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맨 위, CEO는 맨 아래"…겸손한 자세로 부드러운 소통…구조조정에도 진심이 통했다

입력 2015-11-13 07:00  

홈디포 되살려낸 프랭크 블레이크의 '섬김 리더십'

기업으로 간 엘리트 법조인
조지 부시 법무보좌관 출신, GE 거쳐 홈디포 부사장으로

"우수직원이 최고의 자산"
성과급·자사주 파격인센티브 주며 직원 역량 키워 고객 만족 유도

경영위기 딛고 화려한 부활
저성과 부서·직원은 과감히 정리…순익 두배이상 늘고 주가 급등



[ 박해영 기자 ]
“홈디포는 역피라미드 조직입니다. 고객이 제일 위에 있고, 매장 직원과 중간 관리자가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최고경영자(CEO)가 있습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007년 1월 미국 전역의 약 2000개에 이르는 홈디포 매장. 영업을 시작하기 전 모든 직원이 이제 막 취임한 프랭크 블레이크 CEO가 출연한 사내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블레이크가 취임사를 대신해 직원들에게 당부한 것은 홈디포의 공동창업자인 버니 마커스와 아서 블랭크가 쓴 자서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다(Built from scratch)》에 나오는 문구였다. 블레이크는 “매일 고객을 만나는 직원 여러분이 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라며 “창업정신으로 되돌아가 홈디포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독려했다.

가정용 건자재와 인테리어 장비 부문의 세계 최대 유통체인인 홈디포는 블레이크가 CEO로 취임하던 2007년 회사 안팎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전임 CEO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유능한 인재가 줄줄이 떠났고, 2000년대 초반 주택 붐을 거치면서 공격적으로 펼쳤던 사업은 곳곳에서 적자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홈디포는 고객과 직원을 섬기는 블레이크의 ‘겸손한 리더십’이 빛을 발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2억달러로 바닥을 찍은 순이익은 이후 급증해 지난해 54억달러까지 늘었다.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2007년 이후 작년까지 뉴욕 증시에서 홈디포 주가는 145% 뛰었다. 이 기간 S&P500지수 상승률 60%를 크게 웃돌았다. 덕분에 경쟁사인 로우스(Lowe’s)와 시가총액 차이를 배 이상으로 벌리고 업계 1위 자리를 굳혔다.

“CEO는 조직 맨 아래에 있다”

블레이크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법조인 출신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공직에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매사추세츠 주의회 입법보좌관, 워싱턴DC 법원 재판연구원(로클럭), 환경보호국(EPA) 법률 자문위원 등을 지낸 뒤 조지 부시 부통령의 법무보좌관을 맡았다.

그는 1991년 제너럴일렉트릭(GE)으로 옮기면서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했다. 사업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인수합병과 전략기획 등을 담당한 뒤 터빈·발전기를 생산하는 파워시스템스 사업개발부 총괄에 올랐다. 이때 그는 파워시스템스 대표이던 로버트 나델리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잭 웰치 CEO의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던 나델리는 경쟁에서 탈락하자 GE를 떠나 2000년 12월 홈디포 CEO로 영입됐다. 나델리는 역시 GE를 나와 에너지부 차관으로 일하던 블레이크를 2002년 홈디포 부사장으로 스카우트했다.

홈디포 수장에 오른 나델리는 독재자처럼 임직원을 밀어붙였다. 그는 각 사업부 대표에게 분산돼 있던 의사결정권을 CEO가 단독으로 행사하도록 조직을 바꿨다. 서비스 수준을 정량적으로 평가해 품질을 높이는 6시그마 전략을 채택해 비용절감을 극대화했다. 주택 붐을 타고 홈디포 매출은 2000년 457억달러에서 2005년 815억달러로 78%, 이 기간 순익은 26억달러에서 58억달러로 2배 이상 각각 늘었다. 외형상 성장세는 뚜렷했지만 주식 시장에서 평가는 냉정했다. 홈디포가 제자리 걸음한 사이 경쟁사 로우스 주가는 5년 사이 2배로 뛰었다. 나델리의 경영 방식으로는 홈디포의 장기 성장이 어렵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간파한 것이다. 나델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참 직원을 대거 해고하고 신입으로 빈자리를 메웠다. 홈디포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자신을 안내하는 직원이 ‘초짜’라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고객 서비스의 품질이 좋을 리 없었다.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나델리의 경영 스타일에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는 추락했다. 결국 홈디포 이사회는 2007년 1월 나델리를 밀어내고 블레이크 부사장을 새 CEO에 앉혔다.

차별화된 고객 체험에 집중해 홈디포 부활시켜

유통업에 문외한이던 블레이크는 홈디포 부사장으로 5년간 일하면서 기본부터 착실히 익혔다. 1978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홈디포를 공동 창업한 마커스는 그의 멘토였다. 블레이크는 마커스와 함께 수시로 홈디포 매장을 둘러보며 조언을 구했다.

2007년 CEO 취임과 동시에 그는 마커스에게 전수받은 경영 노하우를 실행에 옮겼다. 블레이크는 홈디포의 5가지 최우선 과제를 직원들에게 제시했다. 그는 효율적인 고객 서비스, 최고의 제품, 공급망 관리 개선, 매장 현대화, 그리고 고객의 ‘경험’을 강조했다. 블레이크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온라인으로 제품을 미리 살펴본 뒤 홈디포 매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설명을 들어가며 물건을 사는 고객이 많다”며 “이들에게 홈디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별화된 만족감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매장 직원에 대한 투자가 절실했다. 고객의 구매 만족감을 높이려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직원의 조언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풍부한 상품지식으로 무장한 직원은 고객들이 금방 알아본다는 점을 블레이크는 강조했다. 그는 취임하던 해부터 우수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확대하고 자사주를 포상으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블레이크는 취임 후 매주 매장을 찾은 약 10만명의 고객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지속적으로 시행했다. 원하는 물건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직원들의 응대 태도는 어떤지 등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며 보완점을 찾았다.

블레이크는 구조조정에는 단호했다. 확장 일변도였던 매장 정책을 수정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점포는 과감히 폐쇄했다. 전임 CEO가 무리하게 추진했던 건설회사와 정부를 타깃으로 한 중장비 사업도 접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수요?급감하자 1만여명의 직원을 줄이기도 했다. 마빈 엘리슨 부사장은 “경기 불황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직원들의 반발은 의외로 크지 않았다”며 “CEO의 결정이 회사를 위한 진심에서 나왔다는 것을 대부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블레이크는 회사에서도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다. 사무실에선 넥타이를 거의 매지 않았고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매장에 입점한 던킨도너츠의 커피를 즐겨 마셨다.

허쉬 쉐프린 UC샌타바버라 교수는 “CEO의 태도는 조직원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며 “블레이크처럼 낮은 자세로 직원들에게 부드럽게 접근하는 소통 방식을 사용하면 닥쳐올 위험을 미리 간파할 수 있고 그만큼 더 신속하게 대응책을 세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블레이크는 지난해 11월 크레이그 미니어 리테일 대표에게 CEO를 넘겨주고 회장에 올랐다. 그는 이어 지난 9일 미국 최대 백화점인 메이시스 이사회에 합류하며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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