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착청이'

입력 2015-11-12 18:54  

올바른 정책 찾으려는 정중한 토론·소통 문화
함께 도출한 결론에는 승복하는 자세도 중요

최동규 < 특허청장 dgchoi15@korea.kr >



필자는 스스로 고집이 별로 세지 않고, 화도 좀처럼 내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국장 시절 별명이 ‘착국이(착한 국장)’였던 것을 보면 동료들도 어느 정도는 내가 착한 성품이라고 평가해준 것 같다. 그런데 특허청장이 되고 나선 아무도 ‘착청이(착한 청장)’란 말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주장이 강하고, 어떤 순간은 도그마에 빠진 옹고집이라는 시각마저 접해 고민스럽다.

내가 변한 것일까. 고민 끝에 기회가 돼 정신과 전문의로 성격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온 지인에게 공짜 상담을 받아보니 뜻밖의 진단이 내려졌다. 나의 깊은 내면에 ‘억울함’이 있고, 나이가 드니 ‘학습돼온 착함’이 내면의 억울함을 마냥 누를 수 없게 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공격적인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 성격의 바탕에 억울함이 있다니 정말 억울해서, 근원이 어디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세 살 즈음에 겪었던 일이다. 당시 엄마 손을 잡고 가던 목욕탕엔 두 짝의 미닫이문이 있었는데, 어린 필자는 사람들이 늘 화살표가 그려진 문만 열고 들어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화살표가 그려져 있지 않은 옆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갖은 비난뿐. 날 데려갔던 이모는 똑똑한 줄 알았더니 헛똑똑이라 했고, 어머니는 부끄러웠던지 “얘가 갑자기 이상해졌다”고 야단까지 쳤다. 정말 억울했지만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터라 별다른 항변도 못했다. 그때의 억울함이 아직까지 필자의 내면에 남았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만 억울해도 이유를 설명하면서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 같다.

이런 성격이 특허청장 직무를 잘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필자가 억울해 했던 만큼, 함께 일하는 동료에겐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필자가 특허청 동료에게 제일 듣고 싶은 말은 “그거 아닙니다”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동료들이 이제 서서히 “아닙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정책을 찾기 위해 소위 계급장까지 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각자의 직급과 경험, 이에 맞는 자세를 잊지 않으면서 설명하고 토론할 수 있는 소통의 문화, 그리고 함께 도출한 결론에 승복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동규 < 특허청장 dgchoi15@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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