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어두움의 역사는 시간의 치유가 필요하다

입력 2015-10-25 18:13  

기록엔 주관적 가치판단 동반
'완벽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아
조급한 '시간과의 경쟁' 피해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좌편향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國定化)로 바로잡겠다’는 것이 정부 의도며, 교육부가 이를 공식 발표했다. 역사 교과서에 특정 목적을 위한 악의적인 왜곡 또는 당파적 이해를 위해 특정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비난하는 내용 등이 담겨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다. 그런데 역사학은 역사학자들의 ‘이해’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는 학문이다.

역사학자의 고유한 과제는 과거에 발생한 사실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들의 내용이 역사학자의 ‘지적 서판(書板)’에 저절로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는 과거 자료를 수집하는 첫 단계에서도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선택한다. 즉 역사학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한다. 개별적으로 고유한 역사 자료 해석에는 수학과 논리학, 경제학, 자연과학 등 역사학 이외의 다른 분야 학문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한국 경제의 성장 역사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학문들이 제공하는 지식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이는 논리적 검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만일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학자들의 자의적 독단 때문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 제공하는 지식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쟁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또 하나 문제는 역사학 이외 분야가 제공하는 지식들만으로는 과거를 완벽하게 해석할 수 없어, 나머지 부분은 역사학자들의 ‘이해(understanding)’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역사학이 ‘개념(conception)’을 중시하는 학문들과 다른 점이다. 역사학자들의 이해가 전부 동일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요컨대 역사학은 탈가치적(脫價値的) 학문이 될 수 없다. 역사학자에 따라 다양한 이해가 가능한 학문이다. 지금 역사 교과서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역사학의 그런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다.

역사학에 대한 이런 접근은 현존하거나 앞으로 나올 역사 교과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에서 집필자들이 다른 분야에서 제공하는 지식을 바르게 적용했는지, 의도적으로 왜곡하지는 않았는지를 점검해 수정할 수 있다. 역사학자들의 고유한 이해의 영역에 대해서도 검토할 수는 있으나 이해를 일치시킬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이해’에서 정부도 독점권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이해’ 영역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학문들이 제공하는 지식만 철저하게 검증해도 교과서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 논란과 관련해선 고(故) 민두기 전 서울대 교수의 ‘시간과의 경쟁’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시간과 조급한 경쟁을 벌이면 결국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1958년 대약진운동이 시작된 이래 2000만명이 굶어 죽는 중에도 조급하게 역사의 단축을 위해 돌진했고, 결국 문화대혁명의 참극을 빚었다. 반면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노선을 지향하면서 장기적 안목으로 느긋하게 목표를 설정해 경제 대국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 대열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성급함에 중국을 침략해 수많은 일본인과 중국인을 남태평양과 중국 대륙에 매장한 채 결국 핵폭탄을 맞았다.

한국의 현대사는 눈부신 경제성장이라는 명(明)과 반(反)독재 투쟁의 후유증인 암(暗)이 공존하는 역사다. 어두움의 역사는 시간의 치유가 필요하다. 역사 교과서를 통한 시간과의 경쟁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단일화하는 것보다는 다른 교과서들과 경쟁하면서, 다소 지루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차이를 좁혀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한 마음에 벌이는 시간과의 경쟁으로 빚어질 수 있는 후유증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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