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주형환은 다를까

입력 2016-01-28 17:55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업가 정신을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분석틀을 제시한다. 기업가 정신 결정 요인으로는 규제, 연구개발(R&D) 등의 변수를 고려하고, 기업가 정신이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등에서 어떻게 발현됐는지를 따진다. 주목할 건 OECD의 기업가 정신 정의가 창업, 소규모 기업, 자영업 등에 관련된 배타적 개념이 아니고, 대기업도 기업가적일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행히 한국에서는 기업가 정신도 이중 잣대다. 기존 기업보다는 창업, 대기업보다는 중소·벤처기업만이 기업가 정신인 것처럼 떠드는 게 그렇다. 대기업 규제는 당연한 게 돼 버렸다. 대기업이란 이유로 정부 R&D에서 배척당하고, 심지어 R&D 세제 혜택까지 축소당한다. 하지만 대기업이 한국 주력 산업에서 차지하는 현실적 역할을 잘 아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치권이나 기획재정부의 이런 이중 잣대에 대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안에서 무너지는 한국 산업

이래 놓고 한국 주력 산업이 줄줄이 중국 추격 때문에 위험하다고 한다. 그보다 백배 천배 더 위험한 건 R&D, 인력 등 주력 산업 인프라가 慕?한국 내부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인데도 말이다. 반도체산업이 남았다지만 이대로 가면 한국 실책으로 말아먹었다고 자책할 날도 머지않았다.

주형환 신임 산업부 장관이 기재부 차관으로 있을 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산업정책의 근간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에서 ‘메이드 바이 코리아(Made by Korea)’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내놨다. 대신 국내에서는 서비스업 등을 육성하자는 논리다. 만약 이것이 기업의 전략이라면 흠잡을 것도 없다.

문제는 기업이 아닌 KDI가 이런다는 데 있다. 국내의 투자와 고용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정부연구소가 산업 공동화를 되레 부추기는 꼴 아닌가. 더구나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결코 유리된 게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단순논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국보다 내수가 훨씬 큰 일본, 미국 등은 정신이 나갔다고 제조업 혁신을 외치나. 산업부는 이럴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산업부는 뭐 하는 곳인가

신(新)산업도, 서비스업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주력 산업이 속절없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신산업, 서비스업에도 치명타다. 어떤 산업이건 대기업, 중소기업, 창업기업 등이 차별받지 않는 기업가 정신 발휘가 요구되는 건 바로 그래서다. 하지만 창업엔 온갖 지원을 마다하지 않겠다면서 기존 기업의 재창업과 다름없는 사업 재편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한국이다. 대기업 사업 재편은 특혜라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허구를 깨야 할 산업부는 안 보인다.

일본의 용의주도함은 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 ‘산업혁신기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첨단기술 사업화, 벤처 지원, 사업 羚?등을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이다. 기업 규모 제한도, 산업이나 사업 제한도 없는 경계를 넘는 시너지가 일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도 사업 재편 촉진을 위한 ‘원샷법’이 국회를 통과할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대기업 사업 재편엔 온갖 단서 조항이 덕지덕지 붙었고, 과잉 공급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원샷법이 돼도 단서나 기준을 놓고 갑론을박만 벌이다 종 치지 말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산업부가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한국 산업이 죽으면 산업부도 죽는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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