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와룡(臥龍)기업을 찾아라"

입력 2016-02-11 18:05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에 던진 충격은 그 전과 후의 일본으로 나눌 정도였다고 한다. 지진 전부터 조락을 거듭해오던 일본 경제를 부흥 정도가 아니라 비약적 성장으로 돌려놓지 못하면 10년 후 일본은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는 것이다. 메이지유신 때, 또 패전 후 그랬던 것처럼 제도적 대전환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글로벌화도 그중 하나였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들고 나오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밀어붙인 데는 그런 절박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중 한국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건 수출에 대한 일본의 재인식이다.

'수출이 기업을 바꾼다'

일본 중소기업정책심의회에 등장했던 ‘수출 후 노동생산성 추이’ 그래프는 수출에 대한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2000년부터 수출을 시작한 기업과 그 기간 일절 수출을 하지 않은 기업의 노동생산성 평균치가 출발 땐 별 차이가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는 내용이다. 수출을 시작하면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평균 2% 정도 올라간다는 분석도 더해졌다.

더 흥미로운 ?그 다음이다. 일본은 생산성이 높은데도 아직 글로벌화되지 않은 기업이 꽤 많다는 사실에 고무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기업활동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과 비(非)글로벌 기업 간 총요소생산성 분포는 그런 시사점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글로벌 기업의 생산성이 평균적으로 더 높지만 비글로벌 기업 중 평균적 글로벌 기업보다 생산성이 더 높은 기업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이다. 도도우 야스유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이들을 ‘와룡기업’이라고 불렀다. 중국 삼국시대 유비가 찾기 전까지 재야에 있던 제갈공명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와룡기업은 대기업 중견기업은 물론 영세 중소기업에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종은 제조업 비제조업 등에 고루 분포돼 있었고, 지역적으로도 대도시뿐 아니라 전국에 산재돼 있었다. 일본의 저력이 확인되자 와룡기업의 글로벌화는 일본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 중요한 축이 된다.

중소기업정책 대전환해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영섭 중소기업청장 등이 설 연휴에 수출 중소기업을 격려했다고 한다. 중소기업 수출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 점도 똑같다. 올 들어 1월부터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5%나 급락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현장 방문 몇 번으로 풀릴 문제면 왜 여태 안 풀렸겠나.

내수 중소기업의 수출 기업화도 공허하게 들리긴 마찬가지다. 한국엔 와룡기업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부터 궁금하다. 수출 중소기업이 전체 중소기업 중 2.7%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과연 정확한지도 알고 싶다. 수출 중소기업이 내수 중소기업에 비해 무엇이 다른지, 수출 중소기업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제대로 조명한 적이 있는지도 묻고 싶다.

수출 중소기업을 외치고 싶으면 중소기업정책을 일대 혁신할 각오가 필요하다. 생산성을 약화시키는 일체의 국내 지원제도나 보호장치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고, 인센티브도 수출 중소기업으로 확실히 돌려야 한다.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정책도 예외일 수 없다. 독일 히든챔피언의 역사는 ‘글로벌화가 R&D를 촉발한다’는 인과관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중소기업정책의 대전환을 용기 있게 치고 나갈 장관은 없는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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