족해진 현금을 계속 빚으로 채운 결과다. 순차입금은 전체 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을 뺀 수치로 실질적인 재무 부담을 나타낸다.

S&P는 국내 기업들의 체력 약화를 반영해 현재 평가 대상 기업의 3분의 1에 ‘부정적’ 등급전망(outlook)을 부여하고 있다. 공기업을 제외한 23개 민간기업 중 KT(A-, 부정적), SK이노베이션(BBB, 부정적), 에쓰오일(BBB, 부정적), GS칼텍스(BBB-, 부정적) 등 7개사가 중기적으로 강등 위기를 맞고 있다. ‘긍정적(positive)’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3곳)의 두 배를 웃돈다.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글로벌시장에서 고전하는 것도 한국 기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S&P는 전했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중국과 고급 이미지로 무장한 선진국 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nut cracking)’ 신세에 처해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인 알릭스파트너스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대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고위험군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기연 알릭스파트너스 부사장은 “2012년과 2013년만 해도 위기가 건설과 해운 등 일부 업종에서만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전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기업들이 스스로 수익성 개선과 사업재편에 나서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태호/하헌형/김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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