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너는 자유다

입력 2015-11-16 07:10   수정 2015-11-16 09:35

온천·천등·카페·야경…대만 자유여행

베이터우 온천수는 대만의 열기처럼 뜨거워

타이베이서 36㎞ 떨어진 스펀
아기자기한 시골 간이역에선
종이등에 소원 적어 날려보내

홍등으로 수놓은 주펀의 밤…만화 속 치히로가 뛰쳐나올 듯

영화·드라마의 단골 무대 주펀
비좁은 골목엔 카페·식당 가득
이색 음식의 향연에 침이 고여



[ 김명상 기자 ]
“전부 알아서 하라고요?” 타이완관광청이 제안한 대만 여행의 전제 조건은 오직 하나. ‘자유여행’으로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꽉 찬 일정도, 곁에서 살뜰히 챙겨주는 가이드도 없다니…. 가고 싶은 여행지부터 숙소, 교통편, 식사 등을 모두 스스로 정하란다. 유일한 제약이라면 항공과 숙박을 제외한 하루 예산이 7만5000원뿐이라는 것. 솔깃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자유롭다는 것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 여행 중 일어나는 일은 내 선택의 결과물이지만 때로는 운도 필요하다. 사소한 것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여행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인생과도 닮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하라’는 첫 대만여행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됐다.


베이터우 온천지역-타이완에서 뜨거운 열기를

정해진 일정이 없는 출장. 현지 도착 후 조금은 막막했다. 고민 끝에 타이베이의 첫 여행지로 고른 곳은 베이터우(北投) 온천지역.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한 대만에는 유명한 온천이 많다. 그중에서도 수도 타이베이 근교의 베이터우는 베이터우석(石) 때문에 유명해졌다. 많고 많은 광석 중 유일하게 대만 지명이 붙은 광석이다. 일본인 학자가 처음 발견했고, 미량의 방사성 라듐이 함유돼 있어 각종 질병 치료에 효과가 높다고 한다.

자유여행 초보자라도 찾아가기 쉽다. 신(新)베이터우역은 타이베이 메인 역에서 14정거장 떨어져 있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타이베이 메인 역은 타이베이를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대부분 들르는 곳이다. 대만 지하철인 MRT의 빨간색 단수이 라인과 파란색 반난 라인이 교차하는 환승역이자 고속버스 터미널, 맛집 등이 모여 있다. 스펀(十分)이나 주펀 등의 타이베이 근교 여행지로 갈 때도 이곳을 거치게 된다.

역에 도착한 뒤 숙박할 호텔에 짐을 맡겨 놓고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신베이터우역 바로 앞의 공원에는 ‘타이베이 시립도서관 베이터우 분관’이 있다. 2012년 미국 문화정보 사이트인 플레이버와이어닷컴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25선’ 중 한 곳으로 뽑은 곳이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지열곡(地熱谷)이 나타난다. 일년 내내 자욱한 증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물색이 옥처럼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이곳의 온천수는 청황, 백황 등으로 나뉜다. 연한 녹색을 띠는 청황 온천수는 피부병, 관절통 및 근육통 완화, 신진대사 촉진에 효과가 있다. 뿌연 색깔 때문에 우유탕으로도 불리는 백황 온천수는 관절염과 신경통에 도움을 준다. 지열곡은 온천수 온도가 80도 이상이라서 근처에만 있어도 열기가 느껴진다. 여름이면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한증막을 체험하게 될 것 같다.


온천호텔-온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

베이터우에서는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장소에서 목욕을 즐길 수도 있다. 검은 벽돌기와로 지은 일본식 건물인 소수선원(少帥禪園)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가제 특공대의 숙소로 쓰였다. 1936년 12월12일 시안에서 장제스를 구금하고 제2차 국공 합작을 요구한 장쉐량이 연금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장쉐량과 부인을 기념하는 사진 등이 있으며 현재는 보수를 거쳐 찻집, 목욕탕, 족욕탕, 레스토랑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수서원의 목욕탕 이용료는 1시간에 1200위안(약 4만2500원)부터. sgarden.com.tw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만보계를 보니 벌써 2만보가 넘었다. 발바닥에서 불이 날 것 같은 피로감. 하지만 온천호텔을 예약한 만큼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온천호텔의 가장 큰 매력은 객실에서 온천물을 받아 원할 때 목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들어가 보니 수도꼭지가 3개다. 틀면 온수, 냉수, 온천수가 각각 흘러나온다. 뜨거운 물을 받는 기다림의 시간도 즐겁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으로 들어가서 앉아 있자니 신음 같은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온천호텔 이용 Tip

베이터우에서 체험해볼 만한 것은 온천호텔이다. 베이터우 지역의 온천호텔에선 숙박하지 않고도 1~2시간 정도 객실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 시설에 따라 이용료는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숙박비의 30% 수준으로 즐길 수 있어 가격 부담이 덜하다. 각 호텔 입구에 가격이 표시돼 있으니 참고해서 선택하면 된다. 평일에는 주말 가격의 절반 가까이로 떨어지는 곳도 있어 편하게 숙박을 해봐도 좋겠다. 베이터우 지역의 아쿠아벨라(aquabella.com.tw) 온천호텔의 경우 1박에 약 15만원부터.


스펀-소원등을 하늘로 날린다

전날 피곤했는지 늦잠을 자버렸다.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고 탓하는 사람이 없다. 자유여행을 하고 있음이 새삼 실감났다.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타이베이 근교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스펀에 가기로 한 날이다. 시간이 없어서 택시를 탔더니 1200위안(약 4만2600원)이 나왔다. 하루 예산 7만5000원의 절반이 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점심은 40위안(약 1420원)짜리 면 요리로 간단히 때워야 했다.

타이베이 메인 역에서 동쪽으로 36㎞ 떨어진 스펀역은 기차가 거의 1시간에 한 번 다닌다. 옛날 시골 간이역을 연상케 할 만큼 외관은 볼품이 없다. 하지만 역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철로 위 곳곳에서 천등(天燈)을 날리려는 이들의 즐거운 獨볕?들려왔다.

천등이란 작은 열기구와 비슷한 종이등이다. 천등 아래 장착된 고체연료에 불을 붙이면 뜨거워진 공기가 등을 띄우는 것이다. 원래 천등은 지역 주민이 외부에서 침입하는 도적을 막기 위해 마을 간에 소식을 전하는 용도로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재복이나 건강, 행운 등을 비는 소원등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여행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철로 주변에는 천등에 사용하는 종이에 붓글씨로 소원하는 일을 쓰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영어 등이 쓰여 있는데 글로벌 관광지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다. 천등 가격은 종이 색깔로 결정된다. 한 가지 색만 쓰면 150위안(약 5300원), 4개 면을 각기 다른 색으로 쓰면 200위안(약 7100원)이다. 종이색에 따라 의미가 다른데 빨간색은 건강, 노란색은 재물, 파란색은 사업, 보라색은 학업, 오렌지색은 애정, 녹색은 운수대통, 흰색은 장래, 분홍색은 행복, 복숭아색은 이성운을 뜻한다.

원하는 종이를 고르고 소원을 다 적은 사람들은 천등을 들고 철로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4개 면을 돌려가며 기념사진을 찍고 나면 마침내 불을 붙이고 하늘로 올려 보낸다. 대부분 하늘로 잘 올라가지만 운이 없는 경우 불이 종이에 옮겨 붙어 지상에서 타버리는 불상사도 생긴다. 하지만 그마저도 안타까운 비명과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묻혀 작은 해프닝이 되고 만다. 등을 날리는 것은 하나의 의식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미 사람들의 표정에는 원하는 바를 다 이룬 듯한 감흥이 서려 있었다.

주펀-물처럼 쏟아지는 사람들과 붉은 빛

스펀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근교 관광지가 타이완 북부 신베이 시에 있는 마을 주펀(九)이다. 스펀에서 북동쪽으로 26㎞ 떨어진 주펀의 명성은 대만에서도 으뜸이라 할 만하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 ‘비정성시’를 비롯해 드라마 ‘온에어’ 등에도 등장했다.

스펀역에서 주펀으로 갈 때는 기차를 이용했다. 약 40분 걸리는 루이팡(瑞芳)역까지 든 비용은 17위안(약 600원). 부족한 예산을 생각하면 감사할 정도의 요금이다. 루이팡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쯤 더 올라가야 주펀에 닿는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자니 택시 기사가 와서 주펀에 갈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 정류장에 있는 사람 대부분이 주펀에 가는 관광객. 금세 다양한 국적의 승객이 모였다. 혼자 택시를 이용하면 205위안이 들지만 4명이 비용을 나누니 각자 50위안만 내면 그만이다. 대만에서 택시 요금은 물가에 비해 비싸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들과 합승하는 것이 현명하다.

주펀의 비좁은 골목은 식당, 카페,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상점으로 가득했다. 먹거리 구경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새가 없다. 땅콩 아이스크림부터 커다란 소시지, 오징어 튀김, 곤 달걀 등 이색적인 음식이 지천이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서인지 주문도 어렵지 않고, 한국어로 호객하는 소리도 종종 들려온다.

오후 5시쯤 되자 거리의 홍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주펀의 최고 명소인 수치루(竪崎路)로 향했다. 붉은 등이 수없이 매달려 있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인데 오가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수치루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은 고풍스러운 찻집 아메이차러우(阿妹茶樓) 근처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해 더욱 널리 알려진 건물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아메이차러우의 전경을 사진에 담기 좋은 곳은 건너편 찻집의 계단이다. 들어오는 손님보다 아메이차러우를 찍으려는 관광객으로 가득한 찻집이라니…. 이곳에서 사람 틈에 섞여 수치루와 아메이차러우를 바라봤다. 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수치루는 하나의 붉은 물결 같았다.

▶근교여행 Tip

타이베이의 유명 근교 여행지를 통틀어 흔히 ‘예스진주’라 부른다.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예류(野柳) 지질공원, 스펀, 옛 탄광 유적지 진과스(金瓜石), 주펀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이들 관광지를 편하게 가려면 택시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택시 기사가 타이베이 시내에서 태우고 4개 관광지를 모두 돌고난 뒤 다시 시내로 데려다 준다. 총 9시간 정도 걸리며 이용료는 한화로 13만~15만원 수준이다. 비싸지만 인원에 상관 없이 정해진 금액만 내므로 일행이 있다면 비용 부담을 나눌 수 있다.

가오슝-바다 전망과 예술의 혼재

가오슝(高雄)은 대만 남부의 중심도시다. 타이베이의 가오톄(高鐵)역에서 고속철을 타면 가오슝 줘잉(左營)역까지 2시간 걸린다. 당일 여행이 가능하고, 4일 이상의 일정이라면 1박도 고려해볼 만하다. 가오슝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는 다거우영국영사관(打狗英國領事館)이다. 1865년 지은 건물로, 서양이 대만에 세운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1867년 영국 정부가 이곳을 임차해 영사관으로 썼고, 현재는 전시관과 카페, 기념품, 레스토랑 등으로 사용 중이다.

해가 지면 건물은 조명이 들어와 더 아름답게 변신한다. 영사관은 바다를 마주한 언덕 위에 있다. 밤에 방문하면 탁 트인 시즈완(西子灣)의 바다 전경이 보인다. 영사관 내부에 자리 잡은 야외카페에는 나뭇가지가 물줄기처럼 흘러내리는 보리수나무(반얀트리)가 있어 더욱 이국적이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영사관 입장권을 사면 카페 할인쿠폰을 주기 때문에 싸게 이용할 수 있다.

다거우영국영사관에서 동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는 보얼(駁二)예술특구가 있다. 가오슝항 2호 부두 주변을 재정비해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일제 강점기의 옛날 물류창고를 개조해 작품 전시장으로 만들고, 야외에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색채가 짙은 설치미술품을 배치해 젊은이들의 인기 관광지로 부상했다. 대만의 예술세계에 빠지고 싶다면 제일 먼저 들러봐야 할 곳이다.

보얼예술특구의 창고 건물 주변을 걷다가 음악 소리가 들려와서 걸음을 멈췄다. ‘인 아워 타임(facebook.com/in.our.time.taiwan)’이라는 곳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인데 웹 라디오 스테이션, 식당, 서점, 갤러리, 기념품점 등을 겸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연자들의 실력이 훌륭했다. 때론 감미롭고, 때론 격정적인 음악이 마음을 흔들었다.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곳에서 음악과 맥주를 즐기고 있노라니 더 바랄 것이 없어졌다.


▶여행상품

자유여행엔 가이드가 없다. 문제가 생길 경우 기댈 곳이 없는 만큼 사전 공부는 필수. 하지만 어느 세월에 그 많은 여행지와 이동 경로, 숙박할 곳을 알아볼 것인가.

이번에 이용한 자유여행상품은 내일투어의 ‘타이완 금까기’다. 항공과 호텔이 포함돼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항공권 발권, 타이베이 근교 택시투어, 고속철 예매, 호텔 등의 예약을 대행해주며 전문 여행 코디네이터가 1 대 1로 상담해줘서 쉽게 여행을 준비할 수 있다. 여행 전 보내주는 안내서에는 자유여행의 난관 중 하나인 ‘호텔 찾기’가 지도와 함께 상세히 표시돼 있다. 주요 관광지 소개, 이동 방법, 소요시간 등을 안내하는 ‘오늘의 추천 일정’은 미리 계획을 짜지 않아도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다. 2박3일 상품은 28만9000원부터. (02)6262-5004

타이베이=글·사진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취재 지원=타이완관광청(taiwan.net.tw)
내일투어(naeil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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