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 섬…여권 없는 해외여행 떠나요

입력 2016-01-11 07:01   수정 2016-01-11 10:10

아름다운 여신의 섬, 생일도

수호신 마방할머니 모시는 당숲
자연 그대로의 모습 보존

백운산에 서면 다도해의 섬들 '장관'
온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

금곡리 동백의 화원도 눈 부셔
참기름에 찍어먹는 생굴의 맛 그만

다도해 최고의 경치, 소안도

항일독립운동 가장 강성했던 성지
건국훈장 20명·독립운동가 89명 배출

다도해 조망할 수 있는 가학산 정상
제주·보길·추자·청산도가 한 눈에
맑은 날엔 신비로운 구름 속 한라산도

싱싱한 전복과 감성돔의 맛 살살 녹네



대체로 중부지방 사람들은 추운 겨울날이면 전국이 온통 동토(凍土)가 되는 줄 안다. 이 나라에도 남국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남북 분단 이후 지도에서 사라진 것은 북국만이 아니다. 남국도 사라져 버렸다. 북국이 그렇듯이 남국 또한 기후도 풍토도 확연히 다르다. 남국의 겨울 들녘에는 배추와 시금치, 대파는 물론 그 여린 상추까지 자란다. 서울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갈 때도 남국은 영상의 날씨일 때가 많다.

그 남국의 중심에 섬들이 있다. 남국의 섬들은 온기를 품은 해양성 기후로 인?겨울에도 따뜻하다. 찬바람이 거세면 더러 춥기도 하지만 바람 잔잔한 날이면 햇살이 따가울 정도다. 봄, 가을 북새통을 이루던 유명 섬들도 겨울에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겨울에 더없이 여행하기 좋은 곳이 남국의 섬들이다. 추위를 피해 해외까지 갈 것 없다. 여권 없는 해외여행. 전남 완도의 아름다운 섬 생일도와 소안도로 남국여행을 떠나보자.

아름다운 여신의 섬, 생일도

‘여신의 섬’ 생일도의 수호신 마방할머니

세계의 많은 섬이 여신의 보호를 받는다. 하와이 섬들의 수호신은 펠레 여신이다. 불을 뿜는 화산에 거처하며 섬사람들을 지켜준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는 서풍에 밀려 키프로스 섬으로 갔는데 거기서 계절의 여신들이 입혀준 옷을 입고 사랑과 미의 신이 됐으며 섬의 수호신이 됐다. 제주도는 설문대할망이란 여신이 창조했다. 통영 섬들의 창조신은 마구 할매다. 진도 바다의 지배자는 영등할미 여신이고, 부안 앞바다를 관장하는 신은 계양할미 여신이다. 완도 생일도의 수호신도 여신인 마방할머니다. 마방할머니를 모시는 생일도 서성리 당숲은 완도 일대에서도 영험하기로 이름 높은 신전이다. 생일도의 기독교 신자들도 당집 앞에 가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할머니 신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고백할 정도다.

마방할머니는 옛날 생일도가 국영 말목장이었을 때부터 생일도의 수호신이었다. 그 마방할머니가 지금도 생일도의 수호신이다. 마방할머니가 기거하는 신전이 있는 서성리 당숲은 신령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지금도 주민들은 두려움에 당숲의 나뭇가지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오로지 정월 초파일 당제를 지내고 나서야 부러지거나 썩은 당숲의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태울 수 있다.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된 생일도는 그 이름처럼 누구나 다시 태어나는 섬을 내세우고 있다. 이 신령한 당숲, 신전 앞에 와서 마방할머니 여신에게 기원을 드리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생일도에 가거든 꼭 이 당숲에 참배해 보시라. 외경을 알게 될지니.

트레킹하기 좋은 백운산

여신의 신전과 함께 생일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섬의 랜드마크인 백운산(482m)이다. 섬의 산 치고는 제법 높은 편이지만 백운산 트레킹 길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쉬엄쉬엄 걷다보면 금방이다. 트레킹 길 입구는 여러 곳이지만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서성리 당산나무 부근 임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다. 임도는 금곡리까지 6㎞의 평이한 산길로 이어져 있는데 임도의 중간쯤 멧돼지 전망대부터 오르막이다. 하지만 이 오르막 구간은 15분 남짓이면 충분하니 힘들 틈도 없다. 오르막의 끝에서 능선이 시작된다.

백운산 능선에 서면 다도해의 섬들, 가깝게는 고금, 약산, 신지, 완도, 금일도부터 멀리 소안, 청산, 보길, 대모, 소모, 횡간도 같은 완도의 섬들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힐링이 대세인 시대. 지방자치단체들은 힐링을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예산을 들여 자꾸 인공적인 무언가를 만들려 든다. 하지만 대자연의 품에 안겨 바라보는 장엄한 풍경보다 더 좋은 힐링 상품은 없다. 섬은 그 자체로 힐링 공간이다.

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힐링이 시작된다. 백운산 능선길은 생일도 최고의 힐링 포인트다. 발 아래 펼쳐지는 다도해의 장관을 보며 걷거나 넋 놓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온통 정화되는 느낌이다. 학서암 방향으로 내려오면 섬에서는 드물게 300년이나 된 고찰인 산중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이 또한 그윽하다.

황홀한 바다 풍경 펼쳐지는 금머리 갯길

백운산이나 당숲 말고도 생일도에는 잘 보존된 빼어난 숲이 많다. 굴전리에는 구실잣밤나무 군락지가 50만㎡나 남아 있고 금곡리의 동백숲도 15만㎡나 된다. 이 동백 숲으로 인해 생일도의 겨울은 그야말로 동백의 화원이다. 금곡리에서 용출리까지 3.7㎞의 옛길인 금머리 갯길은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황홀한 트레일인데 여기에도 자생 구지뽕나무 군락지가 보존돼 있다.

숲과 바다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생일도는 더 보태지 않아도 남도의 최고 보물섬이다. 생일도는 과거 완도에서 배가 다녔지만 이제는 연륙이 된 고금도와 약산도까지 차로 들어가 약산도 당목항에서 30분 남짓만 배를 타면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생일도에 가는 길 약산도에는 굴 양식장과 굴을 까는 작업장이 많다.

겨울이 제철인 이 굴을 한 망태기쯤 사다 굴구이나 찜을 하면 최고의 성찬이다. 이 섬들에서는 생굴을 초장이 아니라 참기름에 찍어 먹는다. 초장이 굴 본연의 맛을 죽이는 데 비해 참기름은 고소함을 더 살려주고 비린 맛도 없애준다. 생일도는 또 전복과 다시마의 고장이다. 현지에서 맛보는 전복과 다시마는 달디 달다. 생일도산 자연산 홍합구이 또한 겨울의 별미다.

다도해 최고의 경치, 소안도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

보길도나 청산도에 못지않은 남도의 섬이지만 소안도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소안도는 수려한 경관만큼이나 감동적인 역사를 간직한 섬이다. 보길도가 고향인 나의 머리가 늘 소안도를 향해 숙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안도는 경배 받아 마땅한 이 나라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다. 일제강점기 소안도는 함경도의 북청, 부산의 동래와 함께 국내에서 항일 독립운동이 가장 강성했던 세 곳 중 하나다. 1920년대에는 소안도 주민 6000여명 중 800명 이상이 불령선인(不逞鮮人=불량한 조선 사람)으로 낙인찍혀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섬사람들은 독립운동으로 형무소에 끌려간 주민이 있으면 그들을 생각해 한겨울에도 불을 때지 않고 잠을 잤다고 한다. 진정한 의리 섬, 지사의 섬이었다. 그래서 이 작은 섬에서만 건국훈장 20명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89명이 배출됐다.

소안도에 항일의 씨앗을 뿌린 것은 동학농민혁명이다. 혁명 당시 동학의 접주 나성대 장군이 소안도로 들어와 동학군의 군사훈련을 시켰다. 소안도 출신 이준화 이순보 이강락 등도 동학군에 합류했고 소안도 주민들은 식량을 조달했다. 동학혁명 실패 후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의 밀고로 이순보 이강락 등은 청산도로 끌려가 관군의 손에 총살당했다. 살아남은 이준화는 이후 의병들을 이끌고 소안도 앞바다 자지도(현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일본인 간수들을 처단하는 등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친일파가 강탈한 토지 찾기 위해 법정 투쟁

소안도 주민들은 1905년부터 13년 동안이나 왕실 소속의 궁납전(宮納田)이던 소안도의 토지를 강탈해 사유화한 사도세자의 5세손, 친일 매국노 이기용으로부터 토지를 되찾기 위한 법정 투쟁을 벌였다. 토지를 찾은 소안도 사람들은 1922년 2월 이를 기념해 성금을 모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당시 소안학교는 인근의 섬들은 물론 해남, 제주도에서까지 유학생이 몰려올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소안도 항일운동은 소안사립학교를 기반으로 신간회의 핵심이던 송내호와 김경천, 정남국 등에 의해 주도됐는데 이들이 조직한 수의위친계, 배달청년회, 살자회, 일심단 등의 항일운동 단체는 소안도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24년 2차 소안노농대성회 사건을 시작으로 많은 소안도 사람이 일제 경찰에 체포돼 감옥에 갔다. 주민들은 일제 경찰과 말을 하지 않는 ‘불언 동맹’이나 ‘일장기 걸지 않기’ ‘일본 국경일 행사 거부’ 등으로 일제의 폭압에 맞섰다. 또 각종 행사 때 일본 경찰의 입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섬이 이 나라에 또 어디 있을까.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소안도를 잊고 살았다. 이제 영광스러운 소안도의 역사 속으로 떠나보자.

돌담길 따라 떠나는 시간여행

소안도에는 천연기념물인 미라리와 맹선리 상록수림, 미라리해수욕장 등 볼거리가 많다. 그중 압권은 소안도의 주봉인 가학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다도해 풍경이다. 가학산은 다도해 섬들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뷰포인트, 최고의 전망대다. 가학산에서는 제주, 보길, 추자, 청산 같은 유명 섬들을 일시에 다 조망할 수 있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이는 이치를 이보다 잘 구현하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이 나라 으뜸 섬 4개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소안도 가학산이 유일하다.

맑은 날이면 보이는 제주의 한라산은 늘 아래 부분이 구름에 싸여있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산 같다. 어째서 제주가 신선들이 산다는 상상의 공간인 영주라 불렸는지 짐작하게 하는 풍경이다. 또 하나 소안도의 보물은 대봉산 둘레길이다. 원시림의 숲과 과거 산전을 일구던 시절, 유물인 숲속 돌담은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아직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안도 최고의 트레일이다. 지금은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둘레길을 단장하고 있는데 기계를 들이지 않고 사람의 손만으로 완성하기를 기대한다. 포클레인이 들어가는 순간 숲도 길도 망한다.

소안도는 인근의 노화도, 보길도 등과 함께 최고의 전복 산지다. 산지에서 직접 사는 전복은 싱싱할 뿐 아니라 싸다. 소안도의 또 다른 겨울 최고 별미는 감성돔이다. 같은 생선도 서식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데 소안도 인근 해역에서 자라는 감성돔의 맛은 완도 바다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강제윤 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facebook.com/jeyoon.kan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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