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무너진 고합 창립 50주년 행사…"기업 사라졌어도 고합 개척정신은 살아있다"

입력 2016-01-24 17:41  

"석유화학 생산체제 혁신 등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갔다"
200여명 한자리에 모여

"실패한 기업 돌아보지 않는 한국 정서 바꾸는 시도"



[ 송종현 기자 ] 지난 2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섬유센터. 4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3층 ‘이벤트홀’로 속속 모여들었다. 홀 입구에선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80대 노신사가 200여명의 손님을 일일이 악수하며 맞이했다.

머리가 하얀 60~70대 참석자들도 그의 앞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회장님, 건강은 괜찮으십니까”라고 안부를 물었다. 몇몇 참석자는 그와 가볍게 포옹한 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 행사는 24일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옛 고합의 창립 기념행사. 노신사는 장치혁 전 고합 회장(84)이었다.


◆2004년 후 첫 공식행사

장 전 회장이 1966년 1월24일 8명의 주주와 함께 설립한 고합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기업이다. 고합은 섬유사업으로 시작해 석유화학, 보? 전기·전자 계열사를 잇따라 설립하며 1990년대 중후반 연매출 4조원이 넘는 재계 17위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계열사는 대부분 청산됐고 가장 우량했던 석유화학 사업을 분할해 2001년 설립한 옛 KP케미칼은 2004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으로 넘어갔다.

이후 고합이란 이름을 내걸고 열린 공식행사는 한 차례도 없었다.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져 사석에서나 간헐적으로 만날 뿐이었다. 그러다가 몇몇 고합인이 “창립 50주년이 되는 2016년엔 기념식을 한 번 열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1월 ‘창립 50주년 기념식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1년간의 준비 끝에 열린 이날 행사는 고합이 완전 해체된 뒤 12년 만에 열린 공식행사였다. 김하경 준비위원은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순수 친목행사”라며 “고합의 이름으로 재기를 노리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전직 고합 임직원 외에 성기학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영원무역 회장), 김덕룡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장, 김범일 가나안농군학교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장병주 대우재단 이사장,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동안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외환위기 직후 어려웠던 상황을 회고하며 고합이 해체된 데 대해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덕룡 이사장은 “당시 집권 여당의 정치인으로서 외환위기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합이 무너진 것에 깊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 직원 대표로 인사말을 한 최명순 씨는 “1983년 폴리에스터 사업부로 입사한 직후 회사에서 받은 이불 석 장을 아직도 쓰고 있다”며 울먹였다. 그는 “고합에서 받은 정신교육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개척정신 자랑스럽다”

고합 창업자인 장 전 회장은 회사를 잃은 충격으로 2002년 이후 수년간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등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직전 기자와 만난 그는 “실패한 기업은 돌아보지 않는 게 한국의 정서”라며 “그런 점에서 고합 창립 50주년 행사는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 행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합인의 개척정신으로 일군 공장(현 롯데케미칼 울산공장)은 막대한 흑자를 내며 풀가동되고 있다”며 “순수 국내 기술로 파라자일렌(PX) 계열 석유화학 제품 일관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등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고합의 개척정신을 잘 보존, 계승하면 새로운 변화의 50년을 살아갈 길이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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