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백수→늦깎이 대학생→현대차 입사, 그의 이야기

입력 2015-09-22 09:18   수정 2015-09-24 12:22

☞ '수제 슈퍼카' 만들어 현대차 입사한 전문대男

[ 김봉구 기자 ] 경기도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모델러로 일하는 김웅씨(사진).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그동안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는 4년제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설계사무소에 들어갔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빨리 취업하는 쪽을 택했다. 건축에서도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으나 설계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1년 반 뒤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경기를 많이 타는 업계 상황이 그를 20대 중반에 실직자로 만들었다.

스스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달은 건 그때였다.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자동차 특성화대(아주자동차대 자동차디자인전공)에 입학했다. 좋아하는 차, 하고 싶었던 디자인을 모두 할 수 있다는 데 마음이 끌렸다. 김씨는 대학생활 내내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슈퍼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어려운 시기의 고민과 선택, 이후의 노력은 현대자동차 입사란 결과로 보상받았다. 지난 17일 저녁 퇴근길 짬을 낸 그를 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4년제대를 나와 직장 다니다가 전문대에 입학했다고.

“한서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졸업을 한 건 아니다. 집안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빨리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군 제대 후 2학년 때 자퇴하고 관련 자격증을 따서 설계사무소에 들어갔다. 거기서 1년 반 정도 직장생활 했다.”

- 재입학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주로 일본에서 하청을 받는 회사였는데, 당시 현지에서 큰 지진이 나면서 타격을 입었다. 건설이 경기를 타는 편인데 그때 권고사직 당했다. 졸지에 백수가 된 거다. (웃음) 답답한 마음에 밤이면 드라이브를 했다. 드라이브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차가 좋은데 차와 관련된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이왕이면 체계적으로 배워보자 싶었는데 자동차 특성화대가 있다는 걸 알고 진학을 결심했다.”

-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고민이 많았다. 우리 나이로 27살 때였다. 입학한다 해도 28살에 대학생이 되는 거니까. 대학 졸업장만 따는 건 의미 없는 나이였다. 입학 전 학과 (이광원·성락훈) 교수님들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믿고 가도 되겠다 싶었다. 일단 교수님들이 무척 열정적이었다. 학교에 가면 힘껏 가르치고 도와주실 것이란 확신을 받았다. 졸업 후 진로도 전망이 있었고.”

- ‘자동차대’로 특성화돼 있다. 일반 대학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일단 자동차 관련 전공들밖에 없다는 것. 한 주 내내 차 관련 수업들만 받는 거다. 아무래도 특성화가 돼 있다 보니 일반교양 수업은 최소한만 한다. 한마디로 전공 분야에 쳄曠?수 있다. 학생들끼리도 적성도 관심사도 비슷하니 학과가 달라도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다. 학과끼리 뭉치면 차 한 대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 아닐까. (웃음)”


- 슈퍼카 프로젝트가 그런 콘셉트이지 않았나.

“맞다. 7개 학과 학생들이 자기 전공을 살려 수제 스포츠카 한 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나는 자동차 앞쪽 디자인을 맡았다. 학생들이 모여서 머리를 짜냈다. 콘셉트를 잡고 스케치한 뒤 어떤 디자인이 좋은지 투표해 실제 차 크기의 모델을 구현했다. 에폭시(플라스틱의 일종)와 유리섬유 재질로 형상을 떠내 최종적으로 차를 완성했다. 말 그대로 수제로 차를 만드는 건데, 실제 운행이나 경주도 가능하도록 하려다 보니 몇 달씩 걸렸다.”

- 올해 전문대 엑스포에서도 전시됐다. 수제차는 어떻게 다른 건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일반 차와 달리 형상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본 떠서 가공하기 쉬운 재질로 만드니까. 뒤뜰에서 차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 ‘백야드 빌더(Backyard Builder)’란 용어가 있다. 차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수제로 차를 만들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독특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게 특히 장점이다.”

- 그런 경험이 현대차 입사에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솔직히 취업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잘난 척 하는 것 같긴 한데. (웃음) 채용 절차 대부분이 학교에서 배우고 겪은 것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직접 차를 만들어봤지 않나. 자동차 대학이니까 가능했지, 다른 대학에선 그런 경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면접관들도 그 부분을 중요하게 본 것 같다.”

- 특성화가 관건이었다는 거구나.

“면접도 따로 준비 안했다. 대학 2년 동안 차를 만들면서 친구들, 교수님들과 늘 고민하고 얘기했던 내용이니까. 다른 지원자들은 막막한데 난 학교에서 이미 해봐서 막막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컸다. 입사 후 적응 속도에서도 동기들과 차이가 났다. 작업 프로세스(과정)를 이미 알고 있으니 선배들이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더라. 전문화·특성화의 메리트 아닐까.”

- 슈퍼카 프로젝트가 취업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대학시절 한 주에 3~4일은 철야작업 했다. 집에도 안 들어가고 학교에 침대 붙여놓고 자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각자 맡은 파트가 있어 일정을 맞춰야 하니까. 사실 현업에선 한 주 만에 하는 과정인데, 대학생들이 일일이 손으로 하니 몇 달씩 걸린 거다. (웃음) 그래도 좋았다. 학교 지원도 많이 도움이 됐다. 방학 때 학교에 나와서 프로젝트 하는 학생들에겐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 혜택이 있었다. 닛산·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업체 현지 견학도 갔었고.”


- 어떤 차를 만들고 싶은지.

“모델러의 역할은 디자이너의 머릿속 그림을 잘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유행에서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 항상 신선한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가장 기본은 차를 좋아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업(業)이 되면 좋아하는 감정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열정이 식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자동차 전시회뿐 아니라 각종 분야의 전시회를 갈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우리나라가 차 생산량은 세계 5위권이지만 디자인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디자인적으로 앞서가는 페라리·벤츠·BMW 등은 오랜 역사와 확고한 커리큘럼, 프로세스가 있다. 다만 우리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많다. 확실히 한국인들의 손기술이 뛰어난 편이다. 이런 자원이 있기 때문에 시스템이 정립되면 여러 디자인을 빠르고 많이 시도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차의 디자인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는데.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이 있다. 개발자 입장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튀는 걸 싫어한다는 거다. 색상만 봐도 무채색 차만 타지 않나.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어도 팔리질 않으니 회사도 생산을 못한다. 국내에서 통하는 해외 브랜드 역시 튀는 것보다는 고급 취향이 먹힌다. 유럽 쪽 독특한 감성이 있는 시트로엥 같은 차들은 정착이 쉽지 않다.”

- 문화 자체가 바뀔 필요도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차에 대한 감수성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차 자체를 사랑하는 문화랄까. 뒤뜰에서 차를 직접 수리하거나 정비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미국에 출장 갔다가 놀란 적 있다. 회사의 오래된 차들을 끌고 와서 자체적으로 페스티벌을 열더라. 새 차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차를 아끼고 애정을 쏟는 전통이 일상에 녹아있다고 느낀 대목이다.”

- 전문대 후배들이나 진학을 생각하는 수험생에게 한마디.

“일반 종합대와 달리 특수한 전문 기능을 익할 수 있는 건 분명한 강점이다. 당장 현장에 투입돼도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입사하니 어디서 이런 걸 배웠느냐고 묻는 선배들이 많았다. 그런 장점 때문인지 선배 분의 자녀 중에 아주자동차대 후배로 입학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웃음) 특히 난 학교를 늦게 갔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겐 전문대 입학을 권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게 확실하고 빨리 이루고 싶다면 전문대가 좋은 ‘경력 기폭제’가 될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맡은 일을 잘하는 게 우선이다. 모델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력도 감각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디자이너의 생각을 잘 표현해내는 것이니까. 많이 교류하고 소통 잘하는 모델러로 인정받고 싶다. 열심히 실력을 쌓아 나중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모델러가 되는 게 꿈이다.”


◆ 나에게 전문대란…

새롭게 시작할 때 꿈꿀 수 있는 발판이 돼줬던 곳. 나를 품었다가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 곳. 말하자면 ‘엄마 같은 존재’다. 조금 과한가? (웃음) 하지만 나에겐 정말 의미 깊고 고마운 곳이다. 졸업 후에도 1년에 한 번씩 후배들 먹을거리 싸들고 학교에 찾아간다. 돌이켜보면 학생 때 취업 준비나 현업이 어떤지 궁금해도 물어볼 데가 마땅찮았다. 그런 기분을 알기 때문에 후배들이 자연스레 물어볼 수 있는 선배가 되고자 한다.


인천=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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