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도로명 주소] 4000억 쓰고도 '갈팡질팡' 도로명 주소…"동 표기 부활 검토"

입력 2015-12-11 17:23  

정부, 내달 종합개선대책 발표

우편물 70% 도로명주소 쓰지만 공공기관·통신사 물량 대부분
"국민들 곧 적응" 입장 고수하다 뒤늦게 TF 꾸려 "모든 방안 검토"



[ 강경민 기자 ] 11일 오전 서울 A구청 민원실. 인적사항을 적는 신청서 주소란에 도로명 주소를 적어야 하느냐는 한 민원인의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어차피 컴퓨터로 바꿀 테니 지번 주소로 적어도 된다”고 말했다. A구청에 따르면 민원실을 방문하는 사람 중 도로명 주소를 기입하는 비율은 10명 중 2명가량에 불과하다. 같은 날 서울역 인근 B우체국. 우편물을 부치는 창구 한쪽에 주소를 찾아볼 수 있는 우편번호부 책자가 비치돼 있었다. 책자엔 도로명 주소가 아닌 옛 지번 주소만 기재돼 있었다.

도로명 주소가 도입된 지 4년이 지났지만 구청과 경찰서, 우체국 등 일선 현장에서 이용률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하고 제도 도입 4년 만에 긴급 개선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용률 70%는 통계 착시”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올 6월부터 지난달까지 전국 우편물의 도로명 주소 평균 사용률은 70%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기 한 달 전인 2013년 11월 17.7%의 네 배를 넘었다.

하지만 우편물 사용률 기준으로 도로명 주소가 정착됐다는 건 ‘통계 착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우편물을 보내는 일반 국민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우편물의 대부분이 공공기관이나 통신사 및 금융사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물량이라는 게 우정사업본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2011년 7월부터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도로명 주소를 쓰도록 한 데 이어 민간 기업에도 새 주소를 활용하도록 했다. 우편물의 도로명 주소 사용률이 70%가 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우편물 사용률을 근거로 국민 10명 중 7명이 새 주소를 쓰는 것은 아니다”며 “실제 이용률은 훨씬 낮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정확한 이용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 심각성 뒤늦게 파악한 정부

정부가 도로명 주소 도입을 추진한 건 19년 전인 1996년이다. 2007년 새 주소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은 ‘도로명 주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정부는 전국적으로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설치 작업에 나섰다. 1996년부터 소요된 도로명 주소 전체 사업 예산 약 4000억원 중 절반이 넘는 예산이 2007년 이후 쓰였다.

도로 이름과 건물 번호로 주소를 부여하는 도로명 주소가 도입되면 주소를 찾기 쉬워 물류비용 감소로 연간 수조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 당초 정括?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내비게이션 등 정보기술(IT)이 발달하지 않았던 1990년대에나 가능한 얘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그동안 도로명 주소의 장점을 적극 홍보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도로명 주소를 이대로 방치하면 새 주소가 ‘공공기관 전용 주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최근 들어 정부 부처 안팎에서 심각하게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존 지번 주소처럼 도로명 주소에 동(洞) 이름을 붙이는 방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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